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연구

사사기(9) - 기드온의 부르심과 승리의 첫걸음 (삿 6:1-32)

비전의 사람 2023. 1. 2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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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9) - 기드온의 부르심과 승리의 첫걸음 (6:1-32)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단을 훼파하여쓴즉 바알이 더불아 쟁론할 것이라 함이었더라”(6:32).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은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출생할 때에 리더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유전자를 받아 출생하게 되고, 우리의 유전자에는 인간으로서의 결점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의 본성을 가지고 이 세상에 출생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도덕적으로 실패한 후에 영적으로 갈등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1:5). 다윗은 자신의 허물에 대하여 모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죄 가운데 출생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과 같이 우리도 모두 죄악 가운데 태어나 허물이 가득한 가운데 살아가는 존재인 것입니다. 기드온도 죄가 가득한 세상과 이스라엘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죄가 가득한 우리를 부르셔서 구원하시고 구별하십니다. 그리고 허물많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삶을 변화시키셔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을 세워가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가장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연약한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은혜를 기드온의 생애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영적인 혼탁은 좌절과 실패를 가져옵니다 (6:1-10).

 

기드온의 이야기는 에훗과 바락과 같은 맥락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6:1). 바락과 드보라가 가나안 사람을 물리친 후에 하나님께서 그 땅에 사십 년 동안 안식을 주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기드온 시대에 이스라엘을 침략했던 민족들은 미디안, 아말렉, 동방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6:3). 미디안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드라가 낳은 넷째 아들의 후손으로서 아리바아 지역에서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말렉 사람들은 에서의 후손이었고,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들로 성경에 알려지고 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모세의 시대에도 이스라엘과 갈등이 있었고, 모세가 그들을 쳐서 멸한적이 있었습니다.

 

기드온 시대에 미디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지역을 공격하여 점령하기 위하여 찾아온 것이 아날, 이스라엘 자손들이 농사를 지서 얻은 곡식을 탈취하기 위하여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사는 곳은 아라비아의 사막 지역이었기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파종하고 추수할 때에 이스라엘의 토지 소산을 멸하여 양과 소나 나귀를 모두 가져갔습니다. 그들은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메뚜기 떼같이 들어왔습니다.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이느 그들이 그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서 메뚜기 떼같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약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6:4-5).

 

미디안 사람들의 약탈에 못이겨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에서 굴이나 구멍을 만들어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6:2). 그들은 더 이상 미디안의 수탈을 견디기 어려워지자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6:6).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는 한 선지자를 보내셔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했다는 것입니다(6: 7-10). 이와같이 기드온이 살아가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자손을 징계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이 악을 행하고 바알을 숭배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실제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며 순종할 때는 갈렙이나 여호수아의 시대와 같이 강하고 담대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자손을 향하여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의 힘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기뻐하며 섬길 때는 그들이 힘을 가지게 되었지만,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할 때는 그 힘을 잃어버리고 우상의 나라에 속박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길 때는 하나님이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되셔서 우리가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갑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께 속하여 믿음으로 살아가면 세상을 이기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우상들을 사랑하기 시작하며 이스라엘 자손과 같이 소심해 지고 불안에 절망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릴수 있습니다(6:11-25).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의 아버지인 요아스에게 속한 오부라의 상수리 나무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을 피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숨어서 아버지가 추수한 밀을 미디안 사람 몰래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이 두려워 넓은 타작마당 대신에 좁은 포도 즙틀 에서 몰래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다른 이스라엘 자손과 같이 소심하고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수확한 밀을 언제 빼앗길줄 몰랐기에 적은 양이라도 타작하여 식량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기드온이 밀을 타작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큰 용사요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6:12). 기드온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는 성육신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천사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사는 기적을 행하셨고 하나님이라 칭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시며 그를 큰 용사라고 하자, 기드온은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6:13).

 

이때 미디안의 수탈에 자포자기하던 약한 기드온은 하나님의 사자에게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하시면 어찌하여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미디안을 향하여 이렇게 도전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야.”(6:14). 그러자 기드온은 자신의 약함을 말하며 자신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느냐며 반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기드온은 자신이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도리어 그는 자신의 집은 므낫세 중에서 극히 약하고 자신은 아버지 집에서 제일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6:15). 기드온은 자신은 작은 가문 중에서 가장 작은 자이기에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6:16).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기드온을 보내시면서 주신 약속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할 것이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자인 다윗을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우셨듯이, 작은 자인 기드온을 부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우리가 강하고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약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6-29).

 

하나님께서는 힘없고 약한 자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을 하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사용하셔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기드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를 세상에서 지상 사명을 성취하게 하시면서 주신 주님의 약속을 상기시키십니다. 주님을 우리를 향하여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약속은 그 분의 영원하심과 같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드온은 즉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자신에게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 되는 표징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6:17). 기드온은 자신이 은혜를 얻은 증거와 자신과 말씀하신 이가 하나님이 되시는 표징을 보여주도록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하나님의 사자는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사자를 위하여 염소를 잡고 무교전병을 만들어 국과 함께 상수리나무 아래로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사자가 고기와 무교전병을 반석 위에 두고 국을 쏟으라고 했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사자가 지시한대로 순종하자, 하나님의 사자가 지팡이 끝으로 고기와 무교전병을 대자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태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는 떠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때 기드온은 비로서 자신이 대면한 사람이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6:22-23). 기드온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자를 대면하였기에 자신의 죄와 허물로 인하여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드온은 비로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반석에서 불이 나서 기드온이 준비한 예물을 태우신 하나님의 능력 앞에 기드온은 한 없이 겸손해 진 것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사자에게 원망과 불평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애굽에서 보여주셨던 기적을 왜 보여주지 않느냐며 원망했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버리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셨기에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던 것입니다. 기드온의 불평과 워망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와같이 불신이 가득했던 기드온이 하나님의 사자를 대면하자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위로하시며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기드온이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살롬이라고 했습니다.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샬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6:24). 여호와 샬롬은 하나님은 평안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미디안으로 인하여 불안하고 두려움, 그리고 좌절감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사자를 대면하고 그가 자신을 부르신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마음의 평안을 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있던 모든 불안이 하나님과 대면하면서 평안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기드온이 여호와 살롬이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향하여 샬롬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선포해야 할 말씀인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은 우리가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은 미디안과 같이 우리를 두렵게 하지만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때에 평안을 누리는 샬롬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3. 작은 승리가 큰 승리의 출발점입니다 (6:25-32).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도전하셔서 큰 일을 이루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기드온이 하나님의 편에 서서 믿음으로 선포해야 할 개인적인 도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주신 사명은 아버지 집에 있는 우상을 허물고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는 믿음의 결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그의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비의 수소를 취하고 아세라 나무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비의 수소 곧 칠 년된 수소를 취하고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또 이 견고한 성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6:25-26).

 

이스라엘의 뿌리깊은 문제는 미디안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찾아온 문제의 뿌리는 자신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하며 바알과 같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우상을 숭배하는 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미디안에게서 구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기드온에게 있어서 온 성읍이 숭배하는 바알과 아세라 상이 아버지의 집에 있다는 것은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제 기드온은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바알을 위한 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이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지를 검증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와 가족들, 그리고 마을의 사람들과 적대적인 관계에 서게 될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이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기 전에 믿음으로 서는 것을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알의 단을 헐어버리고 아세라 상을 찍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즉 우상에게 절하는 제단을 허물어 자신이 하나님께 섰다는 것을 보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시험하는 상황을 만나곤 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왕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보이기 위하여 우상에게 드려진 음식을 거절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주는 유혹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그 장소를 빠져나왔습니다. 저의 아내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집에 가서 우상을 망치로 부스는 결단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집에 우상을 용납하지 않고 어머님이 섬기는 우상을 깨트린 것입니다. 물론 그 일로 인하여 외적인 어려움이 찾아왔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변화를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쓰임받기 전에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에 있는 믿음의 결단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아버지 집에 있는 바알의 단을 허물고 아세라 상을 찍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이는 부모의 권위를 거부하는 것이고, 그 결과는 집이나 마을에서 추방될 수 있는 심각한 요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합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움이 있었기에 낮에 하지 않고 밤에 열명의 종들과 함께 우상을 무너트렸습니다. “이에 기드온이 종 열을 데리고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6:27). 기드온은 주위 사람들의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상을 헐었습니다.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바알의 단이 훼파되고 단 곁에 있던 아세라가 찍힌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한 단이 세워졌고 그 위에 제물을 드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성읍 사람들이 누가 이런 일을 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했다고 했습니다. 성읍 사람들은 기드온의 아비인 요아스에게 찾아가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6:30)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바알의 단을 파괴한 것을 죽음에 이르는 죄로 여기며 철저하게 우상 숭배를 향한 충성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드온은 바알의 단을 훼파한 죄로 죽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기드온의 아버지인 요아스가 그들에게 이렇게 응대했습니다. “여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는 자는 이 아침에 죽음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단을 훼파하였은즉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하니라.”(6:31). 요아스는 그들에게 바알편에 서서 싸우겠다는 것이냐며 질문합니다. 그리고 바알 편에서 싸우는 자는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 합니다. 요아스가 바알편에 선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한 것은, 그가 마을의 지도자로서 영향력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단호하게 만일 바알이 신이라면, 자신의 단을 파괴한 자와 직접 싸우게 두라고 했습니다. 요아스는 그동안 주위 환경을 따라 바알을 숭배하는 삶을 살았지만, 아들 기드온이 믿음으로 우상을 훼파하고 하나님께 단을 쌓아 제물을 드리자 그도 기드온과 같이 믿음의 편에 서게 된 것입니다. 기드온과 요아스의 단호한 믿음에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가 생기며 하나님의 편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고 했습니다.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단을 훼파하였은즉 바알이 더불어 쟁론할 것이라 함이었더라”(6:32). 여룹바알이란 바알과 더불어 싸우다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이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을 숭배하며 살아가고 있을 때에,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바알과 싸우며 승리했던 것입니다. 여룹바알이라는 호칭은 기드온이 바알을 대적하여 승리했다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오브라는 이스라엘의 작은 성읍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이러한 작은 성읍에서 작은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지금까지 소심했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기드온이 하나님을 대면하고 약속의 말씀을 받자 그는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그가 의심이 많아 하나님의 은혜와 표적에 대한 증거를 요구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사명이자 부르심은 바알의 단을 허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의 적대감을 이겨야 하는 어려운 사명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순종했습니다. 한 사람 기드온의 순종은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변화를 이끌었고 마침내 오브라의 성읍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바알을 위한 단이 있던 곳에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단이 세워지는 은혜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같이 한 사람을 변화시키신 후에 가정을 변화시키고 도시를 변화시키시는 역사를 하십니다. 한 사람의 변화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좌절하거나 낙심하며 심지어는 사명을 포기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사람보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믿음으로 우뚝 서기를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주의 강한 용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강한 용사로서 마음에 있는 모든 우상을 무너트리고 믿음의 편에 서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에 서게 될 때에 주위의 한 사람 한 사람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기드온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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