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41) -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 12:15-21).

비전의 사람 2021. 8. 25. 17:55

로마서 강해(41) - 선한 일을 도모하라(12:15-21).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말라.”(12:15-16).

 

로마서 12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인하여 삶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그리스도안에서의 변화입니다.

 

1)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2)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족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2:19).

 

3)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명을 부여 받았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16:15).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 새로운 가족과 함께 새로운 사명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즉 우리는 육신에 매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사람이 되어 주님과 연합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구약의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와같이 신약에서도 어떻게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가를 배우는 것이 중요한 가치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배우는 이웃 사랑의 자세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형제들의 희노애락을 공감해야 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12:15).

 

우리는 하늘에서의 삶이 아니라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즉 희노애락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즐거워하기도 하고, 노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하여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3:4). 우리의 삶에는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즐거워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은 수고하며 낙을 누리는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3:12-13).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먹고 마시며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항상 즐거운 일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내며 고통하는 시간이 있기도 합니다. 저희 부모님들도 이제 연로하셔서 거동하기도 힘드신 상황에 직면하셨습니다. 어머님도 이제 치매 초기를 경험하고 계시고 거동하기도 쉽지 않으십니다. 저의 장인 어르신도 파키슨으로 온몸이 굳어서 침대에 누워만 계십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시겠습니까? 한때는 논과 밭에서 하루종일 땀을 흘리시며 일하시고 늦게 집에 오셔서 식사하시는 시간도 있으셨습니다. 추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사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침대에 누워 계시고 다른 사람의 돌보심을 받으셔야 하는 때를 만나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는 가족입니다. 전도서는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4:10, 12).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넘어지면 붙들어 일으킬 수 있는 동무가 있어야 합니다.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넘어지면 일으켜주는 동무가 가정에서는 배우자입니다. 그리고 가족들입니다. 교회에서는 지체들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지만 두 사람이면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는 믿음의 지체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12:15). 우리는 지체들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우리는 함께 예배하고 함께 사역을 하며 함께 선교에 동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삶의 고통과 기쁨을 나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즉 서로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며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 수 있어야 합니다. 지체가 즐거워하면 우리는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체가 슬퍼하면 함께 울며 애통해 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는 지체가 함께 고통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6-2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이기에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함께 고통하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한 몸됨을 지켜야 합니다.

 

2. 우리는 마음을 같이 하며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말라.”(12:16).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한 몸이 되었습니다. 한 몸으로서 우리는 또한 영적인 가족입니다. 가족으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과 평안입니다. 이러한 사랑과 평안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요소는 바로 겸손입니다. 즉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낮은 자로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체 말라.”(12:16)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에서 그리스도인은 마음을 같이 하며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지혜있는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경쟁하고자 하는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배경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을 높이려는 욕구가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자칫하면 교회가 이러한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면 고린도 교회와 같이 분쟁이 생기며 다툼이 생길 것입니다. 다툼이란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다툼의 배경에는 욕심이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경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일에 힘쓰게 됩니다. 마치 예수님이 자신을 희생하셔서 본을 보이시고 제자들을 세우셨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높아지려는 어리석은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고린도 교회는 자신이 따르는 지도자를 선택하여 서로 분열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을 따랐고, 어떤 사람은 아볼로, 어떤 사람은 베드로,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육신적인 교회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분열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같은 말을 하고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는 교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되어 서로 사랑하는 교회를 통하여 그 분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분열이 있다면 하나님이 일하실 수 없습니다. 교회가 육신적인 생각에 사로잡힌다면 하나님은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서로 미워하고 다투며 세상적인 죄로 인하여 세속화되었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함으로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연합하면 하나님은 그 안에서 역사하셔서 그 분의 능력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 안에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의 사랑안에 하나님이 거하셔서 그 분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선으로 악을 갚아야 합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12:17).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크게 상처 받아 고통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악한 마음을 품은 자가 뱀의 독과 같이 독을 품어 고통과 상처를 주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상대에게 동일한 고통을 주는 복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직접적인 복수를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마음으로 악으로 복수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도리어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1221절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세상이 살아가는 가치는 달라야 합니다. 텔레반이 자신들을 조롱한 코미디언을 잡아서 고문하고 죽임으로 세상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복수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악에게는 지지 말고 도리어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악에게 악으로 갚고자 하는 것은 복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12:18)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과 평화해야 합니다. 가급적 가족이나 지체 그리고 세상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화평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화평하고 악으로 악을 갚지 않기 위하여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19장은 거룩한 삶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원수를 갚지 않는 것입니다.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19:17-18). 우리는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원수 갚는 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악을 행했다면 그 악에 대하여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실 것입니다. 나훔 선지자는 니느웨가 멸망한 이유에 대하여 애굽의 데베라는 도시를 점령하면서 어린 아이를 길에서 학살하고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훔 선지자는 니느웨를 피의 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행한 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세우셔서 앗수르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여러 나라를 정복하면서 수많은 피를 흘렸기에, 이제 그들이 바벨론에 의하여 피를 흘리며 죽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6:7). 우리는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12:19). 우리가 당한 악이 있다면 악을 악으로 갚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억울함을 아시고 그것을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공의의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도리어 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12:20)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악을 행한 원수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도리어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실 물을 나누어야 합니다. 즉 그들의 필요를 공급함으로 은혜를 베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함으로 우리는 숯불을 그 머리에 쌓는다고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숯불은 음식을 하거나 방을 따뜻하게 하는 소중한 자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숯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숯불이 꺼지면 화로를 머리에 이고 이웃에게 숯불을 구해야 했습니다. 이때 원수라도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고 목마른 자에게 물을 공급하듯이, 숯불이 필요한 자에게 숯불을 나눔으로 은혜를 베풀어야 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자신이 해를 끼친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음으로 자신의 죄에 대하여 수치를 느끼고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21)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변화는 거룩한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으로 표현되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체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하고, 마음을 같이 하여 자신을 낮추며, 원수에 대하여 복수하지 않고 도리어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에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