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에베소서 강해(1)-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적 축복(엡 1:1-3).

비전의 사람 2023. 3. 1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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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1)-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적 축복(1: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1:3).

 

에베소서는 바울 신학의 절정이며, 사도 바울의 서신서의 진수라고 알려졌습니다. 에베소서는 신학 성경이 가르치는 가장 종합적인 서신서이기도 합니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부요함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풍성함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우리를 풍성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에베소서는 보여주는 것입니다.

 

미국의 역사에서 헤티 그린이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헤티 그린은 2001년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2001년 발표한 세계 최고의 부자의 목록에 포함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사람 중의 한 명이었던 헤티 그린은, 동시에 미국에서 가장 비참하게 살아간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녀가 1916년에 사망했을 때에, 그녀는 1억 달러의 자산을 남겼습니다. 1억 달러는 한화로 약 1300억이나 되는 자산입니다.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20조 이상의 돈이 된다고 합니다. 그녀는 엄청난 자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비참한 삶을 선택합니다. 그녀는 저렴한 셋집에 살았고 월가의 사무실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했습니다. 그녀는 오트밀, 즉 시리얼을 먹을 때도 물을 데우는 돈을 줄이기 위하여 차가운 오트밀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아들이 다리에 큰 부상을 입었는데, 그녀는 의사에게 데려가지 않고 직접 치료했습니다. 이년 후까지 무릎이 낫지 않자 아들에게 지저분한 옷을 입혀 빈민을 위한 무료 치료를 신청했으나 의사가 그녀를 알아보고 진료비를 요구하자 그냥 떠나갔다고 합니다. 수년 후에 아들은 치료 시기를 놓쳐 아들의 다리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이와같이 그녀는 당시에 최고의 부자였지만 스스로 가장 극빈자처럼 생활했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100년 전에 1300억의 자산이 있었지만, 그돈을 사용하지 않고 모으기만 하다가 아들의 다리를 절단하고 자신은 찬 음식을 먹으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마트에서 저지방 우유의 가격을 놓고 싸우다고 뇌출혈이 와서 죽음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와같이 자신의 자산을 모을 줄을 알아도 사용할줄 모르는 어리석은 삶을 살았습니다.

 

20조의 재산을 소유하고도 스스로 가난하게 살다가 의료비를 아끼려고 아들의 다리까지 절단한 헤티 그린의 삶은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을 주고 있는가요?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있는 자원을 사용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무한한 부의 자원이 있었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극빈자의 삶을 살았던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가르치는 교훈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풍성함을 영적인 삶과 교회에서 누리게 하는 것이 에베소서의 교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풍성한 영적인 자원을 창고에 놓고도 스스로 영적인 영양실조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 가치가 주는 의미를 모르기에 영적으로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교훈을 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풍성함을 사용함으로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가르치고, 우리가 얼마나 풍성한 자원을 소유했는지 알게 하며,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러한 부를 사용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은 에베소서의 서론으로서 에베소서의 배경과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풍성함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에베소의 도시적 배경과 사도 바울의 사역

 

에베소는 사도 바울의 3차 선교 사역의 중심지였고, 세계 선교의 전초 기지로서 쓰임받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이곳에서 최소 2년간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이때 에베소서에서 큰 부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후에 로마의 감옥에서 주후 62년에 에베소 교회에 서신서를 기록하게 됩니다. 에베소에 대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에베소는 로마의 속주인 아시아의 수도였고, 인구는 25만 명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24천 명을 수용하는 큰 연극장이 있었습니다.

2) 에베소는 도시의 수호 여신인 아데미 (헬라식은 다이아나) 를 숭배하며 큰 축제를 열었습니다. 아데미 여신은 제우스의 딸로서 풍요와 다산을 주관하는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아데미 신전은 아덴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가 컸으며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입니다.

3) 에베소 사람들은 자신들을 큰 아데미와 하늘로서 내려온 우상 제우스의 전각지기, 즉 신전을 관리하는 종사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아데미 여신이 하늘로서 내려왔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 사람들은 여행이나 전쟁에 나갈 때에 모조품인 아데미 여신 상과 신전 모형을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는 나무나 금 혹은 은으로 조각한 여신 상과 신전상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사업이 번영했습니다.

 

이러한 우상이 가득한 도시에서 사도 바울은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으로 에베소서에 믿는 자가 늘어나고 교회가 세워지고, 주위에 복음이 확산되게 하는 선교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3차 선교 여행 기간에 이곳에 약 2년간 머물며 복음을 전하며 큰 부흥을 일으키게 됩니다. 사도 행전은 에베소서의 사역에 대하여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19:20)고 했습니다.

 

2. 에베소서의 메시지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쇠사슬에 매여 밤낮을 보내면서, 그는 그의 선교의 경험들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에베소서에서의 2년간의 사역을 통한 열매와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과의 만남을 추억하며 서신서를 기록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도 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1:1).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1:1).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음을 인정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베냐민 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베냐민 지파에서 왕이었던 사울 왕의 이름을 따서 사울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사울은 일찍이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가서 가말리아 학파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아 훌륭한 랍비가 되었고, 나중에는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으로서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의 위치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공동체에서 인정받는 경건한 자였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핍박하는 자로서의 악명이 있었습니다.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증오하고 있었고,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 가두거나 죽이는 일에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오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9:4-5).

 

주님의 음성을 들은 사도 바울은 즉각적인 회심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난 후부터 삶에서 큰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변화된 이후에 첫째로 한 것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9:22). 그 후에 사도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로서 쓰임받게 되다가, 성령의 부르심을 따라 선교사로 파송받게 됩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13:2). 그 후부터 사도 바울은 교회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교사의 여정을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방 세계에서 복음을 전한 후에 교회들을 세워 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구원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은 그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사도의 의미는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고 했습니다. 즉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였고, 그리스도를 위한 메신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도 않았고 자랑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의 간증을 이렇게 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 1:13-14). 사도 바울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하는 죄인 중의 괴수였지만,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은혜로 인하여 이제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종이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을 받은 이후에,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가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자였지만, 주님 앞에서 자신은 항상 작은 자임을 고백하게 하는 이름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사도 바울은 자신은 단지 무가치한 질그릇이지만, 주님이 자신의 진정 보배임을 고백했습니다. 질그릇의 가치는 그 안에 보배를 담고 있기에 함께 빛을 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빛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내는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빛을 내며 자랑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고 힘을 자랑하고 영향력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허물을 발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2. 사도 바울은 이방인을 구원하여 거룩한 성도로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했습니다.

 

”...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1:1).

 

성도라는 말은 거룩한 자, 구별하여 거룩하게 된 자라는 의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구약에서 성도라고 함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구별한 이스라엘 자손에게만 지칭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부정한 자로서 간주되었습니다.

 

에베소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이방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들은 전에는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여신을 숭배하며 음란한 삶을 살았고, 우상에게 절하고 분향하며 사탄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어두움에 갇혀 있었고 죄의 사슬에 매여 방황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구원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가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방인들을 성도로 간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방인을 성도라는 귀한 명칭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의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2:12). 그들은 이방인으로서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성도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성도는 다른 말로 하면 saint 으로서 성인이라는 뜻입니다. 카톨릭에서는 카톨릭의 기준에서 큰 업적을 이루고 기적을 두 번 이상 일으킨 사람으로서 천국에 있다고 믿어지는 사람 중에서 식별합니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종으로 선언되어야 하고, 교황에 의해 존경받는 것으로 선언되며, 나중에는 복이 있다고 선언 되어야 하는데, 이는 개인의 기도로 기적을 일으킨 증거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람을 성인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성인이 아니라, 개인의 행위에 기초한 사람을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모든 자가 성인이 되는 것이며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카톨릭에서는 더 나아가 성인은 천국에 있으며, 영적으로 중보자 역할을 하여 자신들의 기도와 필요에 대한 기도를 하나님께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즉 카톨릭 신자들이 성인에게 기도함으로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성도라고 부르심을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로서 천국에 가는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성도로서의 존재감을 잊고 살아가곤 합니다. 우리의 존재를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두움에 갇혀 죄의 종으로 살아가던 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죄의 종으로 살아가던 우리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빛되신 주님께서 오셔서 구원하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성도라고 지칭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자인 성도라는 사실을 한 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전에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인 사탄을 따르는 자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성도가 되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2:1-2).

 

우리가 이와같이 어두움의 권세를 따랐고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아가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며 믿음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신실한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은혜를 주시고 평강을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와 평강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에게 주는 인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3.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축복이 있음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1:3).

 

사도 바울은 자신을 부르시고 사도의 사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방인을 부르셔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후에 성도라고 부름을 받은 것에 대하여도 찬송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 주신 하늘에 속한 영적인 축복에 대하여 찬송합니다.

 

영적인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은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축복의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적 부요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1:7).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음으로 구원을 받은 은혜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새생명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한 삶을 살아가며 영적인 축복을 받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3:16).

 

영광의 풍성함이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면서 동행하는 삶에서 누리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은혜의 풍성함과, 그리스도의 풍성, 그리고 영광의 풍성함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베소서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풍성함을 누린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은혜의 풍성함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영적인 축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구약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은 주로 물질적인 것에 속했습니다. 신명기 281-14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그들은 자녀를 많이 낳을 거시고, 농작물의 수확이 풍성하며, 양들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이와같이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속한 자들의 물질적인 필요를 채우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필요를 아시고 그 필요를 따라서 채우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물질의 필요를 채우실 뿐 아니라 영적인 필요를 채우십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새 언약의 시대인 신약 시대입니다.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하게 주신 약속은 영적인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부요함은 그의 몸된 교회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몸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1:23). 하나님은 교회로 말미암아 각종 지혜를 알게 하셨고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보여주십니다. 이제 이방인들도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고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지위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축복을 감사하며 더욱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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