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84) - 겟세마네에서의 기도(마 26:36-46).

비전의 사람 2021. 9. 11. 21:17
반응형

마태복음 강해(84) - 겟세마네에서의 기도(26:36-4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26:36).

 

기도는 믿음의 자녀들이 아버지께 나아가 소통하는 통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하나님과의 교제라고도 하며,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호흡이라고도 합니다.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함으로 응답받는 축복을 누리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건을 몇 시간 앞두시고 심적으로 큰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마치신 후에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마음에는 앞으로 다가올 십자가의 고난과 사망의 고통을 맞이해야 하는 부담감이 너무나 크게 느껴지셨습니다. 제자들은 아직 다가올 큰 폭풍우의 충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때가 가까이 오심을 아셨기에 마지막 시간을 아버지와의 기도로 시간을 보내시고자 하셨습니다.

 

인생에 큰 폭풍우가 찾아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는지요? 우리는 제자들처럼 영적으로 준비가 안되었기에 그냥 도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칼을 들고 온 무리들처럼 자신이 어떠한 행동을 하는지를 모르면서 불에 기름을 붓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예수님처럼 간절한 기도로 영적인 폭풍우를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엄청난 십자가라는 폭풍우가 다가오는 것을 아시고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을 앞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겟세마네의 기도는 마음의 고통을 이기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26:38).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겟세마네는 감람유를 짜는 틀이라는 의미이며 예루살렘과 감람산 경계인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면 만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아마 제자들과 자주 기도하러 오셨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겟세마네에 이르자 주님이 기도하실 동안에 제자들은 그곳에 앉아 있게 하셨습니다. “...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26:36). 주님은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은 멀리 있게 하셨고 대신에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인 요한과 야고보와 함께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함께 가실 때에 고민하고 슬퍼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쌔 고민하고 슬퍼하사.”(26:37).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과 함께 기도하러 가시면서 고민하고 슬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고민하다는 grieve 로서 극심한 불안과 근심을 뜻합니다. 그리고 슬퍼하사는 마음에 찾아오는 깊은 슬픔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세배대의 두 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26:38). 주님께서는 영혼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슬프고 고통스럽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곁에 있으며 함께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의 고통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종종 찾아오는 과정입니다. 죽을만큼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에 사람들은 절규하기도 합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이 죽었을 때에 마음의 고통으로 탄식했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론 내 아들아 내 아들아...”(삼하 18:33). 비록 압살롬이 반역하여 다윗을 해하려고 했지만, 그는 다윗에게 아들이었기에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와같이 사랑했던 아들이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자 다윗은 죽기까지 고통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예수님이 죽기까지 고통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주로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인하여 슬퍼하며 고통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장차 일어날 고통을 아셨기에 고민하고 슬퍼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사야 53장에서 설명하는 고통하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감당해야 할 고통을 앞두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셔서 형벌을 받으시러 십자가의 길을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큰 고난의 시간 앞에서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세 명의 제자들에게 주님의 고통하는 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마음의 큰 슬픔으로 인하여 고통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주님과 함께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고통이 찾아올 때에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하는 시간과 위로할 수 있는 믿음의 친구들입니다.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영적인 친구는 큰 격려가 됩니다. 주님도 십자가의 고통이 무엇인지 아셨기에 마음의 큰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이때 주님도 제자들에게 깨어 함께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주님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비록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주님은 세상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제자들 뿐이었기에 그들과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큰 고통의 시간이 찾아와 마음이 힘드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시기 위하여 기도의 장소에 가셨습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슬픔을 맡기시고 마음을 회복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고난이 찾아올 때에 혼자 이기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계셔서 우리의 아픔을 도우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57:15)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하셔서 통회하는 자의 영과 마음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고통이 찾아올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믿음의 지체들이 있어서 함께 기도하며 위로하는 동역자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함께 기도할 수 있는 믿음이 지체들이 함께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홀로 고통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함께 교제함으로 서로 위로하며 격려함으로 힘을 얻어야 합니다.

 

2. 겟세마네의 기도는 순종을 결단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26:39).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8장에서 “ ...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8:42)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는 아들의 희생을 통해서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6:40).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말로만 순종하는 쉬운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순종한다고 하지만 조금의 희생을 요구하면 순종하지 못하고 우리의 육신을 따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육신의 연약함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하셨지만 주님이 기도하실 동안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26:40-41). 주님께서는 잠을 자는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제자들과 같이 마음은 아버지께 순종하고 싶지만 육신이 약하기 때문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목숨을 바쳐야 하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말로는 누구나 아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뒤로 주춤하게 됩니다. 마가가 사도 바울과 1차 선교 여행을 하다가 큰 어려움이 찾아오자 선교에서 포기했습니다. 이와같이 고난을 감당해야 하는 순종은 우리에게는 큰 도전입니다. 주님도 십자가의 큰 고통이 찾아오는 시험을 앞두고 계셨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아버지께 나아가 순종하기 위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26:39). 주님께서는 아버지께 가능하다면 잔을 지나가게 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잔이란 예수님이 지셔야 할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순종에는 대가가 지불되었습니다. 그 대가는 십자가에서의 희생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자신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의 위대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이 육신이 순종되도록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순종의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육신이 약해서 늘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의지는 주님의 뜻을 대적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이 거부하고 있을 때에 기도로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아래서 그 분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전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천사들을 보았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이러한 음성을 주셨습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6:8). 이사야 선지자는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에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결단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자신을 부른 줄을 깨닫고 즉시 순종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사야 선지자와 같이 말씀을 들은 후에는 순종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연약하기에 날마다 주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 시간에 말씀을 들은 후에 순종하는 결단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목장에서도 말씀을 나눈 후에 결단하며 순종하는 기도를 드려서 날마다 주의 뜻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143:10)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주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힘써 하나님의 뜻을 배워서 그 도를 따라 행하는 주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3. 겟세마네의 기도는 영적 싸움을 위한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22:43-44).

 

기도는 영적 싸움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어두움의 세력과 싸워야 하는 씨름이기도 합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산을 본 후에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은 가브리엘 천사장을 보내셔서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응답이 오는 시간이 약 21일 만에 나타났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가브라엘 천사장을 막아 싸우며 그 길을 막았기 때문이었습니다. “ ... 바사국군이 이십 일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10:13). 바사국 군은 페르시아를 담당하는 사탄의 세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를 막아 싸우고 있을 때에 미가엘 천사장이 와서 도와주므로 다니엘에게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어두움의 영적 세력이 방해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광야에서 사십일간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금식하며 기도하며 앞으로 감당하실 사역을 준비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기도를 방해하기 위하여 사탄이 나타났습니다. 사탄은 세 번이나 예수님을 시험하며 주님의 기도를 방해하였고 주님의 사역을 멈추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시기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마치시고 최종적인 사역을 준비하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을 찾으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것은 사탄의 권세를 무너트리시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뜻은 사탄의 권세를 무너트리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 ...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3:1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은 승리하십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탄의 권세인 죄와 사망의 권세를 무너트리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에 천사가 와서 도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사탄이 주는 불안과 싸워야 하는 것이고, 사탄이 주는 포기하라는 음성을 극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고통 가운데 기도하셨지만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너무나 간절한 기도였기에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었습니다. 피가 땅에 떨어지듯이 예수님은 땀이 땅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4월의 서늘한 저녁 시간에 주님은 마음의 고통과 아픔으로 인하여 땀을 흘리며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이 땀을 흘리신 것은 또한 영적으로 씨름하시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며 순복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겟세마네에서 씨름하시며 아버지께 순복하시는 기도를 세 번이나 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의 기도는 사탄에게 패배를 가져다 주는 승리의 기도이셨습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가룟 유다를 통하여 음모를 꾸몄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사탄이 승리한 것 보였지만 사탄은 예수님의 발꿈치만을 상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니은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깨트리셔서 승리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도에서 영적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기도가 영적 전쟁인 이유는 기도는 육신과 싸워서 이기는 승리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는 육신의 정욕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기도가 영적 전쟁인 이유는 기도는 사탄의 권세를 무너트리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사탄을 이길 수가 없지만, 하나님의 권세로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탄이 주는 시험과 유혹을 우리는 기도로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26:42)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는 육신을 이길 수가 없고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셔서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기도로 승리했습니다. 모세가 손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승리했지만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려 도왔습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기도는 영적으로 승리하게 하는 통로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신 것은 십자가의 승리를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에서 승리하셨기에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감당하시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목숨까지도 내려놓으시고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로 승리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26:45-4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잡으로 오는 사람들을 피하여 도망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가시자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제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에 믿음의 기도로 준비한 후에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고 담대히 맞설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영적으로 준비되었기에 어떠한 시련도 이길 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