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에베소서 강해(11) - 새 사람을 위한 사도 바울의 기도(엡 3:14-21)

비전의 사람 2023. 6. 1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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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11) - 새 사람을 위한 사도 바울의 기도(3:14-21)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3:16-17).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되게 하셔서 지체들과 함께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3:14).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필요한 영적인 필요힌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1.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속 사람이 강건해야 합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3:16).

 

사도 바울은 영광의 풍성을 따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은 그 분의 풍성을 따라 주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소유한 은혜와 능력은 고갈되지 않고 풍성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새 생명을 속사람이라고 부르고, 겉 사람을 육신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속사람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적인 생명입니다. 구원받지 않는 사람의 속 사람은 죽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아 생명을 얻게 됨으로 속 사람이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속 사람은 보고, 듣고, 맛보고, 느낄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18)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속 사람은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은혜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가 건강해야 하듯이, 우리의 속 사람도 강건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디모데전서는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8). 우리가 육체의 운동은 겉사람에 유익을 주어 강건하게 합니다. 그러나 경건에 이르는 훈련은 우리의 속 사람에게 유익을 주어 영적으로 강건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은 모든 믿는 자 안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18절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1:8)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은 우리가 영적인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제자들이 성령으로 거듭나 후에 영적인 능력을 얻게 되었고, 그들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세상에서 사역하실 때에 성령의 권능으로 사역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10:38). 예수님도 사역을 하시면서 하나님이 부어주신 성령의 능력으로 착한 일을 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심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자원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셔서 우리가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영적인 저항을 만나거나 영적인 싸움을 싸우게 됩니다. 우리가 유혹을 이기기 위하여 싸워야 할 적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세상과 육신, 그리고 사탄입니다. 우리의 속 사람이 강건할 때에 세상이 주는 유혹을 이기고, 육신과 안목의 정욕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이 우리를 공격할 때에 믿음의 방패과 말씀의 검으로 싸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속 사람이 성령으로 강건해져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경건의 삶을 살아가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위대한 사도였지만 그는 육신을 가진 자로서 죄와 싸우며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7장은 사도 바울의 죄로 인한 갈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7:15-19). 사도 바울은 자신의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고자 하지만, 그 육신에 죄가 있어서 원하지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 것을 인하여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7:22-24)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육신의 죄가 자신을 사로잡아 죄의 길로 유혹하는 것을 보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낼 것인가라며 탄식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힘으로는 육신의 권세를 이길 수 없지만, 자신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능히 승리할 수 있음을 로마서 8장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8:12-13). 우리가 육신대로 져서 살면 육신의 정욕대로 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육신을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영적으로 살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영적 승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 속사람이 강건할 때에 찾아오는 열매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4:13)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능력을 주신다는 것은 사도 바울의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 바울을 강건하게 하심으로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우리를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셔서 날마다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함께 자라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2:17).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받은 성도 안에 오셔서 거하십니다. 그 분께서는 우리의 육체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고 하옵시고...”(2:17)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계신다는 것은 집에 거처를 마련한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집처럼 편안하게 거하시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순종할수록 우리의 마음을 더욱 청결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하게 거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 회개되어지지 않은 죄가 있어서 육신의 생각과 탐심, 시기와 분쟁, 음란이 가득하다면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편안하게 거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불순종과 죄, 그리고 이기심은 주님을 대적하는 정욕적인 것이기에 내면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욕심과 음란, 그리고 불순종과 같은 악한 것들이 가득했고 죄가 왕노릇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주님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나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발견하고 그 분을 마음에 초청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오셔서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그 분의 거처로 삼으시며, 우리의 삶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의 주님을 향한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하며 조금씩 세상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기 시작하며 마음에 들여오기 시작합니다. 주님이 평안히 거하시던 그 처소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불편을 느끼기 시작하시면서 그 분이 거하시기가 불편해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령과 말씀으로 우리의 삶의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이때 우리는 성령이 주시는 깨우침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시고 자신이 주인되는 삶을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평안히 거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깨끗하게 한 후에 우리는 주님과 친밀한 관계에서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주님의 사랑안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4:17). 뿌리가 내리는 것은 나무에 비유하는 표현입니다. 나무가 양분과 수분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땅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뿌리가 땅에 내리지 않는다면 나무는 가뭄이 찾아오거나 폭풍우가 찾아오면 넘어지게 됩니다.

 

시편 1편은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1:1-3).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영적인 양식을 얻는 자는 시냇가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시절을 따라 과실을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터가 굳어지는 것은 건물의 기초를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무가 뿌리를 내려야 하고, 건물이 기초위에 든든히 세워져야 하듯이, 우리의 믿음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깊이 뿌리를 내리면 믿음의 시험이나 인생의 고난에서도 능히 견디며 승리하게 합니다. 인생의 깊은 어두운 밤이 찾아왔을 때에 그리스도와의 깊은 사랑의 관계는 우리가 더욱 성숙하게 하며 자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주님과의 관계가 견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5, 37).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굳게 하여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뿌리를 내릴 때에 혼자가 아니라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며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3:18-19). 우리는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 분의 사랑에 대한 넓이와 길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라고 하셨을가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깊이 알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로서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찬양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알아가며 교회가 함께 주님을 찬양하며 사랑을 표현합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말씀의 선포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겸손함이 있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마음을 다하여 들으며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목장으로 모여서 서로 교제하며 말씀의 은혜를 나눌 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갑니다. 우리가 서로의 삶을 통하여 서로 위로하며 격려하며 기도하는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묵상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은 실패하지 않고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길이가 어떠한지를 발견합니다. 세상의 어떤 측정기로도 그리스도의 사랑의 길이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를 천국으로까지 인도하시는 사랑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높이를 측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육신을 입고 종의 모습을 취하신 사랑에서 그 분의 사랑의 깊이를 측량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흠이 많고 제한이 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완전하고 영원하며 제한이 없는 온전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원하시고 위대한 사랑안에서 함께 뿌리를 내리고 알아가며 자라가야 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3:19).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충만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만을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충만히 거하셨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1:19). 즉 예수 그리스도안에는 하나님이 충만으로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2:9-10).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그 분은 신성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즉 예수님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충만해졌습니다.

 

우리의 속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의 충만은 성령의 충만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5장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5:18)고 했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는 비결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영적인 은혜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며, 영적인 찬양을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3:16-17). 우리의 속사람이 자라가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는 삶은 우리 안에 하나님이 충만하게 거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충만이 충만하기 위해서는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찬송은 우리의 속 사람이 하나님의 충만히 가득하게 하는 길입니다. 이는 시편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중에 거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22:3). 우리가 찬송하며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임재하시며, 교회 가운데서 영광받으십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할 때에 우리의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이 가득함으로 찬양의 은혜와 말씀의 능력, 그리고 기도의 응답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3:20-21).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에 거하시게 되는 삶은 영적으로 승리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충만이 가득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셔서 우리의 구하는 것보다 넘치도록 응답하시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요한1서는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 5:14-15).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며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비결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하여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기도 응답의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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