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강해

요한일서 강해(10) -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삶의 증거(요일 2:28-29).

비전의 사람 2022. 6. 11. 16:40
반응형

요한일서 강해(10) -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삶의 증거(요일 2:28-29).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우리가 구원을 얻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 1:25). 영원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새로운 출생을 통하여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태어날 때는 육신의 부모로부터 생명을 받아 살아갑니다. 아담을 통하여 얻은 생명은 이 세상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으면 새로운 탄생을 경험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거듭나게 하시며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두 가지의 측면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양적인 생명으로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는 결코 멸망하지 않고 죽지 않고, 주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아갑니다. 영원한 생명의 질적인 생명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입니다. 즉 우리가 영적인 생명을 얻었기에 하나님을 예배하며 교제하며 섬기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생명의 삶이라고 합니다. 육체에도 음식이 필요하듯이, 영적인 생명에도 음식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에게는 기름부음이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통하여 공급받는 삶은 우리가 더욱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는 삶에서 다음의 모습을 증거로 나타냅니다.

 

1. 새 생명을 가진 자는 그리스도 안에 거합니다.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의 삶은 어떠한 삶이 되어야 하는가요? 그것은 바로 주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안에 거한다는 것에 대하여 주님이 가르치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15:4).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면,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면, 주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유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첫째, 우리는 열매를 맺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을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우리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포도나무의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가지는 포도 나무로부터 영양과 수분을 공급받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농부가 포도나무를 심고 기르는 목적은 열매를 위한 것입니다. 농부의 기쁨은 열매에 있습니다. 그러나 가지가 포도 나무에서 떨어지면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기에, 농부가 그 마른 가지를 불에 던져 사른다고 했습니다.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농부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포도나무로서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함으로 그 분이 공급하시는 은혜로 인하여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하며, 영혼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기도가 응답을 받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7).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는 축복을 누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 안에서 순종하는 삶이 바로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면, 우리의 기도를 주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 살아간다면 우리의 기도를 주님이 듣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이 악에서 떠나 주님과 바른 관계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심으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15:10). 이와같이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신 계명을 지키면 주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며 더욱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신 계명을 지키고자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계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새 계명인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지상 사명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그 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비결입니다.

 

셋째, 우리는 주님 오실 때에 담대함을 얻습니다.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사도 요한은 우리가 주 안에 거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가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도리어 담대함을 얻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신 후에 부활하셔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 그의 백성들을 영원한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하여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에 부끄럽지 않도록 담대함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부끄럽지 않고 담대함을 얻게 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사도 요한은 우리를 향하여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담대함을 얻도록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에서 분명하게 가르치는 교리 중의 하나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언제 오시는지 알 수 없기에 매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담대함으로 그 분을 만나든지, 아니면 부끄러움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삶을 살았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에 담대함을 얻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방황하는 삶을 살았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 부끄러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24-25장을 통하여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가르치시며 우리에게 깨어 있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는 때에 인자가 오리라.”(24:42-44). 예수 그리스도는 생각지 않은 때에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531절에서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25:31-32)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오실 때에 양과 염소를 구별하시듯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별하여 심판하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서 주님께서는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는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12:40)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생각지 않은 때에 오시기에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고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인이 보여주게 될 두 가지의 자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담대함과 부끄러움입니다. 담대함은 자신감을 가지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의 자녀들이 담대함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다면 우리는 담대함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움을 볼수록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4:12-14). 담대함을 갖는 것의 반대는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비록 구원받은 자라도 이 세상에서 방탕하며 술 취하며 음란한 삶을 살게 되면, 주님이 오실 때에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원하지 않는 어두움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행실을 주님이 오셔서 보실 때에 우리가 감추고 싶다면 이는 우리가 주님 앞에서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오실 때에 담대함을 갖게 되는 비결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새로운 생명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의를 행합니다.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요일 2:29).

 

사도 요한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의를 행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그에게서 난 줄은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거듭난 생명 또는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복음을 통하여 새롭게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기에 하나님을 닮아가는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에, 그에게서 난 우리도 의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의를 행하는 자는 하나님에게서 새 생명을 얻어 구원받은 증거가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의라는 개념과 구체적인 행실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처럼 의를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의를 행한다는 것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아야만이, 우리가 의를 행하는지 불의를 행하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의는 하나님의 도덕적인 기준입니다. 의의 반대는 불의로서 하나님의 도덕적인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덕적인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를 완벽하게 행할 수 없기에 우리는 행실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를 행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요? 구원받은 자는 의롭게 되었기에 더 이상 의를 행할 필요가 없나요?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혼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은 있지만 지식을 따르지 않기에 자신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의 의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신분으로 의인이 된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입니다. 그리고 행실로 의로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아감으로 인하여 의로운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출애굽기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즉 그들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20: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하시고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구원받아 구별된 백성이 되었기에,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을 따라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했습니다. 즉 그들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에, 이제는 은혜가 은혜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의의 기준대로 살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 기준대로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신 십계명은 이스라엘 자손이 마음에 새겨야 할 의의 기준이었습니다. 십계명을 가지고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율법이었습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통해서 의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본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숭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마음에 두면 하나님 앞에서 불의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성공일 수도 있고, 자녀일 수도 있으며, 재물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삶에서 최고의 존귀한 분으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고 그것에 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숭배하는 모습에서 마음에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는 유혹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그 분의 이름조차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한 이름을 찬양하며 경배해야 합니다.

 

넷째, 우리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우리에게 안식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입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하여 주일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하여 모든 일에서 쉬며 안식하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미국의 칙필에이라는 햄버거 프랜차이즈가 있습니다. 이 기업의 사장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주일에는 가게문을 닫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터 네째 계명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하여 실천해야 하는 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의 핵심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행실로 주님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다섯째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기초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면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장수하는 복을 누린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살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살인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큰 죄입니다. 최근에 뉴스에 보면 우리 사회에서 살인하는 죄가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총기로 무고한 시민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일이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는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는 간음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간음의 죄를 큰 죄로 여기고 있습니다. 부부의 관계 외에 일어나는 모든 성적인 관계는 간음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음란의 죄를 통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어둡게 하고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음란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의 존귀함을 잃어버리고 짐승과 같이 본능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음란의 죄를 범하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없습니다.

 

여덟 번째는 도적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적질은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는 행위입니다. 도적질은 자신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을 훔쳐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하나에 소 다섯으로 갚아야 하고, 양 하나에 양 넷으로 갚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도적질한 소나 나귀나 양이 자신의 손에 있다가 들키면 갑절을 배상해야 했습니다. 의로운 행실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것을 부정한 방법으로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구원받은 후에 의롭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삭개오가 의롭게 되자 그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의로운 행실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며,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친 것에 대하여는 사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소유를 나누어주고, 훔친 것에 대하여 사배나 배상함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의 의로움은 주님의 주신 구원에 대한 증거였습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뉘우치고 의로운 행실을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도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라도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거나 도적질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아홉번째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아야 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23:1)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은 다니면서 거짓말을 하고 다니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악인과 연합하여 누군가에 대하여 모함하는 것은 더 큰 불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의로운 행실이란 항상 진실만을 이야기하고, 진실만을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사탄이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로서 거짓말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그 안에 기름부음이 있습니다. 기름부음은 진리의 영으로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며 진리를 위해 살게 합니다.

 

열번째는 탐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의 집이나 소유를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탐내는 것은 마음으로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탐심을 품을 때에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고, 도적질하기 시작하며 간음하는 죄를 범하고 살인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탐심은 모든 죄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탐심을 품는 자는 스스로 교만하여 자신을 높이는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마음의 탐심을 버리고 주님의 공급하심에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섯 계명에서 열번째 계명은 이웃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서, 주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면 간음도 하지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으며, 탐심도 품지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의는 바르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의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 살아가며, 사람들과도 바른 관계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의로운 삶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행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의로운 행실은 새로운 탄생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기에, 그 분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의로운 삶을 살아가면, 세상은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은 그 분의 성품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인 신의 성품이 우리의 행동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안에 거하며, 그분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로운 행실로 주님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