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44) -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롬 13:11-14).

비전의 사람 2021. 9. 1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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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44) -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13:11-14).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13;11).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1-2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살아있는 제물로 드리라고 권면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살아있는 제물로 드리는 삶은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인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순복해야 할 뜻은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4).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 입고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옛 사람에 속한 어두움의 일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에 속한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때가 가까이 옴을 알기에 우리는 더욱 주님이 오시는 그 날을 사모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로 옷 입고 빛된 자녀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의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13;11).

 

사도 바울은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13:11)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13:12)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한 그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가 가까웠기에 그리스도인은 자다가 깨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다가 깰 때라는 의미는 영적으로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밤은 영적인 어두움을 상징하기에 죄에 물들어 살아가는 것은 영적으로 잠을 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다가 깨는 것은 로마서 122절의 말씀과 같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이며, 대신에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함으로 어두움에서 깨어 빛의 자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13:11). 우리의 구원이 가까웠다는 것은 몸의 구속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은 아직 연약하여 이 땅에서 쇠하며 결국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면 우리의 몸이 구속되는데 이는 몸이 영화가 되는 구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우리는 속으로 탄식하며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8:2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영화가 되는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우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신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4:30). 우리는 구속의 날까지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구속의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복된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기다리는 우리는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2:12-13). 우리는 이 세상에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우리를 향하여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13:12)라고 했습니다. 어두움의 깊은 밤이 지난 후에 새벽이 찾아오듯이, 주님은 영적으로 어두운 시기가 지난 후에 영광의 주로 이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2. 우리는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13:12).

 

사도 바울은 깊은 밤이 지나가고 낮이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벗어야 할 어두움의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13:13).

 

첫째는 단정히 행해야 합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13:13). 단정히 행한다는 것은 흐트러짐 없이 바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둘째는 방탕하지 말아야 합니다. 방탕한 것은 먹고 마시는 일에 빠져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저녁마다 모임을 가지며 가정을 돌보지 않고 먹고 마시는 쾌락적인 일에 빠져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술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술 취하는 것은 술에 빠져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실수하게 되고 죄로 연결되어 집니다. 음주 운전을 하다가 큰 사고를 내기도 하고, 판단력이 흐려짐으로 더 큰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잠언서는 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23:21).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술을 즐기는 자에게는 재앙과 근심과 분쟁이 찾아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나라.”(23:29-30). 술에 잠긴 자에게는 재앙이 찾아오고 근심이 있으며, 분쟁과 원망이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술에 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술은 뱀같이 물 것이며 독사같이 쏠 것이기 때문입니다. “포도주는 붉고 전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도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23:31-32).

 

술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이 무너지곤 합니다. 술에 취하여 음주 운전하다가 인명 피해가 나기도 합니다. 술에 취하여 다투다가 큰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며, 술에 취하여 음주 가무를 하다가 음란의 죄에 빠지기도 합니다. 술은 사람이 이성을 마비시켜서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언 기자는 술을 보지도 말찌어다 라고 했습니다.

 

넷째는 음란과 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13:13). 음란은 성적으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음란이란 한 몸인 부부외에 다른 사람과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호색은 성적으로 문란한 삶을 살아가는 부도덕한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영과 몸과 혼이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니골라당이라는 당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한다고 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니골로당의 교훈을 허용하지 않음으로 주님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버가모 교회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가 있어서 다음과 같이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2:14-15).

 

니골라당은 진리 안에서 자유를 얻었기에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그들은 영으로 구원을 받았기에 육신은 쾌락적인 삶을 살아도 좋다는 도적 폐기론을 주장했습니다. 그 결과로 니골라당의 교훈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방조와 음행의 죄를 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발람의 교훈에 대하여 언급하셨습니다. 발람이 모압왕 발락에게 이스라엘에게 가져다 줄 올무를 놓게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 숭배에 참여하게 하여 우상하게 절하며 모압과 미디안 여인들과 음행하게 한 것입니다. 바알 숭배에는 음행하는 행위가 포함되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우상 숭배로 유혹하여 타락하게 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이만명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이 심판을 받아 죽음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음행을 미워하십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성전이기에 자신을 거룩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는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6:17-19).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가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의 거룩하심과 같이 성전된 자신의 몸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다섯째는 쟁투와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 ...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13:13). 쟁투는 다투거나 논쟁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어떠한 문제를 가지고 서로 다투면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쟁투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시기는 질투하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는 죄에 대한 강한 욕구입니다. 다른 사람이 더 인정을 받거나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면 그것에 대한 시기심으로 미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미움은 분노라는 죄를 낳고 결국 자신의 마음을 어두움에 빼앗기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시기와 질투는 교회를 분열시키고 더 나아가 다툼의 숨겨진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고 살아가는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는 것이고, 방탕과 술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음란과 호색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다툼과 시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

 

오직 주 예수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4).

 

사도 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영적 전쟁을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6:11).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바로 아담 안에서의 옛 사람의 옷을 벗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옷을 입으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서 사도 바울은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4:24). 우리는 옛 사람의 옷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따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의 연합으로 아담 안에 있던 옛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과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었다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우리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의 육신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날마다 바라보는 삶은 우리가 더욱 주님을 닮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시는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는 더욱 주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으면 우리는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는 것입니다. 육신의 일은 육체가 원하는 죄와 자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즉 죄의 본성이 우리에게 기회를 타서 죄를 범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로 옷 입으면 더욱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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