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절망의 순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출 2:1-10).

비전의 사람 2022. 1. 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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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순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2:1-10).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2:10).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며 복을 주셨던 인물입니다. 다윗이 기록한 시편 23편은 많은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 때에 힘을 주는 시편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중의 하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살아갔지만, 그는 한 때는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며 절망하는 시간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인생에는 정상의 자리에서 즐거워하는 시간을 만나곤 합니다. 정상의 시간은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골짜기를 지나야 하고, 내려가기 위해서도 골짜기를 다시 지나야 합니다. 특히 정상이 높을 수록 우리가 지나야 하는 골짜기는 더욱 깊고 험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인생에서도 모두가 거쳐가야 하는 코스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골짜기를 지나야 하는데, 깊은 골짜기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고통하고 있습니다. 그 아픔과 절망이 깊어서 눈물로 밤을 세우거나 거친 한숨을 내쉬며 주님만을 바라보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러한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을 하고 계실까요?

 

특히 코로나의 팬데믹이 2년 이상 지나면서 사업과 관계에서 고통을 당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떠한 소망을 가져야 할지를 깊이 생각해 봅니다. 과거에는 새해에는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는 열정과 순수함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새해를 맞이하며 기대감 보다는 걱정과 절망이 더 앞서 찾아오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시는지 함께 말씀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던 시절에 감당해야 했던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살펴보면서 주님의 크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어려운 환경의 멍에는 우리에게 큰 절망을 가져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1:13-14).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정착하게 된 배경은 야곱이 70명의 가족과 애굽에 정착하면서 부터입니다. 그 전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기근에서 애굽을 구원한 공로로 인하여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고센 땅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애굽의 바로와 국민들로부터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지만,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가 세워지면서 애굽이 야곱의 자손들을 종으로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야곱의 자손들은 애굽의 종으로 펼려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요셉의 형통으로서 합법적으로 애굽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1:7).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하시며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센의 비옥한 땅에서 목축을 하며 농사도 짓고 번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큰 시련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다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면서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의 시련은 이스라엘 자손이 큰 잘못을 저지르거나 죄를 범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단지 새로운 왕이 등극한 것이고, 이는 단지 환경의 변화가 그들에게 무서운 시련을 가져다 주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최근에 환경의 변화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 미얀마는 군부 정권에 대항하는 시민들에게 정부군이 총을 겨누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카자흐스탄에서 가스비가 두 배로 인상되면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대통령이 시위대를 향하여 총격을 가하고 심지어는 러시아 군대까지 불러 들여 시위를 무력 진압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국민들은 큰 고통을 당하며 절망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환경의 변화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갔고, 사업체가 무너지는 아픔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환경의 변화는 우리에게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이 나면 적국과 합하여 애굽을 대적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억압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을 막고자 했습니다. 그러한 계획을 위하여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건축의 현장에서 학대받게 했습니다. 바로는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괴롭게 하여 국고성을 건축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들이 학대를 받을수록 이스라엘 자손들은 더욱 번성하고 창성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복을 받은 민족들이었습니다. 애굽의 바로가 아무리 학대하고 괴롭혀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축복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고난당하는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손들을 결코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3:5)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늘 함께 하시며 버리거나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27:10). 다윗이 부모가 자신을 버린 것은 사울왕이 장인으로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사울왕이 다윗의 부모였지만, 그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요셉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며 고통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셔서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환경이 요셉을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게 했지만 하나님은 그 노예된 집에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환경이 요셉을 보디발의 노예에서 죄수가 되어 감옥에 갇히게 했지만, 하나님은 그 감옥이라는 곳을 통하여 애굽의 총리가 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다윗과 요셉은 믿음으로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사망의 골짜기를 지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과연 우리는 어려운 환경에서 감사하며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으로 인내할 수 있는지요?

 

코리텐 붐 여사는 네덜란드에서 언니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이때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유대이들이 고통을 당하며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 유대인의 생명을 구하는 레지스탕스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코리 가족은 자신의 집을 유대인들을 위한 은신처로 만들고 유대인들을 숨겨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활동이 나치에게 발각되면서 온 가족이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수용소에서 그녀의 가장 큰 고통을 성경을 읽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후에 그녀는 더 열악한 감방으로 끌려가게 되었는데, 그곳은 벼룩이 들끓는 고통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언니 벳시는 벼룩까지 들끓는 그곳에서 비참한 환경까지도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언니 벳시는 자신들에게 벼룩까지 허락하신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얼마 안가서 그녀는 벼룩으로 인해 감사할 이유를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 곳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방의 환경이 너무나 열악하여 독일 간수들이 그 방에는 접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셔서 감사의 이유를 발견하게 하십니다. 코리 텐 붐 여사는 전쟁이 끝난 후에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며 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절망의 순간에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복을 주시며 형통의 길을 예비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가지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고난을 통해서 찾아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환경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연단의 장이지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는 축복의 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 어려운 환경의 멍에에서 우리는 소망의 이유를 발견합니다.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1:21).

 

바로의 학대는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할수록 더욱 혹독하게 찾아왔습니다. 바로는 결국 모든 히브리 남자 아기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가로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조산할 때에 살펴서 남자여든 죽이고 여자여든 그는 살게 두라.”(1:16). 바로는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라 하는 자에게 히브리 여인이 출산할 때에 남자여든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바로의 명령은 그가 누구인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칭 신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자였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도구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신으로 숭배를 받았고, 그는 히브리인 남자 아기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림으로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대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15절의 말씀을 통하여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메시야가 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자신이 인지하든 못하든 간에, 그는 사탄의 뜻을 행하는 적그리스도의 악한 일을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때 믿음의 여인은 십브라와 부아를 준비하셔서 그들이 믿음으로 바로의 명령을 거역하고 아기들을 살려주었습니다. 이때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두 여인을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라 백성은 생육이 번성하고 심히 강대하며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1:20-21). 두 산파의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 백성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생육하고 번성하여 강대한 은혜를 누렸던 것입니다.

 

절망의 순간에서 소망의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붙드는 것입니다. 십브라와 부아라는 두 여인의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케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한 사람의 믿음은 한 가정에 하나님의 복을 가져오는 통로가 되기도 하고, 교회에 부흥을 가져오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한 사람의 믿음은 민족을 살리는 통로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존 낙스는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라고 했습니다. 족 녹스(1514-1572)는 스코틀랜다의 종교개혁자였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카톨릭이 부패가 절정에 달하자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메리 여왕이 존 녹스의 종교 개혁을 반대하고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존 녹스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스코틀랜드를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주소서!존 녹스가 목숨을 거는 기도를 간절히 하자, 메리 여왕이 중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메리 여왕이 죽자 종교 개혁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걸고 기도한 한 사람을 통하여 민족을 영적인 위기에서 구해내신 것입니다. 메리 여왕은 죽음 직전에 영국의 100만 군사보다 존 녹스의 기도가 더 무섭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기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종교 개혁을 이루어가신 것입니다.

 

역대하 32장은 앗수르 산헤립 십팔만 오천 명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공격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앗수르에 의하여 우상을 숭배하던 북이스라엘이 이미 멸망했고, 유다의 성읍들이 차례로 정복당한 후에 예루살렘성만 홀로 남아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두렵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이때 히스기야가 믿음을 굳게 한 후에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로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장관들을 멸하신지라...”(역하 32:20-21). 하나님께서 절망에 빠진 히스기야가 믿음으로 기도하자, 하나님이 능력으로 앗수르의 용사 십팔만 오천을 멸하시고 승리를 주셨습니다.

 

절망의 순간에 한줄기 소망의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의 순간에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십보라와 부아의 믿음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 찾아오는 절망의 순간에 우리의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로 유다가 승리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절망의 순간에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놀랍게 응답하시는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3. 어려운 환경에서 하나님은 그 분의 목적을 이루어가십니다.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2:10).

 

애굽의 바로가 모든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나일간에 던지라는 명령이 발표되자 큰 절망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레위 사람 아므람이 요게벳이라는 다른 레위 사람과 혼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게벳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준수함을 보고 석 달을 숨겼습니다. 그러자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마침내 남자 아기를 나일 강에 보내기로 결단을 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갈대 상자를 만들어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여 갈대 상자가 물에 잠기지 않게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갈대 상자에 넣고 나일강에 떠나 보냈습니다. 이때 그 누이인 미리암이 어떻게 되는 가를 볼려고 멀리 서서 따라갔습니다. 그때 바로의 딸이 목욕하려 나일강에 왔다가 그 갈대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오게 했습니다. 공주가 하녀가 가져온 갈대상자를 열어보니 히브리 아기가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공주가 아기를 향한 긍휼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 ...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열고 그 아이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불쌍히 여겨 가로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2:5-6). 공주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아기를 바라본 것입니다. 그러자 미리암이 공주에게 찾아가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찾아 공주를 위하여 아기를 젖 먹이게 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자 바로의 딸이 그 소녀의 말대로 유모를 구해 달라고 하자, 미리암은 집에 가서 모세의 어머니인 요게벳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자 공주는 요게벳에게 젖을 먹이면 그 삯을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고통 가운데서 함께 하시며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중에서 출애굽기는 믿음의 사람인 모세의 출생과 성장 과정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빌립보서 기자는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1:6)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 분의 선하신 일은 그 분의 열심으로 일하시면서 그 분의 역사하심을 멈추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고통 가운데서 어떻게 일하셨는가요?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종에서 구원할 영적 지도자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즉 모세는 장차 이스라엘을 애굽의 멍에에서 벗어나게 할 영적인 지도자로 준비될 것입니다.

 

당시의 악은 애굽의 바로였습니다. 바로는 스스로를 우상화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의 씨를 말리려는 악한 계획을 꾸몄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한 사람 모세를 통하여 막으시고 그를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죽게 하려던 나일강에서 건짐을 받게 하셨습니다. 공주가 그를 모세라고 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뜻이 건져내다라는 듯이듯이, 장차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에서 구원할 하나님의 종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히브리 남자를 죽이라고 명한 그 바로의 딸이 히브리 아기인 모세를 구원하고 그를 도리어 바로의 손자가 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애굽의 궁정에서 사십년간 애굽의 학문을 배워 말과 행사에 능한 자가 되어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애굽의 공주의 양자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모친인 요게벳이 유모가 되게 하심으로 삯을 받고 양육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삼개월 간 모세를 숨긴 아므람과 요게벳을 통해서 일하셨고, 미리암이 공주에게 찾아가게 하심으로 그녀를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의 공주가 모세를 볼 때에 긍휼의 마음을 갖게 하심으로 바로의 공주를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이와같은 하나님은 절망의 순간에도 일하셔서 그 분의 영광인 이스라엘의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망의 순간에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전능하신 여호와이십니다. 우리의 절망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셔서 그 분의 뜻을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인내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그 분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일강에 떠내려가던 한 아기를 향한 큰 뜻을 품으셨습니다. 갈대 상자에 떠내려가는 아기의 미래는 절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기를 통해서 일하심으로 그 아기는 훗날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지치고 절망이 찾아와 어떠한 희망이 보이지 않더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망에서 구원을 주시는 전능하신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망에서 생명을 주십니다. 이러한 소망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르며 순종함으로 복을 누렸듯이, 우리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때에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지지 않으시고 승리하십니다. 우리의 환경이 어떠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환경에서 더 큰 일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으로 승리하며 소망의 주를 바라보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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