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서로를 세우는 하나님의 가족, 목장

비전의 사람 2023. 2. 25.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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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세우는 하나님의 가족, 목장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12:5).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됨으로 서로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인 것입니다. 한 몸으로서 우리는 서로 지체가 된 것입니다. 즉 한 몸을 이루는 각 지체가 되었으며,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이 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손은 몸의 지체, 즉 부분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일 손이 몸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시들게 되고 곧 죽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귀는 몸의 지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귀를 잘라낸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어집니다. 이러한 지체들은 몸에서 떨어져 나가면 아무런 가치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다리나, 무릎, 발들을 잘라낸다면, 분리된 지체들은 아무런 가치를 지닐수 없게 됩니다. 이와같이 몸의 지체들이 몸에서 떨어지면 시들게 되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그리스도의 몸에서 떨어지게 되면 영적으로 시들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가족의 구성원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서로에게 가족의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은,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6:10)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입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친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더욱 선을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가정은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라고 하면 대부분 건물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교회의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신약 시대에서 교회의 건물은 성전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건물안에 거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모임이며 가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결국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삼성이나 엘지, 그리고, 애플과 같은 회사들도 모두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이나 중국, 일본과 같은 나라들도 결국은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족은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존재하는 곳은 바로 하나님의 가족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며 따르는 자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교회의 가족들과 연합하여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주님을 사랑해요, 그러나, 교회의 회원이 되기는 싫어요.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을래요.” 라고 합니다. 그러한 마음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몸은 그 분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분의 몸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그 분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가운데 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가족이 필요합니다. 이는 마치 탐험가가 베이스 캠프가 필요하고, 항해사가 배가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그 분의 가족과 연합하지 않고는 주님을 따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회원, 또는 구성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새 생명을 얻었지만, 하나님의 가족과 연합하지 않을거야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가족이 없는 영적인 고아와 같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새생명에게 가족이 필요하듯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가족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모여서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를 세우고, 교제의 공동체를 이루는 곳이 바로 소그룹인 것입니다. 소그룹으로 모인 하나님의 가족들이 서로를 세워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초대교회는 성도들이 성전에 모이고, 가정에서 모이기도 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2:46). 예루살렘 교회는 주일에는 성전에서 모여 예배를 드리고, 주중에는 가정에서 소그룹으로 모여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도 주일에는 대그룹으로 예배를 드리고, 주중에는 목장의 소그룹으로 모여서 모임을 갖습니다.

 

왜 우리는 소그룹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먼저는 이것은 예수님의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그분은 먼저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면,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두 번째로 소그룹을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은 열두 제자를 세우셨고, 그들과 함께 3년 동안 사역을 하시면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사역의 현장에서는 소그룹의 모임으로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소그룹으로 모이게 될 때에 얻게 되는 네 가지의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 소그룹은 관계를 세웁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요? 왜냐하면 인생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관계를 세우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소그룹은 관계적인 기술을 배우는 실험실과 같습니다. 소그룹의 현장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실험실인 것입니다.

 

우리는 대중과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대중에게는 설교나 연설을 하는 일방적인 소통입니다. 그러나, 소그룹에서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소그룹에서는 서로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소그룹에서는 서로를 지지해주며 격려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소그룹을 통해서 사랑의 관계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관계적인 기술들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동네에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하며 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함께 소통하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직장에서 돌아와 아파트에 들어가면 더 이상 이웃들과 대면할 기회가 없어집니다. 단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눈인사를 할 정도인 것입니다. 오늘날 학생들도 학업에 시달리다 보니 친구의 관계를 맺어가는 법을 잊어가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사람들이 관계의 기술을 배우지 못함으로 인하여 인간적인 갈등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최고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서는 관계적인 기술들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를 세우는 기술들을 대중을 통해서 습득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기술은 소그룹을 통해서 배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자세히 알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의 누군가와는 의미있는 관계를 세워야 합니다. 적어도 교회에서 2명에서 4명의 누군가와 관계를 맺음으로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프면, 그들은 여러분이 아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실직하면, 그들이 여러분의 아픔을 알고 기도해 줄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병원에 있다면, 그들은 여러분이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필요를 알고 기도해 주며, 도움의 손길을 줄수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3명이나 4명의 진정한 친구들이 필요합니다. 소그룹은 사람들이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예배만 드리고, 목장의 소그룹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소그룹은 관계적입니다. 인생은 사랑을 배우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소그룹에서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소그룹은 유연성이 있습니다.

 

교회의 예배는 매주 정확한 시간에 동일한 장소에 드리게 됩니다. 그러나, 소그룹의 모임은 항상 바꿀 수 있습니다. 소그룹은 장소도 변경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장년부는 주로 토요일 저녁에 모이지만, 주부들은 주중이나 주말에 시간을 정하여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목장 모임은 장소를 바꿀 수 있습니다. 목장에 따라 집에서 모이거나 교화에서 모일 수가 있고, 날씨가 좋으면 공원이나 휴양림 같은 곳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820절에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소는 크게 구애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소그룹은 유연성이 있습니다.

 

셋째, 소그룹은 확장할 수 있습니다.

 

소그룹은 지속적인 재생산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두 세그룹으로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배가 성장을 통해서 수십 개의 목장으로 재생산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목장이 나중에는 지속적인 배가를 통하여 수백개, 나아가 수천 개의 목장으로 재생산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목자의 비전은 자신의 목장을 수년 동안 동일하게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고 영혼들을 전도하여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는 초대 교회의 모습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음의 말씀을 통하여 건강한 소그룹의 여섯 가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2:41-47).

 

초대 교회의 소그룹이 실천하였던 건강한 소그룹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1. 그들은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 (2:42).

 

성경공부는 건강한 그룹의 첫 번째 모습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42절은,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라고 했습니다. 영어로는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에 자신들을 전념했다.” 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사도의 가르침은 성경인 것입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가르침을 받은 사도의 교훈을 받아서, 가정에 모여서 그 말씀을 다시 복습하면서 연구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주일예배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말씀을 성경공부로 만들어서 주중의 목장 모임에서 다시 공부하며 삶을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에 자신들이 전념한 것입니다.

 

2. 그들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2:42).

 

초대교회는 소그룹으로 모여 떡을 떼며 서로 교제하였습니다. 교제는 서로의 관계를 세우는 것입니다. 교제는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 형성됩니다. 그리고, 교제는 자주 만나는 시간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목장이 두 주에 한 번씩 만나게 되면, 어떠한 사정으로 한 번 결석하게 되면, 여러분은 한달 동안 교제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으로는 교제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제를 위해서는 매주 한 번씩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그룹의 모임에서 자주 만나는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46절에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집에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음식은 교제의 도구인 것입니다. 우리도 목장의 모임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갑니다.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음식을 함께 먹는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왜냐하면, 음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긴장을 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장벽이 무너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임에서도 가정에서 음식을 나누며 교제하는 시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소그룹의 공동체가 더욱 강화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3. 그들은 서로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2:42).

 

초대 교회는 소그룹으로 모여서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습니다. 소그룹으로 모여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소그룹으로 모여서 말씀을 나눈 후에는 자신의 문제를 내려놓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때 서로의 기도제목을 내려놓으면서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며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너무나 큰 고통의 시간을 보낼 때에 기도할 힘조차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단지 나는 너무나 힘들어요. 나의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아요. 나는 기도할 힘조차 없어요.” 라고 말할 뿐입니다. 이때 목장의 지체들이 고통을 당하는 형제를 위해서 기도할 때인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중보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소그룹에서 나누는 기도는 지체들의 마음에 기도할 부담감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의 부담감을 나누며 기도하는 지체들이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적인 가족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위로와 격려를 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소그룹은 이와같이 서로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4. 그들은 삶에서 서로를 도와주었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2:45).

 

그들은 삶의 영역에서 필요를 보고 서로를 도와 주었습니다. , 각 사람의 필요를 보고 섬기는 사역을 감당한 것입니다.

 

소그룹에서는 서로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의 필요를 채우고자 하며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떤 지체는 기도가 필요하고, 어떤 지체는 구제가 필요하고, 어떤 지체는 상담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진정으로 섬기고자 하는 강한 열정이 있을 때에 주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5. 그들은 함께 예배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2:47).

 

소그룹으로 모인 곳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가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성전에서나 가정에서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우리가 모이는 목장에서는 단지 교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그 곳에는 약간의 자유함이 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예배가 있는 것입니다. 소그룹의 모임에는 찬송이 있고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있습니다. 더욱이 말씀 안에서의 교제는 우리의 영혼을 회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예배 가운데 주님이 임재하시니 그곳에 있는 모든 지체들이 큰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지치지 않고 힘을 얻으며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대부분은 목장의 모임에서 재충전을 받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목장의 식구들과 연합하지 않고 모임에서 예배가 없으면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리고, 시험이 찾아오면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의 뜨거운 열정이 식지 않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삶의 비결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소그룹의 모임에서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6. 그들은 다른 사람을 교회로 초청했습니다.

 

“...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2:47).

 

그들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습니다. 그들의 소그룹은 전도 소그룹이었던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소그룹은 전도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돌아오도록 사역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2:47) 라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날마다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소그룹의 성도들이 매일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롭게 힘을 내어 전도에 도전해야 합니다. 한 성도가 한 명을 전도하는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올해가 가기전에 우리는 한 사람이 한 명을 전도하여 정착하는 사역을 함께 감당하기 원합니다. 이러한 비전을 위해서 열정을 내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는 영혼을 전도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우리도 이제 열정을 다하여 영혼을 초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은 다른 가정을 전도해야 하며, 개인은 다른 영혼을 인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소그룹의 모습입니다. 사람이 성숙해지면 재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결혼을 통해서 아기를 갖는 것입니다. 영적인 성숙의 모습도 영적인 아기를 낳는 것입니다. 목장의 성숙은 다른 목장을 재생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 주님을 섬기면서 우리의 목장이 연말에 더욱 재생산 할 수 있는 목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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