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47) -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롬 15:1-6).

비전의 사람 2021. 10. 2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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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47) -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15:1-6).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15:1).

 

교회에는 믿음이 강한 자가 있고 약한 자가 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있는 자며 더욱 성숙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누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섬깁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8:31)라는 주님의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율법에서 자유하며 세상의 유혹에서 자유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죄에 매이지 않고 늘 말씀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한 자는 항상 매이는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지만 아직 율법에 매여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아의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 자주 넘어집니다. 또한 세상의 유혹과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 패배하는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믿음이 약하기에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성령이 주시는 의와 평안과 기쁨의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대신에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정죄하면서 시간을 보내기에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풍성함을 누리지 못합니다.

 

이와같이 교회에는 다양한 믿음의 사람들이 공존하며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교회가 주님의 몸이라는 신학적인 개념을 이해하곤 하지만, 내면으로는 온전한 하나됨을 이루지 못하고 서로 간에 담을 쌓음으로 분열하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즉 함께 주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함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어떻게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 믿음이 강한 자는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합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15:1).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고 그들의 연약함을 비판하거나 업신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만한 강한 믿음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믿음이 연약하여 채소만을 먹습니다. 강한 자는 아직 율법에서 자유하지 못하는 연약한 자를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믿음이 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이 모두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판단받는 것은 합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결국 주님 앞에 가서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강한 자는 연약한 자에게 부딪할 것이나 거칠 것으로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형제가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 연약한 형제 앞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그들을 시험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약한 자가 식물로 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믿음이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15:1). 교회에서 믿음이 강한 자는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합니다. 연약한 자의 약점은 무엇일까요? 연약한 자의 약점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믿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편견에 사로 잡혀 있거나 성숙하지 못한 인격, 그리고 잘못된 신학적인 사상일 수 있습니다. 연약한 자의 약점은 연약한 자가 범하는 죄가 아닙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했기에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포용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 모든 사람이 믿음이 연약하다면 교회에는 항상 문제가 일어나며 분쟁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에는 믿음이 강한 자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주님 안에서 자유하는 자입니다. 그들의 자유는 율법에서 자유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해가는 자입니다. 그리고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세상의 죄와 욕심에 매이지 않고 자유하며 주님만을 기뻐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주는 상처나 비난에서도 자유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는 자신을 비난하는 말을 들으면 흥분하고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강한 자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고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자는 다른 사람을 지탱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6:2)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짐을 지게 되면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법이란 사랑의 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짐을 지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죄의 짐에서 벗어나 자유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연약한 자를 배척하거나 업신여기는 마음을 버리게 합니다. 은혜는 도리어 연약한 자를 이해하고 형제와 자매로 품어주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가족은 서로의 연약함을 비난하기 보다는 서로 존중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가정을 세워갑니다. 우리는 모두가 연약함을 가지고 있기에 가족으로부터 용납이 되지 않는다면 항상 불만과 분열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고 품게 되고, 아내와 남편이 서로의 연약함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하나됨을 지키려 합니다. 형이나 누나가 동생들을 사랑하기에 연약한 점을 이해하며 함께 형제애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가정이 하나가 되는 비결은 바로 서로를 향한 사랑입니다. 이와같이 교회도 주님의 몸으로서 사랑으로 서로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에서도 연약하고 행동에서도 실수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사소한 말 한마디로 지체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다른 지체들의 행동이나 말을 도저히 용납하기도 어렵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덕을 세움으로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15:2).

 

사도 바울은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당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대신 이웃을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웃이란 로마의 모든 성도들을 지칭하며 특히 연약한 자들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강한 자가 교회의 연약한 지체를 기쁘게 하도록 힘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을 인생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특히 믿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이나 이웃보다는 자신의 유익이 삶의 우선순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이 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체들을 기쁘게 하는 이유는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함으로 선을 이루게 되는데, 그 선이란 바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덕을 세운다는 의미는 집을 건축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성전입니다. 교회의 지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합하여 성령이 거하시는 처소로 세워지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1-22).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입니다. 그러므로 지체들이 서로 연결하여 세워져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덕을 세운다는 뜻은 건물을 세우듯이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운다는 의미는 성도들이 연합하여 함께 성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워가기 위해서 감당해야 할 일이 바로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약점으로 인하여 배척하거나 거리를 두면 교회를 세우다가 멈춰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가 되기 위하여 지체들은 건물과 같이 서로 연합해야 합니다. 서로 연합하는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14:19)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화평하게 하는 것이 서로 덕을 세우는 것이며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15:3).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기쁘게 하시려 했다면 십자가의 길을 거부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십자가는 고통이며 죽음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라는 시편 699절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하나님을 섬기는 다윗에게도 그 비방이 임한 것을 말씀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쳐서 그 분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모든 비방과 고난을 감당하신 것은 자신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셔서 기쁨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도 삶의 가치가 먼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구해야 합니다. 에베소서는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5:10)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지체들이 서로의 약점을 담당하며 화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기쁘게 하기 보다는 이웃을 기쁘게 하는 자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우리는 서로 덕을 세우는, 즉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3. 우리는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주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15:4).

 

사도 바울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에 기록한 것은 구약 성경을 지칭합니다. 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성취하신 후에 신약을 기록하셔서 영적인 가르침을 주셨지만, 구약의 말씀도 신약과 동일하게 우리에게 주신 교훈의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와 역사하심에 대한 풍성한 교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약이 없다면 신약은 그 빛을 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5-16). 사도 바울이 언급한 성경은 구약 성경을 의미합니다. 디모데는 구약 성경을 배우며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도 포함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전에 기록한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인내와 위로로 소망을 갖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가 고난당할 때에 인내하게 하며 위로를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 당하는 자의 위로자가 되십니다. 우리가 힘들 때에 성경을 묵상함으로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 소망을 두고 살게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교회가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서 그 분의 은혜가 공급되는 통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한 자의 약점을 감당할 때에 우리가 서로 한 뜻과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십니다.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15:6-7).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내하게 도우시고 위로를 주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로 살아가는 우리는 지체들 간에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뜻이 같아야 하고,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주님을 섬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길은 우리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서로 마음을 합하는 것이며, 서로 뜻을 같이 하며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은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합하는 것이 우리가 순종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같은 마음과 뜻으로 합할 수 있는 이유는 성령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하나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심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대속의 죽으심과 몸의 부활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재림하셔서 우리를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적인 잠기는 침례 의식을 믿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같은 믿음으로 하나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간적인 약점이나 결함이 우리의 하나됨을 깨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품고 함께 성장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4:2-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과 온유로 오래 참으며 서로 사랑으로 용납함으로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됨으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로마서는 복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이 이제는 교회에서 연합하여 주님의 영광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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