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88) - 빌라도의 불의한 판결(마 27:11-26).

비전의 사람 2021. 10. 2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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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88) - 빌라도의 불의한 판결(27:11-26).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27:11).

 

예수님의 재판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혀 오신 후에 여러 번에 걸쳐서 진행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안나스에게 끌려 가신 후에 가야바와 산헤드린 앞에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밤에 재판한 것이 불법이었기에 적어도 공정한 재판을 했다는 대외적인 이미지를 위해서 새벽 5시에 다시 산페드린 공회의 재판을 했습니다. 그들이 사형을 내리기로 결정한 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보내어 로마식 처형법인 십자가의 형벌을 요구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빌라도에게서 재판 받으시며 십자가에 넘겨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는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야 하는 빌라도의 고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빌라도는 재판을 통하여 예수님의 무죄를 알았습니다.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27:1-2).

 

마태복음 271-2절은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니라.”(27:1-2). 그들은 밤에 예수님을 죽이기로 판결하는 재판을 이미 진행했습니다. 아마도 새벽 1-3시 정도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결박한 채로 감옥에 가둔 후에 새벽 미명 즉 5시 쯤에 다시 산헤드린 재판을 열어 합법적으로 재판을 열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의논한 후에 결박하고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

 

사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임을 알았기에 그 분을 십자가에서 죽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했습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18:31).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사형을 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한이 없음을 이유로 로마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최종 판결을 로마 군인에게 넘김으로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재판했다는 것을 보이려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는 헤롯 안디바에게 보내어 재판을 받게 하려고 했습니다. “빌라도가 듣고 묻되 저가 갈릴리 사람이냐 하여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23:7). 빌라도가 예수님을 헤롯에게 보냈던 이유는, 죄 없으신 예수님을 처형하는 것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신 헤롯에 의하여 재판을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헤롯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평소에도 예수님의 이적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헤롯 앞에서 어떠한 기적을 나타내지도 않으셨고 그가 던지는 질문에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예수님을 업신 여기고 희롱한 후에 다시 빌라도에게 보냈습니다. 성경은 헤롯과 빌라도는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23:12).

 

예수님이 빌라도의 관정인 안토니오 요새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에 유대인들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의 처소에 들어가는 것은 자신들이 의식적으로 더럽혀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18:28). 그들이 더럽혀지면 유월절의 절기에 참석할 수 없었기에, 그 관정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유대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속으로는 시기와 질투와 악한 마음이 가득했던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이 겉으로는 정결하고 거룩한 모양을 갖추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가증한 모습인지요? 그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당시에 예레미야가 책망한 그 모습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밖으로 나가서 저희들을 만났습니다. 빌라도는 그들에게 예수님을 데려다가 유대인의 법대로 재판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기에 사형 판결을 내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님을 불러 재판을 시작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냐고 질문했습니다.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27:1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네 말이 옳도다.”라고 하시며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18:36).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분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세우실 나라의 왕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지금은 영적인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신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아무런 죄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그들에게 재판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들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정죄하고 십자가형을 내릴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처형하도록 거짓 고소를 했습니다.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 무리가 더욱 굳게세 말하되 저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23:1-2, 5).

 

그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을 미혹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미혹한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바리새인들이 백성들을 미혹하여 지옥의 길로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셔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한다고 고소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한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백성을 소동케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이 백성들을 선동하여 로마에게 반역하려는 자라고 고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번도 로마에 대항하여 싸우거나 반역하여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하신적이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도리어 로마 군인이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권위에 있는 자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백성들이 예수님이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한다고 하자,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네 말이 옳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23:4). 빌라도가 이 사람에게 죄를 찾을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은 재판장이 피고를 향하여 무죄를 선고한 의미였습니다. 요한복음은 빌라도가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18:38)라고 한 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런 죄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로마의 법으로 처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번의 재판을 받으셨지만 아무런 죄가 없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흠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신 이유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미워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악한 마음이 예수님을 죽게 하신 것입니다. 가야바나 안나스,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나 거짓 증인들, 가룟 유다, 헤롯이나 빌라도 등 어느 누구도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베드로전서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세상은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어떠한 흠이나 죄를 발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2. 빌라도는 공의 대신에 정치적인 기회를 선택했습니다.

 

명절을 당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27:15).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온갖 고소를 했지만 예수님은 아무 답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하는지 듣지 못하느냐.”(27:13)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총독이 기이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거짓된 고소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 총독도 그들이 시기로 예수님을 죽음에 넘겨준 줄 알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같은 예루살렘의 기득권자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셔서 질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일으키셨지만, 그들은 그러한 기적을 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시기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권세있는 자 같이 가르치셨지만, 그들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진리를 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시기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수많은 사람들이 따르며 그 분의 가르침을 배우려고 했지만, 그들에게는 그러한 제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시기했던 것입니다. 비록 로마 총독이었지만 빌라도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했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했더라면, 그는 군중들을 해산하고 예수님을 감옥에서 풀어 주어야 했습니다. 만일 빌라도가 정의로운 총독이었다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이 아무런 죄가 없음을 알았지만, 군중들을 자극함으로 폭동이 일어날까 두려워했기에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로마 총독으로 유대를 다스리고 있었지만, 그는 무척이나 어려운 상황에 처했었습니다.

 

빌라도는 당시에 정치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기원후 26년부터 36년까지 약 10년간 이스라엘의 총독으로 활동했습니다. 그가 총독으로 예루살렘에 온 후로 주자 유대인들과 반목하며 갈등을 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 로마 황제의 형상을 새긴 휘장을 가져온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로마 장군이 총독으로 임명되면 그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군대와 함께 입성합니다. 이때 군대가 행진할 때에 로마의 깃발을 세우며 압장서서 들어옵니다. 깃발은 로마를 상징하는 독수리의 형상이 있고, 그 독수리의 형상 위에는 가이샤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빌라도 총독 이전의 총독들은 유대인들이 우상으로 간주하는 이러한 형상들을 제거하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하여 로마 사람들이 신으로 숭배하는 가이사의 형상을 새긴 배너를 들고 입성한 것입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배너에서 가이사의 형상들을 제거하라고 강하게 요구하며 시위했지만, 빌라도는 거절했습니다.

 

빌라도는 예루살렘에 웅장하게 입성한 다음에, 그는 예루살렘에서 약 100 km 떨어진 가이사랴 해변으로 그의 본거지를 옮깁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그를 따라가며 가이사의 형상을 지우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그들을 원형 극장에 가두어 놓고 요구를 중지하지 않으면 그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가이사의 형상이 우상으로 간주했기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수많은 유대인들을 원형 극장에서 모두 처형했습니다. 이것은 빌라도의 치명적인 실수 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힘없는 유대인들을 학살한 것에 대한 명분을 찾을 수가 없었기에, 로마나 이스라엘 사람 앞에서 입지가 어렵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에서 민족적인 봉기가 날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빌라도는 자신의 악행으로 인하여 로마로부터 책임을 추궁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는 상황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 후에 빌라도는 예루살렘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수도교를 짓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성전에 있는 돈으로 비용을 감당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드려진 돈으로 수도교를 짓자 반발하여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군대를 동원하여 군중들을 제압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죽었습니다. 세 번째로 빌라도가 저지른 실수는 예루살렘에 있는 군인들의 방패에 디베랴, 황제라는 형상을 새긴 것입니다. 이것 또한 유대인들에게는 우상의 형상으로 받아들였기에 방패를 바꾸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이것 또한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디베랴 황제에게 서신을 보내어 항의하자, 가이사 디베랴가 방패를 즉시 바꾸라고 명령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권세로 도리어 빌라도 총독의 입지를 어렵게 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로마 황제인 디베랴에게 서신을 보내어 자신의 직무에 항의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기 힘든 상황을 만났습니다. 그는 더 이상 소요나 봉기가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총독으로서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알았지만, 자신이 예수님을 석방하면 소요가 일어나 정치적으로 큰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빌라도의 약점을 이용해서 압력을 가했습니다. “무리가 더욱 굳게게 말하되 저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23:5). 백성들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부터 사람들을 선동하여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 한다고 거짓으로 고소한 것입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갈릴리가 헤롯 안디바의 관할 아래 있는 것을 알고 헤롯에게 재판을 떠넘기려 했습니다. 헤롯에게 재판 책임을 넘김으로 인하여 자신이 믿는 공의와 유대인들의 압력을 모두 충족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헤롯 안디바는 침례 요한을 참수한 분봉왕으로서 무척이나 사악한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헤롯 앞에서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으시자, 헤롯은 예수님을 다시 빌라도에게 보냈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의 모습에 크게 위협을 느끼지도 않았기에 조롱한 후에 다시 빌라도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빌라도도 예수님을 심문했지만 그 분에게서 아무런 죄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즉 예수님은 무죄였던 것입니다.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을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어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23:14-14). 빌라도의 재판에서 예수님은 무죄로 판명되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무죄를 선고했기에 재판을 마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계략에 말려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때 빌라도는 다시 곤경에서 빠져나갈 기회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명절에는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명절을 당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27:15). 그 때에 빌라도는 바라바라는 유명한 죄수와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 중에 누구를 놓아 주기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바라바에 대하여 누가복음은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을 위하여 옥에 갇힌 자러라.”(23:19)라고 했습니다. 즉 바라바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로마에 대하여 봉기하고 살인을 한 자였던 것입니다. 그는 유대인이나 로마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인물이었기에 빌라도는 군중들이 당연히 바라바를 처형하고 예수님을 놓아 주라고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빌라도는 군중들에게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한냐고 두 번이나 물었습니다.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아 이러한 질문을 하는 상황에서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었습니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27:19). 빌라도는 아내가 보낸 사람과 대화를 하는 상황에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재판에서 휴정이 있는 상황에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무리를 선동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님을 죽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총독이 다시 군중들에게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고 하자, 그들은 바라바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27:22)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군중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피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군중들의 요구에 상당히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시 군중들을 향하여 예수가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대답은 죽을 죄를 언급하는 대신 더욱 소리를 지르며 십자가에 못박혀야 하겠나이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요한복음 18장은 예수님이 받으신 재판과 빌라도의 갈등에 대하여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려다가 채찍질하게 했습니다. 로마 군인의 채찍은 가죽에 쇳조각이나 뼈조각을 붙여서 심하게 매질을 하는 형벌이었습니다. 채찍을 하는 이유는 십자가의 형벌을 받기 전에 미리 죽음에 이르기까지 채찍을 맞아 살과 뼈가 드러나는 고통으로 일찍 죽음에 이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채찍에 죽도록 맞으셔서 살이 떨어지고 피가 흐르는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분의 머리에 씌웠습니다. 그리고 왕을 상징하는 자색 옷을 입히며 조롱하였고 손바닥으로 때리기도 했습니다.

 

빌라도는 다시 밖에 나가서 그들을 향하여 나는 예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군중들은 더욱 큰 소리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너희들이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에게서 아무런 죄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그 분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는 법이 있으니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기에 더욱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더욱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관정에 가서 다시 예수님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다고 하자, 예수님은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다면 그러한 권세가 없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사람들의 죄가 더 크다고 하셨습니다.

 

재판정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은 더욱 소리를 지르며 예수를 놓아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고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라고 하며 빌라도를 협박했습니다.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19:12).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다시 대제사장과 군중들의 요구에 결국 의지를 꺾었습니다. 빌라도에게는 유대인들이 로마 황제에게 서신을 보내 가이사를 반역하고 있다고 한다면 정치적인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라는 한 사람보다는 예루살렘의 기득권 세력과 잘 지내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공의를 저버리고 유대인의 요구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 죽게 했습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공의로 판단하시고 행하셨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거나 인기를 얻으려고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죽이려고 하자, 주님은 죽게 된 여인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주님은 군중들을 향하여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현장에서 간음하자 잡힌 남자는 데려오지 않고 여인만을 데려오는 불의를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난 군중들 가운데서 수치로 고통하고 죽어가는 한 여인을 살려주셨습니다. 주님은 그 여인을 외면하지 않으셨고 공의로 행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같이 항상 공의를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의롭게 행하는 것은 군중들의 의견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행하는 것이며 바르게 선택하는 것입니다.

 

3. 빌라도는 불의한 결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고 했습니다.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27:24).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보라 너희 왕이로다라고 하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기를 외쳤고, 자신들에게는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다고 했습니다. “...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19:15). 대제사장과 군중들의 고백은 자신들의 마음에 숨겨졌던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왕은 가이사 외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왕은 하나님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왕이 하나님이었다면 그들은 말씀대로 공의를 행하고 메시야를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로마의 황제인 가이샤를 왕으로 섬기는 모습에서 그들의 반역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의 노력이 효과가 없고 도리어 민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27:24). 빌라도는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란이 나려고 하자 물을 가져다가 손을 씻었습니다. 이는 자신의 잘못된 판결에 대하여 손을 씻음으로 자신이 깨끗하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즉 자신이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한 것은 유대인들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중들을 향하여 예수의 무조한 피에 대하여 자신은 죄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답변하며 예수의 피를 자신과 자신의 자손들에게 돌리라고 했습니다.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27:25). 그들의 요구는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징계로 임했습니다. 예수님의 무죄한 피를 자신과 자신들의 자손이 책임지겠다는 말은 그들에게 큰 재앙으로 임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약 40년이 지난 후에 로마 장군 디도에 의하여 예루살렘은 멸망하였고 성전을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이천년이 지난 후에 히틀러에 의하여 유대인 600 만명이 죽임을 당했고, 지난 이천년 동안 유대인들은 흩어져서 살아가다고 지난 1948년에 나라를 다시 세우게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결국 죄가 많은 바라바를 놓아 주고, 죄 없으신 예수님은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습니다.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27:26). 빌라도는 불의한 판결을 내린 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인 죄로 인하여 로마로 소환되었고 그 후에 가울이라는 지역으로 유배를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빌라도는 가룟 유다와 같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전가했습니다. 그는 물로 손을 씻으면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것에 대하여 자신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하며 그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27:24). 우리는 빌라도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그릇된 행동을 하면서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변명할 기회를 찾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그릇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가 또는 환경이 자신을 이렇게 몰아갔다고 변명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합리화 하려는 핑계일 뿐입니다. 빌라도는 자신의 재판에서 예수님을 십자가 형으로 언도한 그 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잘못 까지도 책임을 지시는 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그 분이 죄가 되셔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것은, 우리의 죄에 대하여 그 분이 책임을 지시고 피를 흘리고 죽으신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유대인들과 공모하여 빌라도에게 무죄한 피를 흘리는 책임을 떠넘겼고,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다시 그 책임을 전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빌라도와 유대인들, 대제사장과 헤롯,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까지 떠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희생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 분이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그 분을 사랑하며 온전하게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빌라도와 같이 책임을 전가하는 자가 아니라, 책임을 지는 성숙한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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