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

마태복음 강해(90) - 십자가가 가져오는 구원의 은혜(마 27:45-56).

비전의 사람 2021. 12. 1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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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강해(90) - 십자가가 가져오는 구원의 은혜(27:45-56).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는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27:45-46).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는 십자가의 메시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6:1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어두움 가운데 죽어가는 자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단순히 한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의 죽으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그 분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소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시간에 일어난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메시지를 이해하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으로 우리의 죄 값을 치루셨습니다.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27:45).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시간에 어두움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27:45). 유대 시간으로 육시는 정오인 12시이며 구시는 오후 3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힌 시간은 유대 시간으로 세시로서 오전 9시를 의미합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제삼시에 못박히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15:25). 예수님은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9시부터 12시 까지 세 시간의 극심한 고통을 견디셔야 했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의 왕이란 쓴 패를 붙였고, 사람들은 그 분을 모욕하며 조롱하며 하나님의 아들이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했습니다. 오전 9시 부터 오전 12시 까지의 세 시간 동안 주님은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주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군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23:34).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조롱하는 군인들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둘째, 주님은 십자가에서 강도들 중의 한 명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23:43). 주님은 두 명의 강도중 회개한 한 명을 구원하셨습니다.

 

셋째, 주님은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19:26-27). 예수님께서는 모친에게는 자신이 아들이라고 말씀하셨고, 제자인 요한에게는 마리아를 어머님처럼 잘 모시도록 부탁하셨습니다. 요한의 어머니인 살로메와 예수님의 어머님인 마리아는 자매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에게는 마리아는 이모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부탁을 받은 이후에 자신의 집에 마리아를 모시고 어머님처럼 공경했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9시부터 12시 까지의 시간 동안에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 분은 군인들에게는 용서의 자비를 베푸셨고, 회개한 강도에게는 구원의 소망을 주셨으며, 아들을 잃어 슬퍼하는 마리아에게는 돌봄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로우셔서 가장 고통의 순간에서도 주위 사람들의 구원과 필요에 초점을 맞추시며 돌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해가 절정에 이르는 12시가 되자 해가 뜨겁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 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27:45).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한 것은 하나님이 태양의 빛을 가리우심으로 온 땅이 어두움이 임했음을 의미합니다. 어두움은 오전 12시부터 오후 3시 까지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온 만물을 주관하시는 창조자이시기에 태양의 빛을 가리우시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10장에는 하나님께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실 때에 어두움의 재앙을 내리신 적이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서도 “...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6:12)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해의 빛을 감추어서 온 땅을 어두움으로 만드실 수 있는 전능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두움이 임하게 하신 것은 이 땅에 심판의 메시지를 보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에 어두움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애굽을 재앙으로 심판하실 때에 온 땅이 어둡게 하는 흑암의 심판을 내리셨고, 요한계시록에서 인의 재앙에서도 태양이 빛을 잃게 하는 어두움의 심판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제 구시인 오후 3시가 되자 주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며 운명하셨습니다.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는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27:46). 어두움이 정오부터 오후 3시 까지 온 땅을 덮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두움이 끝나는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도 끝이 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가 예수님께 쏟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면서 예수님은 크게 스리를 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절망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서 찾아오는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주님의 손과 발에 못이 박혀 고통을 당하시는 가운데 약 6시간의 고통을 견디셔야 했습니다. 못에 온 몸을 의지하며 지탱해야 했기에 심장이 멎는 듯한 고통과 숨쉴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으로 인하여 이마에 피가 흘러 얼굴을 피로 물들게 했습니다.

 

시편 22편은 예수님이 당하시는 십자가의 고난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시편 221절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조롱당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22:6)라고 하시는 감정적인 고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당하시는 고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22:14-18).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통을 시편 기자는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이와같이 마음이 녹고 혀가 잇틀에 붙고 모든 뼈를 셀 수 있을만큼 채찍질에 살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육체적인 고통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감정적인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로마서 기자는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경건치 않은 자와 불의에 대하여 좇아 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1:18). 경건치 않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그 시간에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아픔을 겪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습니다. 주님은 그동안 아버지와의 교제로 평안과 안식을 누리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하시며 사랑의 관계에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진노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은 큰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시며 하나님을 향하여 왜 자신을 버리셨는지 탄식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데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로마서 425절은,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4:25)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셧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4:24)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우리의 죄가 용서받도록 대신 하나님의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죄의 저주를 받아 죽으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으로 구원의 길이 되셨습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27:51).

 

예수님께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엘리야를 부르신다고 오해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해융을 가지고 신 포도주를 갈대에 꿰어 예수님께 마시도록 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융을 가지고 신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거늘.”(27:48).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자 처음에는 쓸개 탄 포도주를 누군가가 가져다 주었습니다(27:34), 그리고 주님의 고통이 절정에 이르며 운명의 시간이 다가올 때에 누군가가 신 포도주를 주어 마시게 했습니다.

 

쓸개와 포도주를 예수님께 드린 것은 시편의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69:21). 시편 기자의 예언과 같이 로마의 군인들은 예수님에게 쓸개를 탄 포도주를 주었고, 그 다음에는 신 포도주를 주어 마시게 했습니다. 처음에 받은 쓸개를 탄 포도주는 주님이 거절하셨지만, 두번째 받은 신 포도주는 마시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성경이 성취되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내가 목 마르다.”(19:28)라고 하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이 마시도록 입게 가까이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신 포도주를 마신 후에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후에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셨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19:30).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운명의 시간에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의탁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23:4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속죄의 대가를 지불하신 후에 아버지께 자신의 영혼을 의탁하신 후에 운명하셨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27:50)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몸에서 영혼이 떠나 가심으로 인하여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셨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는 것은 이제 자신의 몸에서 영혼이 떠나는 시간이 되었음을 알고 하나님께 의탁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유월절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는 오후 3시에 일어났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유월절 어린양을 죽일 때에 해질 때에 죽여야 함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오후 3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때를 맞춰 자신의 목숨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10:15,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려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신 것은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셔서 구원하시 위하여 죄에 대한 형벌을 모두 감당하신 것입니다.

 

로마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3:24-2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 값으로 인하여 값 없이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신 후에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기적은 바로 성전의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진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27:50-51). 성소의 휘장은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소에는 매일 들어가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었지만,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들어갈 때에는 황소와 염소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 속죄소 위에 뿌려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자신을 피로써 정결하게 한 후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만일 정결하지 않은 몸으로 들어간다면 그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 것입니다. 휘장의 의미는 하나님과의 분리를 의미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휘장은 하나님은 거룩하시지만 사람은 죄인임을 알리는 상징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휘장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는 것을 불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는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성전의 휘장을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막혔던 담이 허물어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에베소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으로서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아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2:13-1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고, 서로 간에 화평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습니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유월절 절기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어둠이 약 세 시간 임하고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신 순간에 성전의 휘장이 찢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인하여 죄인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로 삼으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인하여 더 이상 제사장도 필요없어 졌고, 성전이나 제물도 필요없어 졌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이 완성되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와같이 십자가는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의 피와 휘장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10:19-20). 예수 그리스도가 흘리신 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그 곳에 들어가도고 하나님께서 휘장을 열어 놓으셔서 새롭게 길을 만드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인하여 휘장이 찢어졌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27:51-52).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많은 이적들이 일어났습니다. 하늘의 해가 빛을 잃어 어두움이 세 시간 동안 임했습니다. 그리고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 그리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며 무덤들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27:51-52). 성경에는 땅이 진동하는 지진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3장은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13:3)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날에 맹렬한 분노가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이 칠년대환난 기간에 이 땅을 심판하실 때에 여러번의 지진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시던 순간에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렸습니다. 이스라엘의 무덤은 바위를 파서 그 안에 시신을 안치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위가 터지는 순간에 무덤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땅에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덤에서 잠자던 성도들이 부활하여 다시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27:52-53). 무덤에서 잠자던 성도들이 다시 생명을 얻어 부활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무덤 속에 있던 구약의 성도들의 영혼이 다시 그 몸으로 돌아가고 살과 피와 뼈가 다시 살아나며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승리에 도취하고 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 성도의 몇 명이 부활하게 하심으로 사탄의 머리를 깨트리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이유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에 죽은 자가 일어나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죽음에서 살아난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 사역을 하시면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아나고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믿는 자의 부활이 있을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 15:22-2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같이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소망의 이유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운명하실 때에 어두움이 세 시간이나 임하고,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찢어지며,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나는 모든 모습을 지켜본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로마의 군대를 이끄는 백부장과 함께 예수를 지키던 군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셨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면서도 절망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조롱하고 채찍질하며 손과 발에 못을 박았던 군인들의 죄를 용서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강도 중의 회개하는 한 강도가 회개하자 그를 구원하시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자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사랑하는 제자인 요한에게 부탁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고통 중에서 하늘의 아버지를 향하여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주님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가 목 마르다고 하시며 신 포도주를 마신 후에 다시 하나님 앞에서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나의 영혼을 아버지께 의탁하나이다.”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늘의 징조와 땅의 징조,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모습을 본 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27:54). 백부장과 군인들이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 것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습니다. 비록 그들은 이방인들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시는 모습에서 일어난 이적과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 후에 예수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서 가버나움에 있던 백부장이 자신의 종이 중풍병에서 고침을 받는 것을 보고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중에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8:10)라고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실 때에 백부장과 군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 구원을 얻었습니다.

 

백부장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 구원을 얻었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면 오늘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대신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하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우리의 죄를 담당하게 하셔서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구원의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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