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48) - 서로 받아라(롬 15:7-13).

비전의 사람 2021. 11. 1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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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강해(48) - 서로 받아라(15:7-13).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15:7).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도 자신의 영광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임재를 나타나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때가 언제인가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11:40)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을 때에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하나님을 섬길 때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15:6).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 뜻을 같이 하며 한 마음과 한 입으로 예배하며 섬길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아멘 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하며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에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위하여 교회에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원리를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서로 받아야 합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15:7).

 

우리는 서로를 받아야 합니다. 서로를 받는다는 의미는 믿음이 강한 자와 믿음이 약한 자가 서로 갈등하며 반목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합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는 이방인들을 지칭하고 있으며, 믿음이 약한 자는 아직 율법에서 자유하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로마 교회에서 서로 비난하고 업신여기는 일을 멈추어야 했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연약한 자가 의심하는 것을 비판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판단하지 말고 믿음이 약한 자 앞에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두지 말아야 했습니다. 또한 믿음이 강한 자는 마땅히 믿음이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함으로 사랑을 보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15:1). 우리는 자기보다도 이웃을 기쁘게 함으로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곳은 몸을 이루는 곳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지체들이 연합하여 이루는 곳입니다. 몸이라고 할 때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머리와 몸의 각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어있고, 각 지체들은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각 지체의 한 부분이 암이 되어 다른 지체에게 악영향을 끼치게 되면, 의사는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암이 된 부분을 과감하게 도려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은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함께 성장합니다. 이와같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각자의 지체는 생명이 있어야 연합할 수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급받으며 교회라는 몸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은 성장하기 위하여 연합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받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속죄하신 후에 우리의 약점과 죄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위하여 우리의 공로는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셔서 구원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서로를 받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2:13-14)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즉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전에는 원수되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 되시는 것입니다. 둘로 하나를 만드시고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그 분의 교회를 세워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자신을 몸의 한 지체를 볼 수 있는 영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내 중심으로 다른 사람이나 사역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며 서로를 향한 사랑과 존경으로 바라보고 연합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시고.”(15:8).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다고 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증표였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를 받음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스스로 구별했습니다. 즉 할례는 구별된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할례의 수종자란 할례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브라함 자손으로 태어나셔서 할례에 순종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할례를 받으신 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견고하게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모든 민족이 받을 것이라는 언약을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22:18).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는 씨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갈라디아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손 즉 씨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3:16).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구속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십자가의 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즉 이방인이라도 긍휼하심을 입어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바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15:9).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하여 종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시편 1849절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18:40). 이 시편은 다윗은 이방인들을 정복한 후에 그 승리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한 노래입니다. 다윗이 이방인들을 정복한 후에 그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입니다. 이는 이방인들이라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참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다윗은 이방 민족을 정복한 후에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의 반열에 속하게 했습니다. 이와같이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함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신명기와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또 가로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저를 찬송하라 하였으며.”(15:10-11). 로마서 1510절은 신명기 3243절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는 모습에 대한 에언입니다. 즉 이방인들이라도 주의 백성인 유대인과 함께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1011절은 시편 1171절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모든 열방들이 주를 찬송하며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은 후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특권을 누릴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열방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망을 두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알게 합니다. “또 이사야가 가로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15;12). 이는 이사야서 1110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11:10). 이새는 다윗의 부친입니다.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는 것은 이새의 후손에게서 다윗이 나오고, 그의 후손에게서 온 세상의 소망이 되실 메시야가 나실 것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고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는 유대인에게 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소망이 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열방을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그분의 통치는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천년왕국 기간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에 속한 것은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들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 그리고 선지자들에게 주신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언약을 자신의 생명의 값을 치루심으로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비방하거나 배제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유대인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당했기에 그 뿌리가 자신을 지켜주고 있음을 인식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 반목하지 않고 서로 받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소망의 하나님을 기대해야 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5:13).

 

하나님은 믿는 자의 소망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시는 이유는 그 분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오실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하여 소망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오신 메시야가 우리의 소망이며, 다시 오실 메시야가 우리의 소망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주심으로 미래에 있을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이 되시는 것입니다.

 

소망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충만하게 하십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5:13).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에 기쁨을 주십니다. 그리고 평강을 주십니다. 평강이란 에이레네는 생명인 조에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우리에게 평강이란 구원의 생명을 얻은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구원받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자만이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기쁨으로 인하여 내적인 평안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 거할 때에 우리의 삶은 기쁨과 평안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쁨과 평안을 누릴 뿐 아니라 소망이 넘치게 되는 것은 믿음과 더불어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할 때에 하나님이 주신 소망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은 이 땅이 아니라 주님과 영원히 거하는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약속으로 받았지만, 그의 소망은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나라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11:10).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사모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인 천국을 사모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에 아들 이삭을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들 이삭을 통하여 성취됨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줄을 믿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며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둔 삶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합하기를 힘쓰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함으로 서로를 받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교회 안에서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라는 말씀대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의 복음은 한 개인의 구원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는 진리를 가르칩니다. 그리고 로마서의 복음은 구원받은 자들이 연합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진리로 나아갑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지체들은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며 서로를 받아 연합함으로 주님께 영광돌리게 됨을 가르치며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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