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46)- 형제 앞에 거칠 것을 두지 말라(롬 14:13-23).

비전의 사람 2021. 10. 1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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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46)- 형제 앞에 거칠 것을 두지 말라(14:13-2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14:13).

 

로마서 14장은 믿음의 강한 자와 약한 자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약한 자는 믿음이 강한 자를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위하여 죽으셔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셨기에 우리도 서로를 받는 은혜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기에 우리의 삶은 주님께서 받으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로마서 1413절에서 23절 까지는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약한 자를 받고 그 앞에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두지 말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14:13). 사도 바울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부딪힐 것이란 넘어지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연약한 자를 영적으로 넘어지게 하는 것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에서 규정하는 율법의 음식에서 자유하는 강한 자가 아직 음식에서 자유하지 못하는 연약한 자를 넘어지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한 자는 아직 율법에서 금지한 음식을 먹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믿음이 강한 자가 그러한 믿음을 강요한다면 그가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는 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는 믿음의 양심에서 위배되는 일을 함으로 자신의 믿음에서 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지체들을 향한 사랑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유함을 누려야 합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14:19)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의 자유함이 믿음이 약한 자를 넘어지게 한다면 이것은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약한 자가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섬세함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약한 자를 세울 수 있는 영적인 원리를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형제를 세워야 합니다.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14:15).

 

믿음이 약한 자는 율법에서 규정한 부정과 정결한 음식에 매여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구약의 율법의 규정에 대하여 자유하지 못하고 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스스로 부정한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은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14:14). 사도 바울은 스스로 속된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속된 것이란 부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부적절한 세속과의 접촉으로 부정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구약의 율법에서 규정한 의식적인 부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을 성취하셨기에, 구약에서 규정하는 부정한 음식이나 정결한 음식 자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가복음에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7:19)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가는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이나 간음과 같은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며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음식이 부정하다고 여기면 그 음식이 자신에게는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약한 자는 구약의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지 못하고 매여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의 모든 율법을 종식시키시고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율법의 규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약한 자에게 근심을 주는 것은 사랑으로 행치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14:15). 식물을 인하여 형제를 근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믿음이 약한 자가 믿음이 강한 자가 먹는 부정한 음식을 보고 근심하거나 심지어 고통을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이 약한 자는 아직 부정하다고 여겨진 음식을 먹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마음에 근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러한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의 강요로 양심에 반한 행동을 하여 음식을 먹게 되는 것은 그의 믿음을 무너트릴 수 있는 요소가 됩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 앞에서 거만한 태도나 업신여기는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약한 자는 믿음의 양심상 아직 먹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강한 자들이 주는 잘못된 태도 때문에 음식을 먹어야 하는 압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직 모든 음식을 먹을만한 믿음이 없지만, 믿음이 강한 자의 압력으로 먹음으로 근심하고 음식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해야 하는 근본 진리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여 구원하신 형제를 음식과 같은 식물로 믿음을 무너트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형제를 망하게 하는 것은 그의 믿음을 무너트리는 것입니다. 즉 양심으로 행하지 않게 됨으로 죄를 짓고, 그 결과로 실족하여 믿음에서 떠나는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생명까지 희생하셨는데, 믿음이 약한 지체를 위하여 음식과 같은 작은 것에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는 자들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지식에는 강하지만 마음에는 사랑으로 행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지식에서 아무리 바르게 믿는다고 할지라도, 그 지식이 지체를 허무는 것이라면 지식에서 오는 자유함을 잘못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지식은 교만하게 하면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지역은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사람은 우상의 신전에 가서 우상 숭배를 한 후에 음식을 먹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즉 그 사회에서는 우상에게 바쳐진 재물을 먹는 것은 우상 숭배에 참여하는 것을 간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계시기에 우상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우상에게 바쳐진 재물 조차도 별 영적인 의미가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줄 아노라.”(고전 8:4)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기에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전에 우상을 숭배하였고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에게 드려진 음식을 먹는 것은 우상 숭배와 연관하여 생각했기에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이때 그들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것은 그들의 양심이 약해지고 더러워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 앞에서 음식을 먹는 자유함으로 그들의 양심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 8:9)라고 한 것입니다. 유대인이 우상의 집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믿음이 약한 자가 담력을 얻어 음식을 먹음으로 양심이 더러워지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지식으로 약한 자를 멸망시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 8:11-13). 사도 바울은 우상에게 드려진 음식을 먹을 자유가 있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형제가 실족하게 되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주신 자유함으로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며 덕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자유함을 누려야 하지만, 그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를 근심하게 하거나 실족하게 한다면 그 자유를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써야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14:19).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14:16)라고 했습니다. 선한 것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폐하여진 구약의 율법을 의미합니다. 특히 율법에서 가르치는 음식에 대한 규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에서 벗어났기에 어떠한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는 자유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자는 아직 율법에서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음식에 대하여 자유함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주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자들을 비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함으로 음식을 먹지 않을 자유를 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믿음이 강한 자의 자유함, 즉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 안에서 자유함이 있다 할지라도 믿음이 연약한 지체로부터 비방을 받는다면 절제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4:17). 믿음이 강한 자가 인식해야 할 본질적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강한 자가 믿는 자유함으로 인하여 믿음이 약한 지체들에게 영적인 해를 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바리새인들인 율법에 집중하느라 의와 인과 신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의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바른 관계이며, 인은 사랑이며 신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에 집중하느라 율법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로마 교회도 율법에서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성령이 주시는 의와 화평과 기쁨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본질이 아닌 것입니다.

 

먹는 것은 율법에서 규정한 정결과 부정에 대한 음식을 의미하며, 마시는 것은 우상에게 드려졌던 술을 의미합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은 우상에게 드려진 포도주에 대해서도 더럽혀진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이 주시는 의와 평강과 희락에 있는 것입니다. 의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지체들간의 윤리적인 바른 행동입니다. 즉 지체들간에 사랑으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강은 지체들 간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지지해주는 것입니다. 기쁨은 의와 평강이 가득할 때에 느끼는 감정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교회의 지체들이 사랑으로 행할 때에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교회안에서 음식이나 다른 이슈들로 인하여 자신의 주장만을 앞세운다면 서로 분열하게 됩니다. 그리하면 평안이 사라지고 서로 비방하면서 의가 사라지게 되면서 기쁨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이와같은 모습으로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입고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14:18). 그리스도를 섬기는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는 먹고 마시는 것보다 의와 평강과 기쁨을 더 큰 가치로 여기며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로부터 비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강한 자가 연약한 지체들을 향하여 품어야 할 자세인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 먹는 거나 마시는 것보다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자는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써야 합니다. 화평의 일이란 다른 지체들과 조화를 이루며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덕을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덕을 세우는 것이란 건물을 세우는 것이란 뜻입니다. 이는 지체들을 세움으로 인하여 교회를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란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보다 교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교회가 지체들로 인하여 세워지는 것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생각을 앞서게 되면 서로 비방하거나 업신 여김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체들이 화평을 누리기에 힘쓰고 덕을 세우는 일, 즉 교회를 세우는 일에 힘쓰게 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교회가 더욱 강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3. 우리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4:22).

 

믿음이 강한 자는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트리지 말아야 합니다.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14:20). 무너지는 것은 덕을 세우는 것에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사도 바울은 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을 향하여 교회를 허물지 말라고 심각하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사랑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의 약한 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연합이 깨어져 하나님의 사업이 무너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다 깨끗하기에 구약의 율법에 더 이상 매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거리낌으로 먹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한 믿음을 가진 자가 먹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믿음을 무너트리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나쁘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다는 것은, 만물이 다 정결하지만 음식에 대하여 거부감을 갖는 자가 넘어지게 하는 것은 나쁘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한 것이라도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덕을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 8:9)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사도 바울은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14:21). 우리는 형제가 거리낀다면 고기와 포도주를 마실 자유함이 있지만, 그러한 것을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는 모습으로 형제를 세우는 것이 더욱 아름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가지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갖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4:22). 강한 믿음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에 대하여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어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대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망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강한 믿음을 가진 자가 자신의 자유함을 믿음이 약한 자 앞에서 주장하다 보면 믿음이 약한 자가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므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스스로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 믿음대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자는 의심하는 자입니다. 그들은 아직 구약의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었다는 충분한 확신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한 의심을 가진 자가 부정하다고 여기는 음식을 먹는 것은 정죄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모습을 정죄하시는 이유는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이 먹었기 때문입니다. 즉 사도 바울은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14:23)라고 했습니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믿음으로 행하지 않았기에 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에게 안식일이나 음식에 대하여 강요하지 말아야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러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로 하여금 양심에 위반되게 행하게 하는 것은 그들로 죄를 짓게 하는 것이며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강한 믿음의 사람들이 약한 자들에게 믿음을 강요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믿음이 자라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음 안에서 양심으로 주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후에 그들은 주님이 주시는 자유함 속에서 강한 자들을 따르며 함께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함께 지체가 되어 주님을 섬깁니다. 이때 우리는 믿음이 연약한 자를 업신여기거나 믿음을 강요하는 위험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강한 자가 해야 할 일은 믿음을 주장해서 그들이 넘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강한 자가 보여주는 믿음의 모습과 사랑에 이끌려 마음의 문이 열리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라가면서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고 장성한 자가 됨으로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따르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함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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