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연구

여호수아 강해설교(6) - 의식을 통한 교훈

비전의 사람 2022. 3. 3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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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강해설교(6) - 의식을 통한 교훈 (5:1-15).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5:3).

 

우리는 지난 주에 요단강에서 열 두 돌을 가져다가 길갈에 세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념이 되도록 하신 것을 나누었습니다. 이 기념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것에 대한 자축의 성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능력에 대한 기념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것에 대한 기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자손들에게 전해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이 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살아있는 능력에 대한 증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념돌 들에 대한 다른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열방에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전하며 온 땅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호와의 손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4:24).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보고 열방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51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은 가나안 산지에 거하던 자들로 매우 용맹했고, 가나안 족속은 신체가 장대하고 힘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하고 용맹한다 할지라도 홍해를 육지같이 가르시고 애굽의 군대를 멸절시키셨으며(14), 아모리인의 두 왕을 처단하고 (2:24-3:11), 흐르던 요단 강물을 멈추게 하신 하나님(3:14-17)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두 돌을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과 사랑을 기억하도록 교훈하셨고, 이제 여호수아 5장에서는 두 가지의 의식을 통하여 그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도록 하셨습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가지의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상징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러한 상징을 통한 교훈은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도 예수님은 침례와 주의 만찬의 가르침을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나,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5:2).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명령에 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죽었는데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오직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5:4-5).

 

하나님은 할례를 특별한 의식으로 지정하여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땅과 자손, 그리고 복 (12:1-3) 으로 축복하실 것에 대한 언약을 맺었습니다. 땅은 가나안 땅을 의미하며, 씨는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했으며, 복은 인류의 죄를 대속해서 죽으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할례의 의식을 통하여 확증하셨던 것입니다.

 

할례는 언약의 상징이었습니다. (17:9-14).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7:10-11).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할례를 통하여 언약을 맺으셨으며, 이스라엘 후손도 할례의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의 백성의 증표로 삼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7:12).

 

하나님은 부모들에게 남자로 태어난 아기에게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하도록 하셨습니다. 의학계는 할례의 수술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가 생후 8 일 만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의학자들은 신생아는 생후 이틀부터 오일까지 출혈에 무척 민감하다고 합니다. 이 때의 출혈은 신생아의 뇌와 같은 기관에 큰 피해를 주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합니다. 혈액을 응고하는 비타민 K 는 생후 5- 7일까지는 충분한 양을 생성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비타민 K 가 신생아의 5-7일 까지 충분히 생성되지 않기에, 할례를 행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는 8일째가 되는 것입니다. 혈액 응고를 위한 필수 요소는 프로트롬빈(prothrombin)입니다. 프롤트롬빈은 생후 3일째는 보통의 3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신생아에게 수술을 하게 되면 심각한 출혈로 위험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혈액 응고제인 프롬트롬빈이 가장 많이 생성되는 시기가 8일째 되는 날인데, 이 날은 보통의 110% 나 프롬트롬빈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타민 K와 프롬트롬빈의 생성을 고려하면 할례를 할 수 있는 최적의 날은 8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우리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를 할례를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의 유익을 위한 지혜였던 것입니다.

 

할례의 의학적인 유익은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닙니다. 할례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이방인들과 다르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왜 남자 아기가 할례를 받는 지에 대하여 설명할 많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할례 의식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갖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할례의 과정을 지켜보았고, 그 결과를 보았습니다. 할례를 받은 남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할 수 있는 도구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여인들도 할례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별하신 백성임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택하셔서 자신의 백성들과 관계를 세우는 척도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자,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을 확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다시 기억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남성들에게 할례를 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러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 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5:9).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조롱했었습니다.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 (32:12). 그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마치게 되자, 그들은 이러한 조롱에서 자유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 가게 하였다 하였으므로.” 그들이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새롭게 함을 얻은 것입니다. 이제 저들은 애굽의 조롱에서 벗어나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언약의 축복을 가나안에서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절기를 지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로 있을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게 하는 의식을 제정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월절 절기였습니다. 애굽에 9가지 재앙이 내린 후에, 하나님께서는 다른 마지막 재앙을 내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가정의 장자를 죽게 하실 것입니다.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지라.” (11:5). 그러나, 이스라엘 자녀들은 심판을 피하게 될 것인데, 그들은 문설주에 양의 피를 뿌려야 했습니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12:13).

 

하나님의 말씀대로 재앙이 내려 애굽의 모든 장자는 죽임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12:14).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지킴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원하신 은혜를 기억해야 했던 것입니다.

 

유월절이 처음으로 지켜진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기 전날 저녁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그들이 애굽을 떠난 지 일년이 지난 후에 시내 광야에서 였습니다. (9:1-5). 그리고 세 번째는 지금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에 들어온 백성들이 지키는 것입니다. 그들이 기념비가 되는 돌을 세우고 할례를 행한 후에 이제 마지막으로 유월절 의식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음식을 먹으면서 하나님이 공급하셨던 만나가 그치게 됩니다.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5:12).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했던 약속의 성취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사십년 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16:35).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잊지 않도록 상징이나 의식을 사용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기념의 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자손들에게 홍해를 가르치고 요단 강의 물을 멈추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사 열방에 복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애굽의 압제와 재앙으로부터 그들을 건지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의 어린양은 자신의 피로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위대하신 목적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뿐만 아니라, 이방 민족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증거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사랑으로 잃어버려진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우리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위대한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기념이 되는 의식을 제정하셨듯이,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기념비적인 의식을 제정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다음의 두 가지 의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1) 침례.

 

침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생명 가운데 부활한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면, 그들은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2:41). 우리는 침례를 통하여 주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28:19). 그러므로, 교회는 침례의 의식에 순종함으로 주님께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침례의 몇 가지 특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침례는 상징인 것입니다. 침례는 구원의 할례와 같이 상징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침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표인 것입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벧전 3:21). 둘째, 침례는 믿는자들이 받는 것입니다. 침례는 믿고 구원받은 자들이 받는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여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받을 수 있습니다. 유아침례나 유아세례는 성경에서 어떠한 근거도 없습니다. 그리고, 침례는 물에 잠그는 침수가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셋째, 침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침례를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신 주님과의 연합의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6:4).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인 원리대로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2) 주의 만찬

 

신약의 두 번째 기념비적인 의식은 주의 만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기 전에 유월절 식사를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빵과 포도주에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시면서 주의 만찬을 제정하셨습니다. 주님은 빵을 나누시면서 그 빵은 나의 몸이며, 포도주를 제자들과 드시면서 이는 나의 흘리는 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나를 기념하여 시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는 주의 만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고전 11:24-25).

 

주의 만찬은 수세기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교회를 통하여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빵과 포도주가 의식 때에 진짜 예수님의 피와 살이 된다고 믿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만찬에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스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상징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며 그 분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유월절을 기념하면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자신들이 심판을 면한 것에 대하여 기념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였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 되신 그리스도의 희생과 대속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되었고 영원한 심판과 사망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1:7). 우리는 주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을 주의 만찬을 통하여 갖게 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영적인 효력을 갖지 못합니다. 비록 할례가 의학적으로 추천되는 일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할례를 더 이상 영적인 의미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할례를 받습니다. 이 할례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인 것입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2:11).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할례는 마음의 할례인 것입니다. 이는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새로운 마음의 할례인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육체의 흔적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했다면,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으로서 마음의 할례를 통하여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육신이 지배하던 마음이었지만, 이제는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거듭난 사람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 36장에서는 우리에게 주어질 새로운 마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36:26-27).

 

하나님은 우리가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영과 마음으로 변화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세상에 나타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10:19-20). 우리가 주님의 임재 가운데 그 분의 보혈을 힘입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새로운 길이며 살아있는 길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길은 새로운 인생의 길임을 증거하는 것이며, 성령님과 동행하는 생명의 길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할례와 유월절 음식을 먹고 난 후에, 그는 하나님의 군대 장관을 만나게 됩니다. 여호와 앞에 선 여호와의 군대 장관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때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5:15).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이 거룩하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여호수아는 그의 백성들과 함께 증거하는 사명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거룩을 열방에 증거해야 할 책임을 맡은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마음의 할례를 통하여 굳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고, 성령이 주시는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주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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