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에베소서 강해(2) -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엡 1:3-6)

비전의 사람 2023. 3. 1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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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2) -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1:3).

 

에베소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영적인 축복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1:17)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좋은 은사와 선물은 다 위에 계신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질적인 축복도 주시지만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축복을 주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에 대하여 물질에 더 포커스를 맞추며 하나님의 사랑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은 영적인 축복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축복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축복이며,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과 평안을 주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는 영적인 축복이 하늘에 속한 복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복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복은 세상적인 사람들도 누립니다. 그러나 영적인 축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구약에서 에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영적인 축복을 무시하고 육적인 필요를 우선시했습니다. 그는 한 그릇 팥죽을 위하여 영적인 축복이 담긴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나중에 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축복을 구했으나 얻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12:16)라고 했습니다. 에서는 영적인 축복을 거절했기에 망령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축복을 사모했던 야곱은 복 있는 자가 되어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며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는 야곱의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를 시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축복을 누리는 우리는 얼마나 복된 삶을 살아가는가를 깊이 깨닫게 합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사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1:4).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성도들이 누리는 축복의 첫 장을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시작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1:4). 에베소서는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에 대한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람은 죄로 인하여 타락한 존재가 되어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도덕성과 의로움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을 만한 의로움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64:6)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선한 의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로 살아왔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큰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계시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시공간을 초월하여 한 눈에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우리를 아시고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의 은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실 때에 그가 태어나기 전에 그를 구별하여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1:5). 하나님이 예레미야가 태중에 생기기 전에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아셨습니다. 심지어 예례미야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구별하여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인 창세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아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은혜인 것입니다. 죄 가운데 살아가던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죄 사함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깊이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 1:26).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구원하신 이유가 우리가 지혜가 있거나 능력이 있거나 권세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천하고 멸시 받고 상처가 있고, 약한 자들을 부르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9).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실 때는 약하고 멸시받고, 상처가 있는 자들을 부르셔서 그 분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는 데라의 가문에 속했던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을 숭배하는 가정에서 성장했고, 그는 자녀가 없이 살아감으로 후손에 대한 대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후속에 대한 약속과 가나안의 땅과 메시야가 자손으로 나와서 온 세상에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는 순간 아브라함의 인생은 복된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이 얼마나 큰 복을 받은 자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는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손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고, 가나안 땅이 그의 자손의 땅이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부르셔서 그의 거룩한 나라와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열방 중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택한 이유에 대하여 모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7:6-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택하셔서 애굽에서 구원하신 이유는 그들의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수효가 가장 적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심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시기 위하여 애굽의 종되었던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3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라는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신 사랑으로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로 대신 삼으셔서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을 믿습니다. 이때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대한 은혜를 잊곤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강조하며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자신의 믿음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 자신을 더욱 크게 부각시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구원의 길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다메섹 도상으로 가는 길에 부르셔서 구원하셨듯이, 우리의 구원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서침례교회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저의 아내는 불신자 가정에서 자라다가 중앙대학교 기독학생회의 수양회에 초청받아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신비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보다 더욱 지적이고 총명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심지어는 이단에 빠지기도 합니다. 한 가정에 형제들이 있지만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것이 세상 사람들보다 성격이 좋고 더욱 인격적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11:5-6).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구원하신 것은 우리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더욱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구원하심은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1:4).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셔서 구원하심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예수님이 우리의 지혜이시며 거룩이시며, 의로움이 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칭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칭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를 향한 다른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실이 주님의 거룩함과 의로움을 따라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감으로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숙한 삶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흠이 없는 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예정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1:5).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예정하신 예정론을 믿지 않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온 세상을 사랑하셔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로마서 10장에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13)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를 정하시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디모데전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1:4)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적인 구원의 가르침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듣고 믿는 자에게 구원을 보장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1:1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사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의미는 무엇인가요?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1:5). 미국의 유명한 성경 주석을 발간한 스코필드는 이 구절에 대하여 미리 알고 계셨다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도 미국의 침례신학교에서 이렇게 배우기도 했고 잭 하일스 목사님도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의 포커스는 예정하신 것, 또는 미리 정하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구절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그 분의 선하신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미리 정하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겠다고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백성은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서 이스마엘의 후손이 아니라, 이삭의 후손이어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받은 자만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도록 미리 예정하신 것입니다. 이 구절의 위대함은 유대인 뿐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던 이방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도록 하나님이 미리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신 것을 사람이 부정하다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들로 삼겠다고 하신 것을 어느 누구도 거절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은 구원의 목적이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8:29). 즉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들이 성화를 통하여 주님을 닮아가기를 기뻐하십니다. 이와같이 에베소서 15절에서 가르치는 예정은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로 입양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포커스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단지 지옥에서 구원받은 이상의 은혜를 누립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새로운 생명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특권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새로운 출생 또는 중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은혜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부어주셨습니다. 즉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인증해 주신 것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8:15-16).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8:17).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로서 장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의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부르셔서 장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누리는 특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된 우리에게는 하늘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14:1-2).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실 기업인 천국을 예비하시러 천국에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지금 천국에서 우리를 위한 기업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왜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시나요?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아들들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는 거듭난 우리에게 하늘에 간직된 기업이 있을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하나님께서는 자녀된 우리를 위하여 천국에 영원한 기업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혜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보호하셨듯이, 우리를 환난 가운데 지키시며 필요를 채우시고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기업, 상속이 천국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거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천국에 이르기 위하여 우리의 죽을 몸을 그리스도와 같이 새로운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긴 보상으로 면류관을 상급으로 얻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을 향한 하나님의 정하신 뜻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9). 우리가 아들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은 우리의 성화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맏아들이 되고, 우리는 주님의 뒤를 이은 아들들이 되어 주님과 같은 기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주님을 닮아가고자 더욱 힘쓰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의 그릇이었지만, 그는 도저히 하나님의 사람과는 거리가 멀게 속이고 다투는 자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더욱 축복하시기 위하여 밧단아람에서 고난속에 빚어지게 하셨고, 얍복강 가에서 그의 힘의 근원인 환골뼈를 깨트리셔서 겸손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 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족장이 된 것입니다. 그는 비로서 자신의 자아가 깨어진 이후에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야곱과 같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실 때에 자녀로서 대우하시며 더 놓은 선을 위하여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위하여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주님은 아들로서 아버지께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 뿐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1:6).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목적은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구원하신 새로운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히 쇠하지 않는 하늘의 기업을 상속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찬송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에 대한 의식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예배 받기에 합당하식에 우리는 찬양과 기도, 말씀, 그리고 예물을 드려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시편 기자는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찌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29:1)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삶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예배에 대한 인식이 낮아지면서 예배에 대한 헌신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의 예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 거룩한 옷을 입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교회에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심으로 우리가 기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의 목적인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예배의 주체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은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것만을 추구하는 연약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로 모이는 교회를 세우신 이유는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배는 전 성도가 한 마음으로 구원하신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하나님의 임재 아래서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가 강할수록 교회가 강해지며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이 중심이 된다면 예배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의무감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도 아니고 자신의 유익도 아니라, 단지 일주일에 한번씩 가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하나님의 임재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율법적으로 신앙생활하는 경우입니다. 우리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자원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믿음의 고백이 있는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천국에서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5:12).

 

우리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능력과 부와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도록 힘써 주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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