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연구

여호수아 강해 설교(8) - 아이성 전투가 주는 교훈 (수 7장)

비전의 사람 2022. 5. 4. 17:49
반응형

여호수아 강해 설교(8) - 아이성 전투가 주는 교훈 (7)

 

내 아들아 청하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7:19).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군대가 여리고를 점령한 것은 큰 승리였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으로는 그 승리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가 없었고, 오직 하나님이 주신 기적으로만이 설명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경험한 기적은 홍해가 둘러 나누어지고, 요단강이 멈추는 기적과도 같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며 승리의 감격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여리고성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몰락한 첫 번째 도시였으며, 다음은 아이 성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을 점령한 후에 가졌던 감격과 확신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그마한 아이 성을 지켜보면서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여리고에 대한 위대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게 심각한 죄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 죄는 승리의 확신을 가진 이스라엘에게 큰 패배와 절망을 가져온 원인이었는데, 그 죄는 바로 아간이 범한 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점령하게 하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6:17-19).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는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간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속한 물건을 훔쳐서 자신의 텐트 속에 감추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7:1).

 

아간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복해서 그 분의 뜻을 보이셨기에 불순종에 대한 진노가 컸던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너는 그들의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것으로 인하여 올무에 들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너도 그와 같이 진멸당할 것이 될까 하노라 너는 그것을 극히 꺼리며 심히 미워하라 그것은 진멸당할 것임이니라.” (7:25-26).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가나안을 점령할 때에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라고 하였고, 이제는 여호수아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것을 집에 들이게 되면 진멸당할 것이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간은 여리고를 점령하면서 금과 은 그리고 아름다운 외투를 몰래 감추었습니다. 아간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거역하고 불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아간이 몰래 취한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이라도 탐해서는 안되는 물품이었습니다. 아간의 탐심은 우상숭배였으며 심판을 받을 죄악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불순종의 죄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죄에 대하여 사람은 아무도 몰랐지만, 하나님은 아시고 진노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점령한 후에, 아이 성을 점령하기 위하여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탐꾼을 보내어 성을 둘러보게 합니다. 그들이 정탐을 마치고 돌아오자, 그들의 보고는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 하므로.” (7:3). 여호수아는 그들의 말만 믿고 삼천 명을 보내었다가 패배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놀라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었습니다. (7:5). 그들은 강력한 성이었던 여리고 성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점령하였는데, 이와같이 작은 성에 크게 패배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쟁에서 실패한 진정한 이유에 대하여 하나님과 아간만이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의 근원은 군인의 수나 전략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제의 근원은 백성의 죄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아간이 문제의 근원이라 할지라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여리고의 승리에 고취되어 너무나 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너무나 신뢰한 나머지 아이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리고에서의 승리가 자신들의 지혜와 힘에 의한 것이 아님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뜻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여리고 성은 하나님이 주신 방법대로 전투하여 승리하였지만, 아이성은 자신들이 결정한 후에 진격하였습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트렸으니, 아이성은 식은죽 먹기다. 이러한 태도는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을 더욱 의지하는 교만의 태도였던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의 삶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영적인 큰 승리를 경험하고 난 후입니다. 인생에서 큰 승리와 성공을 경험했을 때에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그때 우리가 가장 방심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힘을 더욱 의지하게 하는 교만의 마음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에서 패배하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가 받은 충격과 혼돈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7:6). 그는 문제의 뿌리를 찾기 보다는 슬픔의 감정에 매여 절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편을 족하게 여겨 거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주여 이스라엘이 그 대적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가나안 사람과 이 땅 모든 거민이 이를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7:7-9).

 

여호수아는 영적인 통찰력을 잃어버렸습니다. 패배의 쓰라린 상처속에서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실패의 아픔 속에서 자신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 결과로 가나안 사람들이 크게 보이고 자신들이 작게 보이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사람과 이 땅 모든 거민이 이를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그는 성공의 감정에서 실패의 감정으로 바뀌게 되자, 하나님께서 할례를 통하여 주신 언약의 백성의 교훈과 유월절 절기를 통하여 주신 구원의 은혜를 순간적으로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의 반응은 여호수아의 인간적인 연약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인간을 초월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와 같이 성정을 가진 자로서 인간적인 갈등과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자였습니다. 여호수아와 같이 우리도 절망의 감정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약속과 계획들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한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회복시키시며 하나님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에 대한 절망으로 가득한 여호수아에게 찾아오셔서 그에게 회복의 길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7:10).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는 영적인 사람으로서 이러한 실패의 이유를 아직까지 모르겠느냐? 너는 잘못된 이유를 알아야 할 사람이지 않느냐?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나아가 깊이 묵상하였다면, 그가 실패한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었음을 직감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를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7: 11-12).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바쳐야 하는 물건을 취함으로써 그들 스스로가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구체적으로 계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서 성별해야 했습니다.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의 중에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 (7:13). 모든 백성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 새롭게 서야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교만했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실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간의 죄를 찾아내는 과정을 명하셨습니다.

 

아침에 너희는 너희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 뽑히는 지파는 그 족속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족속은 그 가족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가족은 각 남자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며.” (7:14).

 

왜 하나님은 이러한 가정을 선택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아간을 지목하여 그의 죄를 들추어내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비뽑기를 하면서 지파별로, 족속대로, 가족대로, 그리고 개인별로 제비를 뽑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제비뽑기를 통하여 죄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두가 심각한 상황에서 죄의 뿌리가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제비 뽑는 과정을 통하여 아간이 회개하여 하나님과 백성에게 자신의 죄를 자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죄인에게 회개하는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심으로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기회를 주심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간의 죄를 아셨지만, 그가 먼저 회개하여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아간은 자신의 족속이 뽑히고 자신의 가족이 뽑히며 마침내 자신이 제비를 뽑게 될 때까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제비가 뽑힌 후에야 고백을 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아간과 그의 가족, 그리고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이 죽음으로써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7:22-26).

 

오늘 우리는 아이성의 전투와 아간의 죄를 통하여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원리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으로 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 분은 인내하시며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만, 그는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간의 죄를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전투의 패배를 통하여 죄의 심각성을 배워야 했으며, 아간은 죽음으로써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간의 죄를 용납하지 않으셨듯이, 우리의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3). 로마서 310절에서는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의미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의 진노 아래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6:23).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의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 동물을 희생하여 제사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이르러서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피흘려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8). 아간의 죄를 하나님이 찾으셔서 심판하셨듯이, 우리의 죄를 하나님은 찾으시고 마지막 날에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얻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죄사함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죄 안에 거하는 자유함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기적을 통하여 보이시기도 하셨고,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하여 명령으로 자신의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바쳐진 물품을 취하지 못하도록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셨고, 여호수아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에 입성하기 전에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6: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간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죄를 범하였습니다. 아간의 죄는 우상숭배와 같이 심각한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자신의 정욕대로 행함으로 자신과 가정, 이스라엘에 큰 수치를 가져온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가 사도행전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들을 책망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5:3). 그들은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께 속한 것을 드리지 않음으로 인하여 현장에서 심판을 받아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5:11). 그들의 일이 경계가 되어 초대 교회에 두려움이 임하게 되었고, 그들은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의도적으로 죄안에 거하고 있는가?” 만일 우리가 죄에 거하고 있다면, 우리는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거룩한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삶의 영역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알고도 범하는 죄가 있다면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케 하십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순종하는 삶인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아간과 같이 세상의 탐심에 이끌려가는 삶이 아닌지요? 혹시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못함으로 성령의 찔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요? 혹시 다윗과 같이 회개하지 않은 숨겨진 죄로 인하여 내면의 고통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요?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죄를 내려놓고 의롭고 거룩함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우리는 교회의 공동체를 세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간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큰 곤경에 처했습니다. 아간의 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큰 아픔이었습니다. 그가 심판받음으로 인하여 그와 그의 가족이 모두가 죽임을 당하였기에, 이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슬픔이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공동체로서 함께하는 지체의식으로 섬겨야 합니다. 나 혼자 동떨어진 삶이 아니라, 교회의 공동체가 함께 거룩을 추구하며 주님의 뜻에 순종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12:15).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계명에 순종하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존재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지상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연합하여 여리고 성을 무너트렸듯이, 우리는 모두가 연합하여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존재하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서로를 세우며 돌보는 공동체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비전에 믿음으로 동참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