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연구

여호수아(4) -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입니다(수 3장)

비전의 사람 2022. 3. 16. 17:25

여호수아(4) -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의 통로입니다(3)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3:5).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승리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8). 이에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삼일 안에 요단을 건너기 위하여 양식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여호수아에게 모세에게 순종했듯이, 자신들은 여호수아에게 순종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싯딤에서 두 사람을 여리고로 정탐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여리고를 정탐하고자 라합의 집에 머물렀고, 위기의 순간에 라합의 도움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라합은 여호와가 참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자신들을 구원하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정탐꾼들은 붉은 줄을 창에 매면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리고에 정탐했던 사람들은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간담이 녹고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자신들의 손에 붙이셨다고 확신했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들과 싯딤을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했습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너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이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너는 모습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이스라엘의 영적 준비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믿음이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을 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7)

 

이스라엘 자손은 요단강 앞에서 사흘간을 유숙하며 기다렸습니다. “...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하니라 삼일 후에 유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3:1-2). 이스라엘 자손이 사흘을 요단강 앞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기다리는 시간을 통하여 거룩해지고 순종하는 믿음을 배우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과 순종을 통하여 큰 역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을 건너는 것은 큰 도전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3:15)라고 언급합니다. 요단강은 가볍게 건널 수 있는 시냇물이 아니었습니다. 모맥을 거두는 시기는 밀을 추수할 때로 유월절이 있는 3-4월 입니다. 이때는 이스라엘의 우기 기간이라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기에, 갈릴리 바다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사해까지 범람하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우기 때의 요단강은 3-4m 깊이의 물이 강하게 흘렀습니다. 요단강의 물이 강하게 흐를 때에는 수영을 하며 건너기도 어려웠고, 임시 다리를 놓아 건너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이백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자손을 모두 배로 건너게 하기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장정 뿐만 아니라 여자들과 노인들, 그리고 가축들과 짐들이 가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자손은 어떻게 요단을 건너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했습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믿음의 삶이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볼수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고린도후서는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을 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7)라고 했습니다. 믿음이란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란 하나님을 신뢰하며 한 걸음씩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메시야의 목소리를 청조하는 자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찌어다.”(50:10).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빛이 없는 어두움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의뢰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입니다. 이와같이 믿음이란 빛이 보이지 않는 사망의 어두움에 다닐찌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믿음의 길을 평생 걸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23:4). 다윗은 엔게디 광야에서 사울을 피하여 다니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지는 위기의 순간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위기의 순간에도 우리는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눈으로 보이는 환경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을 신뢰하며 나아가게 합니다.

 

2. 믿음이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단강가에서 사흘이 지난 후에 마침내 여호수아는 백성들이 행하야 할 바를 지시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 갈 때에 그 뒤를 따라 가는 것입니다. “삼일 후에 유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3:3).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을 들어가도록 인도하는 핵심은 언약궤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성막을 짓게 하시면서 두 가지의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을 위하여 말씀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25:8).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25:22).

 

하나님께서는 언약궤 위의 두 그룹 사이에 거하시며 그들이 행할 말씀을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하시며 인도하심의 상징이 바로 언약궤인 것입니다. 언약궤는 성물이었기에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고 요단강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언약궤 안에는 모세가 받은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가 담긴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이 멘 언약궤가 앞서 가면 이스라엘 자손은 그 뒤를 따라가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언약궤를 따라 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기고 순종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심하는 자도 있고, 몸이 불편하여 따라가기 어려운 환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언약궤를 따르지 않고 나룻배를 가져와서 건너는 것이 더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요단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언약궤를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즉 믿음의 순종이 그들의 삶에 기적을 경험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모든 염려와 근심을 그 분께 맡기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7)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그 분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능하셔서 어떠한 일도 불가능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셔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능히 이기도록 힘을 더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강하게 흘러내리는 강의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자신들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언약궤와 약 이천 규빗되는 거리를 두고 따라야 했습니다(3:4). 이천 규빗은 약 1 km 정도의 거리입니다. 이천 규빗의 거리를 두는 의미는 거룩하신 하나님 근처에 가까이 할 수 없는 죄인들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성막에서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는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와같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가까이 가는 것은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약 1 km 정도의 차이를 두고 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막힌 담이 허물어 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얻었습니다. 그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일러 가로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나아가니라.”(3:6).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제사장들이 먼저 순종해야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제사장들이 나아간 후에 이스라엘 자손은 언약궤를 바라보며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제사장들이 순종하며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순종하여 요단강을 건너갔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에 따르는 자는 영적인 리더의 인도함에 순종하는 제자도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여호수아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먼저 영적인 리더가 본이 되어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따르는 자들은 앞서 가는 영적인 리더를 따르며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3. 믿음이란 하나님 앞에 정결해지는 것입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

 

여호수아는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이 큰 일을 행하시도록 자신들을 스스로 성결케 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자신들을 성결케 해야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3:5). 성결케 하다라는 의미는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기 위하여 자신을 성결케 해야 했습니다. 이때 그들은 자신들의 옷을 빨고 남자들은 여인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이 행하실 큰 역사를 목전에 두고 가장 필요했던 것은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백성을 통하여 그 분의 큰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백성이 거룩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레위기는 우리에게 거룩과 정결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양의 피로 죄사함 얻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서 자신들의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앞에 거룩한 백성으로 설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삶에서 그들은 세상의 부정한 것에서 자신을 정결하게 지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음식이나 피부병, 그리고 성적인 질병에서 오는 부정함을 의식법에 따라서 자신을 정결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정결을 위해서 음식도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어 항상 자신을 정결하게 지키게 했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구약의 율법에 더 이상 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식이나 절기에 대하여 자유함을 누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죄에 대해서 자유한 것이 아닙니다. 즉 우리가 마음대로 죄를 범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거룩하기 위하여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 우리는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육의 더러움에 대하여 주님은 입에서 나오는 말로 우리가 더럽게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실이 하나님 보시기에 정결해야 합니다. 영적인 더러움은 사탄이 주는 유혹에 빠져 음란이나 방탕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할 때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거룩한 임재 가운데 살아간다면 우리는 날마다 정결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죄를 범한 후에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한 것은 자신의 죄가 용서된 이후에 정결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51:10). 다윗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정결한 마음과 영을 회복하는 것은 그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는 통로였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임재의 기쁨을 누리고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기 위하여 마음과 입술과 영이 거룩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의 길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우리를 통하여 큰 일을 행하십니다. 초대 교회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10일간 간절히 기도한 후에 성령이 임하시기 위하여 그들이 거룩해질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도들이 10일간 간절히 기도하자 그들의 마음과 영이 정결해지며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에게 능력을 베푸십니다.

 

4. 믿음은 순종하는 자에게 약속을 얻게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11:1-2)

 

여호수아의 명령에 따라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제부터 여호수아를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모세와 같이 크게 하며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물가에 이르면 요단강에 들어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믿음으로 요단에 들어가기를 요구하셨습니다.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3:8).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요단강이 마른 기간에 하나님이 자신들을 인도하실 것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쉽게 요단강을 건너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단 강의 물이 넘치는 기간에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때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능력은 자신들의 군대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40년 전에 애굽에서 나올 때에 홍해를 마르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출애굽한 세대의 자녀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도 하나님은 동일한 기적을 보이시고자 하셨습니다. 단 하나님이 기적을 보이시는 조건은 그들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의 둑에 이르면 요단강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가나안에서 쫓아내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밝으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3:13).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하며 담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셔서 요단 물이 위에서부터 쌓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가나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믿음의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그 시험은 바로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믿음으로 요단을 건너거나 아니면 비가 오지 않는 건기의 계절을 기다린 후에 그때 건너기로 결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요단강은 강한 물살로 인하여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거치게 흘러내리는 요단강에 발을 디디는 순간 순식간에 급류에 떠내려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믿음이 마주해야 하는 도전이 클 수록 믿음의 순종으로 찾아오는 승리도 큰 것입니다. 마침내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이르러 믿음으로 발을 디디기 시작했습니다.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쌔.”(3:15-16). 앞서가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에 잠기자 갑자기 위에서부터 흐르던 물이 먼 아담읍 변방에 쌓였습니다. 그리하여 물이 더 이상 내려오지 않고 끊겼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은 여리고를 향하여 마른 땅을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믿음으로 순종하자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 가운데 역사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아담은 여리고에서 약 30 km 되는 작은 성읍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내려오던 물이 아담이라는 곳에 멈췄기에, 이스라엘 자손은 안전하게 요단강을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자손은 마른 땅으로 향하여 요단을 건넜습니다(3:17). 이스라엘 자손이 믿음으로 행할 때에 하나님은 큰 일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약속을 얻게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11:1-2)라고 했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들이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면 그 약속을 받게 됩니다. 이와같이 믿음은 삶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게 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믿음으로 출애굽을 한 후에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다 마침내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요단강은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첫 걸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을 들어가게 하실 때에 요구하셨던 것은 바로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가나안은 광야의 생활을 마치고 안식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자손은 광야에서 집도 없이 항상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광야에서는 물이나 음식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우며 전갈과 같은 것들이 위협하는 곳이었습니다. 광야의 삶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의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요구하신 것은 바로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4:11).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안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며 하나님을 신뢰할 때에 우리는 여호수아와 같이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