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40) -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삶(롬 12:12-14).

비전의 사람 2021. 8. 18. 17:48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12:12-13).

 

로마서 12장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변화 받은 후에 살아가야 하는 영적인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는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하는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한 사람은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먼저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지런하여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변화된 성도의 삶의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12:12).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항상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소망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11:1)라고 했습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됨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믿기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도 그 분의 때에 성취됨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 중에 즐거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망이신 하나님이 그 분의 약속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항상 환난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죄로 인하여 깨어진 세상이기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환난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난을 어떠한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환난이 화가 되기도 하고 복이 되기도 합니다.

 

노아는 대홍수에 대한 경고를 받아 방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환난이 찾아올 때에 믿음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소망이 되십니다. 노아는 대홍수의 경고를 듣고 믿음으로 방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환난의 소망은 하나님이시기에 노아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11:7).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소망을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방주를 예비하는 120년 간의 시간동안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소망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소망은 희망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우리로 하여금 살아갈 용기를 갖게 하며 즐거워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삶은 스스로의 인생을 무너지게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둠으로 인하여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우리 마음이 저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 성호를 의지한 연고로다.”(33:18-19).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고 그 분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시며 그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기근시에 살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시며 방패이심을 믿기에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더욱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환난 중에 참아야 합니다.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12:12). 우리에게 환난이 찾아오면 우리는 인내하며 참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수많은 환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로 기근과 홍수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최근에 터키나 그리스에 산불로 인하여 수많은 마을이 불에 타기도 했고, 독일과 같은 유럽에 홍수로 인하여 수많은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과 일본에 대홍수가 나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났습니다. 또한 최근에 아프가니스탄이 텔레반에 의하여 정권이 무너지면서 큰 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크리스챤들이 있는데, 그들의 미래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대혼돈이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얼마 전에 미얀마에서 일어난 쿠데타로 인하여 민간인들이 1,000명 이상 학살을 당했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위기에서 사람들은 무척이나 고통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백신을 맞으면 어느 정도 예방은 있겠지만, 집단 면역은 결코 이를 수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일 년에 한 두번 백신을 맞아가면서 코로나와 함께 지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환난 중에 참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환난 중에는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내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8-9). 우리의 삶에 환난이 찾아오고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이 찾아올 때, 우리는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환난 중에 인내하면서 기도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12:12).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히 환난 중에 지속적으로 인내하게 하는 힘은 기도를 통하여 찾아오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를 통하여 내적인 힘을 얻게 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얻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기도에 항상 힘쓰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성도들의 필요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12:13).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10절에서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고 했습니다. 형제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며 소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믿음의 지체 중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필요를 외면하지 말고 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구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수 때가 되면 추수할 때에 모두 거두지 말고 이삭을 남겨서 가난한 자나 나그네들이 양식을 하도록 남겨 두도록 했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 예루살렘 교회는 어려운 성도들을 돌보기 위하여 구제 사역에 힘썼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사회나 국가적으로 복지 정책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가 지체들의 어려움에 대한 짐을 지고 함께 필요를 나눌 필요가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우리가 믿음의 가정들에게 착한 일을 더욱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6:9-10). 우리는 선을 행하면서 그 일에 낙심하여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선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하라고 했습니다.

 

사도 행전에는 성도들의 필요를 위해서 헌신한 성도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도르가라는 여제자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병들어 죽자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근처 룻다에 있는 베드로를 욥바로 불렀습니다. 베드로가 가자 사람들이 도르가가 지어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건절히 기도하자 죽었던 도르가가 살아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도르가에게 은혜를 주셔서 다시 살아나게 하신 것은 그녀가 평소에 행했던 선한 행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잠언은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11:25)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지체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얻게 하는 길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할 뿐 아니라 손 대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12:13). 손 대접하는 것은 나그네에게 숙소와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에는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호텔이나 식당이라는 제도가 없었기에, 여행하는 사람들은 초청하는 주인에 의지하여 쉴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추운 겨울이나 비가 오는 날이라면 누군가의 초청은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사람들은 사람들의 필요를 외면하지 말고 도움을 주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도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도 있었느니라.”(13:1-2)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며,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창세기 18장에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았다가 사람 셋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영접하여 음식을 준비하여 섬겼습니다. 아브라함은 떡과 송아지를 잡아 섬겼습니다. 이때 그들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임을 에언했습니다. 그리고 소돔성의 멸망을 알려주자,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중보 기도함으로 멸망에서 조카 롯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고 손 대접하기를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찾아오시는 선교사님들이 목사님들을 섬기는 것이 바로 손 대접하기를 힘쓰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3. 우리는 핍박하는 자를 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12:14).

 

사도 바울은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축복하는 것은 선에 속한 것이지만, 저주하는 것은 악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할 수 있는 마음은 변화된 마음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의 변화는 자신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를 새롭게 하심으로 주시는 새로운 마음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원수를 사랑하며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6:44). 주님께서는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원수를 사랑하며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며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에서는 “...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6:27-28)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이며, 주님을 닮아가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할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은 영적인 성숙의 모습입니다. 이는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주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통하여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 그들은 도리어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이때 간수가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여 스스로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이 그의 자결을 막고 도리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16:31).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인하여 간수와 그의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간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복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의 믿음을 조롱하기도 하고 핍박하기도 합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그리스도인들은 순교의 위협에서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느 날 하나님과 마호메트에 대한 선택을 강요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믿음을 지켜야 하는 날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주님은 그들을 위해서 축복하며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원수까지 축복할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형제들을 위하여 더욱 희생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변화된 삶은 세상의 이치와 상식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성과 감정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