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43)-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롬 13:8-10)

비전의 사람 2021. 9. 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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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43)-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13:8-10)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13:8).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1-7절에서 정부의 권위에 순종하라는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8-10절의 말씀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로 우리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37절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 라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을 주라는 것은 국가에 대한 세금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관계에서는 사랑이 포함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13:8)고 했습니다. 율법이 의무이듯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duty)이기도 합니다. 의무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감당해야 할 사명이듯이,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도 평생 감당해야 할 사명인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랑을 실천합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부모가 우리가 너희를 충분히 사랑했으니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은 더 깊은 사랑을 가져오며 더 행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어떠한 대가를 바라고 하지 않듯이, 우리의 사랑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새롭게 변화된 삶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를 로마서 138절에서 10절 말씀을 통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13:8).

 

우리는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8절에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지지 말라는 의미는 우리가 빚을 진 것에 대하여는 갚아야 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것이 우리가 집을 사거나 차를 구매하기 위하여 은행을 이용하거나 카드를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업을 하기 위하여 은행 대출을 받기도 하고, 집을 사기 위하여 일부분을 대출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개인적인 관계에서 빚을 내기도 합니다. 가능하면 개인적으로는 금전 관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부채 관계가 발생하면 그 약속이나 계약대로 빚을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빚을 지지 말아야 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가르치는 원리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빚을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의 빚을 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서로를 향한 사랑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다 갚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받은 사랑으로 다시 서로에게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거짓이 없으며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12:9). 즉 사랑하는 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심지어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며,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 합니다. 그리고 우는 자들로 함께 슬퍼하는 공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13:8)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의 중요성은 남을 사랑하는 것은 율법을 성취했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 지나치게 치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기가 어렵듯이, 사랑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율법의 요구를 이룰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힘으로는 남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힘으로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율법이란 하나님의 의를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켜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율법의 본질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율법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는 율법을 이루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며 그 분과의 연합된 삶을 통하여 남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2.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성취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13:9).

 

율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율법은 약 610개의 지켜야 할 규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십계명은 모든 율법의 핵심을 이루는 열 가지를 하나님이 친히 돌판에 기록하셨습니다. 열 가지 계명의 핵심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2:36-40).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즉 우리가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어서 우리는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두지 말아야 하고, 우상의 형상을 만들지 말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러한 모든 법의 내용은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남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살인하지 말아야 하고, 간음하지 말아야 하며, 도적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 증거하지 말고 탐심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같이 사람과의 관계의 본질은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13:9)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한 말씀은 레위기 1918절의 말씀입니다. “ ...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19:18). 예수님께서도 레위기 19장의 말씀으로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말씀이 둘째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다고 했습니다.

 

남을 사랑하는 삶의 본질은 자신과 같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 만큼 우리가 최소한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을 보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남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사명이기도 합니다.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권세로 폐하여졌기에, 우리가 율법 없이 방종으로 흐르는 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율법보다 나은 하나님의 법이 있는 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법인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함으로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법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구원받은 성도는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법 아래 있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6:2). 우리가 서로의 짐을 지며 사랑을 표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사랑의 법인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자신이 낮아져 종의 모습을 갖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5:13-15).

 

우리는 자유하지만,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아야 합니다. 즉 육신적인 기회를 얻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대신에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며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랑이 식어져 서로 비방하며 싸움으로 피차 멸망할까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함을 배워야 합니다.

 

3.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13:10).

 

진실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을 말하지만, 진정 사랑하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 12장에서는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12:9)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12:17)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는 형제를 미워하거나 악을 행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미워하는 감정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형제와 이웃에 대하여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찌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일 3:10-12).

 

마귀의 자녀들은 가인 같이 형제를 미워하고 죽이는 악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난 자는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는 자이기에 의를 행하기에 힘쓰며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힘쓰게 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으로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웃과 형제에게 악을 행하지 않도록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첫째 이웃에게 진실해야 합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4:25).

 

이웃에 대하여 진실하여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거짓말로 속이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특히 믿음의 지체 안에서는 우리가 더욱 진실해야 합니다.

 

둘째,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4:29).

 

우리의 말은 우리의 존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더러운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러운 말은 거친 말이나 욕설, 그리고 음란한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듣기에 은혜스러운 말을 해야 합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4:31). 우리의 말에서 악독과 노와 분, 그리고 훼방하는 것을 제해야 합니다.

 

에베소서는 우리가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말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5:3-4). 우리는 음행이나 더러운 말이나 탐욕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희롱의 말을 하지 말고 도리어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셋째, 서로 비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14:3).

 

우리는 교회에서 서로를 향하여 업신여기거나 판단하여 비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음식을 먹는 자는 믿음이 강한 자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를 업신여기는 죄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약한 자는 믿음이 강한 자를 판단하며 비방하는 죄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서로에게 악을 행하는 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을 실천함으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지지 말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며 사명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법을 성취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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