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45) - 서로 정죄하지 말라(롬 14:1-12).

비전의 사람 2021. 10. 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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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45) - 서로 정죄하지 말라(14:1-12).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14:1).

 

로마서 14장은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비판과 정죄에 관한 문제와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배경과 성품, 그리고 연령대가 있어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되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 하나됨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교회가 하나되기 위해서 서로를 향한 사랑과 존경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복음으로 거듭나야 하고, 진리 안에서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외에도 교회의 하나됨은 주님이 부르신 사명과 사역에서도 같은 열정과 비전으로 달려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라고 권면했습니다. 우리는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해야 합니다. 하나됨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인 것입니다. 교회의 하나됨을 저해하는 요소 중의 하나는 서로에 대하여 정죄하고 판단함으로 마음에 벽을 쌓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한 지체를 업신여기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함으로 하나됨을 깨트리는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로마 교회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함께 하는 다민족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연합하지 못하고 분열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분열하는 이유는 음식에 대한 이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14:2). 이방 배경을 가진 로마의 성도는 음식에 관한 율법의 규정이 폐하였기에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배경을 가진 로마의 성도는 아직까지 음식에 관한 규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결한 음식만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지만 연약한 자는 채소만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강한 자는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이방인이지만, 약한 자는 음식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율법에 매여 정결한 음식만을 먹는 자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은 서로를 업신여기거나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서로 정죄하지 말고 하나됨을 지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15:7)라고 했습니다. 로마 교회가 서로 받아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하듯이, 우리도 서로 정죄하거나 업신여기지 말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정죄하지 말고 업신여기지 않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셨기에 우리는 서로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14:1).

 

사도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14:1)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는 누구인가요? 믿음이 연약한 자는 아직 영적인 시각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자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에서 규정한 부정한 음식을 거절했고 오직 정결한 음식만을 먹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채소만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14:1)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는다는 의미는 연약한 자의 믿음을 존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논쟁의 여지에 대하여 다투지 말고, 그들의 연약한 믿음에 대하여 존중함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업신여기거나 정죄하면서 겉으로 받는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그들의 연약한 믿음을 존중하면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믿음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강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약한 믿음이라도 그 믿음으로 주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14:2)라고 했습니다. 당시의 이방인들은 율법적인 배경이 없었기에 구약의 율법에 매이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더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이후에 율법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구원을 받았다 할지라도 아직 은혜와 율법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서 가르치는 음식법을 준수하고 있었기에 채소를 먹어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다른 믿음은 서로에 대한 다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를 업신여기고 있었고, 믿음이 약한 자는 믿음이 강한 자를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14:3)라고 했습니다. 이는 강한 믿음의 사람이라도 약한 믿음의 사람을 업신 여기지 말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약한 자는 믿음이 강한 자를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로 교회 내에서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를 업신여기는 죄를 범하기가 쉽고, 믿음이 약한 자는 믿음이 강한 자를 비판하는 죄를 범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왜 우리는 서로 업신여기거나 비판하지 말아야 할까요? 우리가 서로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이 강한 자도 받으시며, 또한 믿음이 약한 자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그 믿음을 존중하시는 사람에 대하여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믿음에는 악의 적인 것이나 육신 적인 것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아직 믿음이 어려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미성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가 성숙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또한 믿음이 약한 자는 믿음이 강한 자에 대하여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우리는 모두 주를 위하여 살기 때문에 서로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14:8).

 

우리가 서로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모두가 주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14:4)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서거나 넘어지는 것이 우리의 주인되신 주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의 교회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너는 누구이관대 다른 사람의 종을 판단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한 교회에서 함께 섬기지만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유함을 얻었지만 주님의 종으로 헌신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고 넘어지는 것이 우리의 주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세우시는 권능은 오직 주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로마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특절한 절기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14:5). 로마의 성도들 중에는 유대인들은 유대인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날이 다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한대로 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날이나 음식에 대하여 중히 여기는 것은 주님을 위하여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날을 중히 여기지 않고 먹지 않는 것도 모두 주를 위한 것입니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14:6). 날을 중히 여기거나 음식에 관한 의견도 모두 주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면 서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각자의 믿음을 존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위하여 살거나 죽는 자가 아니라, 주를 위하여 살거나 죽는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가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14:7-8). 우리는 살고 죽는 것이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열정이 오직 주님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주가 되시기 위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기에 우리는 항상 주를 위해서 살아가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10). 우리가 이 육신에 거하든지 떠나 주님과 함께 거하든지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각자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위하여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에 우리는 서로를 향하여 다른 의견 차이로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주님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를 위하여 주님께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5).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기에 우리도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정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종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을 세우는 것이나 넘어지게 하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맡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종을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것은 주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각자 서기에 서로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14:10).

 

사도 바울은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14:10)고 했습니다. 즉 네가 누구이기에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냐고 했습니다. 우리는 형제를 업신여기거나 판단하는 권한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판단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백보좌 심판을 통해서 영원한 형벌인 지옥불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퍼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20:11-12). 불신자들이 죽은 후에는 백보좌 심판을 통하여 정죄를 받아 지옥불에 떨어집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지옥불에 떨어지는 심판이 아니라 상급의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는 믿는 자들이 받을 심판을 그리스도의 심판대라고 부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시편 말씀을 인용하면서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14:11)라고 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고백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가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14:12).

 

우리는 각자가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서 심판을 받을 때에 직접 직고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행위에 대하여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 날이 있기에 주님께 심판을 의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다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행한 일에 대하여 악하고 선한 것에 대하여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심판은 선에 대하여는 큰 상급과 칭찬이 있지만, 악에 대해서는 큰 책망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심판이 우리 앞에 있기에 각자의 믿음에 대해서는 주님께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체들에 대하여 업신여기거나 비판함으로 하나됨을 깨트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역할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세워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본이 됨으로 연약한 자들이 보고 배우며 따라갈 수 있는 믿음의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정죄나 비판이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고 용납함으로 주님의 몸을 세워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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