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에베소서 강해(12) - 교회의 하나됨을 힘써 지키라(엡 4:1-6).

비전의 사람 2023. 6. 1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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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12) - 교회의 하나됨을 힘써 지키라(4:1-6).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2-3).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1절에서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3장 까지는 신학과 교리적인 부분을 가르친 후에 4장부터 6장 까지는 실천적인 삶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서신서의 특징은 주로 처음에는 교리와 신학을 가르친 후에 그 교리에 맞게 살아가야 하는 실천적인 삶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3장 까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된 은혜의 풍성함을 얻는 자로서 이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합당하게 라는 단어는 영어로는 가치있게라는 의미이며, ‘엑시오스라는 헬라어는 무게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즉 동등한 가치와 무게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합당하게 우리는 그 은혜의 가치대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된 우리의 삶은 어두움의 권세 아래 살아갔던 그 때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위대한 일을 행하셨기에, 우리는 남은 생애를 주님의 위대한 뜻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자신에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는데, 우리는 그 구원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가요?

 

에베소서 4장에서 6장은 구원받은 자가 어떻게 그 구원의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은 구원의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길을 두 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는 통일성 또는 연합하는 삶을 살아가며(1-16), 둘째는 정결하게 살아가라(17-32)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연합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연합이란 영어 단어는 unity 로서 사전적인 의미는 모두가 동의하는 상태 또는 부분을 결합하여 서로 연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연합이란 부분들이 서로 모여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레고는 수백개의 조립품을 모아서 조립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에 한 개의 큰 작품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한 지체로 시작된 교회가 영혼들이 구원받아 더해지면서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주님을 섬기는 아름다운 모습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게 하는 영적인 원리를 나눈 후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더욱 하나됨을 지키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의 연합을 이루기 위하여 변화된 성품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4:2).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촉구하는 연합 또는 하나됨은 변화된 성품으로 시작합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사로 용납하고.” (4:2). 교회 안에서 연합하고자 하는 성품을 가진 성도는 교만에서 변화되어 겸손하고 온유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은 노예들이 가진 성품으로 간주되어 멸시되는 성향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추앙하는 사람들은 겸손한 자가 아니라 자신을 주장하며 드러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거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따라서 겸손하여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낮은 자로 보는 새로운 자세를 갖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겸손과 더불어 온유한 성품을 가진 자들이 하나됨을 이루는 자라고 했습니다. 온유함은 약한 것이 아니라, 힘을 다스릴 수 있는 자입니다. 즉 자신의 성품을 다스려 부드러움으로 드러내는 기질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 대하여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11:29)라고 하시며 두 가지의 성품을 가지신 분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신 종의 모습으로 겸손을 나타내셨고, 가장 강한 분이시지만 자신의 강함을 절제하시며 온유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온유함을 원수 갚는 것으로 보이지 않으시고 용서하시는 모습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교만이나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오만함은 교회 안에 불화를 가져오는 씨앗입니다. 압살롬의 거만은 이스라엘을 분열로 이끌었지만, 요셉의 겸손은 불화하는 형제들을 하나게 되게 했습니다. 이와같이 겸손하고 온유함을 가진 성도는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됨을 지키는 성도는 겸손하고 온유할 뿐 아니라, 그들은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4:2).

 

드와잇 펜티코스트 목사님이 한 교회가 분열되는 아픔을 겪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는 서로 나뉘어져 양분되어 소송하다가 결국 두 교회로 나뉘는 아픔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나뉘어진 배경을 조사해 보니까, 교회의 식사 시간에 한 장로님이 자신의 옆에 앉은 아이보다 적은 햄을 준 것이 발단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 영향력 있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거만함으로 인하여 그 교회가 분열되는 아픔을 겪게 된 것입니다. 이와같이 마음에 일어난 자아로 인하여 성도가 분열되고 교회가 나뉘는 아픔에 이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인내와 서로 용납하지 않는 것은 교회가 어려움을 겪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하며 온유할 뿐 아니라, 서로를 향하여 인내하며 용납해야 합니다.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것은 서로의 관계를 세워가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와같은 사랑은 교회를 견고하게 세워가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에서 서로를 향하여 품어야 할 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 1:22).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벧전 2:17).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에베소서 42절이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연합과 하나됨은 마음의 자세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이며 온유, 그리고 인내와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3절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3)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은 교회의 다양한 지체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여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지체들은 각기 다른 기질과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고 추구하는 가치도 다르지만,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되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용납함의 은혜가 흘러 넘쳐서 교회의 지체가 연합하여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는 삶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2. 삼위 일체 하나님은 성도의 하나되게 하는 뿌리가 됩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4:4).

 

에베소서 44-6절은 그리스도인의 하나됨의 근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됨의 근간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4:4-6). 사도 바울은 우리의 하나됨의 근간은 삼위 일체 하나님께 뿌리를 두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성령과 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44-6절 에서 하나되게 하는 일곱 가지의 요소는 모두가 삼위 일체 하나님과 연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령님과 그의 사역이 우리를 하나되게 했습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4:4).

 

성령님은 우리가 지체인 그리스도의 몸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213절은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우리가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과정은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후에 교회와 연합하게 하심으로 그 분의 교회가 되게 하는 사역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만드시고, 교회를 세우수기 위하여 교회를 그 분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시며, 강건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교회를 하나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인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믿음의 교제를 나누는 삶에 참여하게 되면, 성령께서는 우리를 더욱 하나되게 하시면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사역에 참여함을 통하여 교회의 하나됨을 지켜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와 그 분의 사역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십니다.

 

” ...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4:4-5).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86절은 ” ...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 8:6)라고 했습니다. 온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되었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의 주가 되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2:2)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분이시며 주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믿음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두 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믿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게 되는 구원의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며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세워지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도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침례는 물에 잠기다는 뜻으로 물에 잠기는 침례가 성경적입니다. 세례는 물을 뿌리는 것으로서 구원을 상징할 수 없습니다.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지내셨다가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고 장사되었다가 새 생명으로 살아나 구원받은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입게 했습니다. ”...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4:4).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에게 복스러운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디도서 213절은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2:13)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복스러운 소망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그 분과 같이 변화되어 주님의 나라에 영원히 거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아버지와 그 분의 사역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4:6).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만유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통일하시며 만유 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만유가 통일되듯이, 하나님 안에 세워지는 교회도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은 모든 성도님들이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주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믿음을 배워서 그 믿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에 우리는 자녀로서 서로 사랑하며 연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됨은 삼위 일체 하나님의 속성 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한 몸이 되었고, 한 성령안에 거하며, 한 소망을 품고 있으며, 한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하나의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한 침례인 물에 잠기는 침례를 믿습니다. 그리고 한 분 하나님과 만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 같이, 주님의 제자들도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17:22). 주님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되어 주님의 영광이 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분의 교회인 성도들이 하나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 되기에 힘쓰는 것은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겸손인 것입니다.

 

3.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3).

 

사도 바울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습니다. 힘쓰라는 것은 열심히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게 하나됨을 힘써 지키라는 명령을 주신 이유는 그들 안에 분쟁과 질투로 인하여 하나됨의 장애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는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주님의 교회는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할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분쟁이나 경쟁, 분노와 같은 미움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로서 우리는 삼위 일체 하나님의 속성안에서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를 기록할 당시에 교회는 하나가 되지 못하고 분쟁이 일어나며 서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에게 속했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아볼로, 어떤 사람은 베드로,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하며 당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언은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18:1)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육신적인 교회였기에 자신의 소욕을 따라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소욕을 따라서 분열시키는 자가 아니라 하나되게 하는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기 위해서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서로를 연결해야 합니다. 평안의 줄이란 지체들 안에서 평화를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막을 제작할 때에 성막을 견고하게 지탱하기 위하여 띠를 둘렀습니다. 성막을 견고하게 한 것이 띠이듯이, 교회를 견고하게 지탱하는 것이 평안의 매는 띠인 것입니다. 지체들간에 평화를 누리며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가 더욱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됨을 잘 지키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교회의 하나됨을 위하여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우리의 믿음이 삼위 일체 하나님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우리의 하나됨도 우리의 믿음만큼 견고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가 삼위 일체를 믿고 침례를 믿고 은혜의 구원을 믿는 만큼,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됨을 지키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요일 1:3-4). 우리의 사귐은 에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이며, 예수님과의 교제는 우리가 서로 교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하나됨을 지키기 위하여 성령께서 우리의 성품을 빚으셔서 하나되게 하는 겸손과 온유, 그리고 인내와 오래 참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하나됨을 위해서 기도하셨듯이, 우리도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며 자신의 성품이 하나되게 하는 자세를 갖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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