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에베소서 강해(13) -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합니다 (엡 4:7-16).

비전의 사람 2023. 6. 2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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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13) -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합니다 (4:7-16).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4:11-12).

 

복음의 본질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풍성한 은혜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는 사람이 구원을 얻기 위하여 자신이 믿는 신을 위하여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서 우리가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란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라는 주님의 몸에 거하며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잘 섬기는 자가 되도록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종 은사를 주셨고, 교회에는 영적 지도자를 주셔서 모두가 한 몸이 되어 주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를 향하여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며 말씀을 나누며 주님의 몸된 지체로서 더욱 연합하여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는 각 사람에게 선물을 은혜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4:7).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47절은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 아래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은혜는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풍성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셔서 구원하셨고, 성령을 우리 마음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유업을 기업으로 주셨으며, 장차 우리를 위하여 천국을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47절에서 언급한 그리스도의 선물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은혜로 주신 그리스도의 선물은 바로 영적 은사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우리가 출생할 때에 각 사람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떤 사람은 운동에 탁월하지만, 어떤 사람은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에 탁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해력이 좋아 공부에 월등한 성적을 내기도 합니다. 각 사람은 출생할 때에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각 사람은 영적으로 출생할 때도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셔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섬기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은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12:5-6)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각 지체들에게 각각 은사를 은혜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각자는 자신이 받은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기쁨으로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에서는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말씀을 전하는 자와 섬기는 자, 그리고 가르치는 자와 권면하는 자, 그리고 구제하는 자로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다스리는 자와 긍휼을 베푸는 자로 구분하여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각자에게 주신 은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1-12)라고 했습니다. 각 성령에게 각 사람에게 주님의 뜻대로 은사를 나눠주시는 것입니다.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듯이, 각자에게 몸을 세우는 기능을 위하여 각각 은사를 주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는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교회를 세워가는 지체는 각 성도로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충만하게 하시고 통일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1:23). 우리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몸으로서 각 지체마다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각 지체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은사를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양한 지체들이 주님께서 맡긴 사역을 각자의 은사를 가지고 섬길 때에 건강하게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선물인 은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기쁨으로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그리스도는 승리자로서 온 세상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셨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4:8-10).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권자로서 대적하는 자를 물리치시고 승리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시편 6818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에베소서 48-10절의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을 인간에게서, 또는 패역자 중에서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려 하심이로다.”(68:18). 시편 687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이후에 그들 앞에서 행진하신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 앞에서 땅과 시내산이 진동했음을 묘사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에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68:7-8). 그리고 시편 6811-14절은 왕들과 군대들이 하나님 앞에서 도망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병거는 천천이여 만만으로서 전쟁에서 승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들을 인간으로부터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에게 이 시편의 말씀을 적용하며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셨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4:8-9). 예수님께서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땅 아랫곳으로 내려가신 것이 어떤 의미인가요?

 

이스라엘 자손이 이방 나라에 의하여 정복당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이 이방 나라를 정복하면 포로잡혔던 이스라엘 자손을 자유하게 한 후에 고국으로 데리고 오곤 했습니다. 즉 승리한 왕은 정복한 나라에서 포로로 갇혀있던 자신의 백성을 자유하게 한 후에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왕은 전리품을 가져오며 패배한 나라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와 이스라엘을 섬기게 합니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의 백성은 자유하게 한 후에 함께 돌아옵니다. 이것이 바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예수님은 사탄과 마귀들과 영적 전쟁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국 십자가에서 사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패배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승리자이셨습니다. 십자가 사건 후에,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18절에서 19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벧전 3:18-1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의인으로서 불의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셔서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의 영은 살아서 그 분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즉 그 분의 몸은 죽으셨지만, 그 분의 영은 살아계셨던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의 몸이 죽더라도 속 사람인 영혼은 살아서 주님의 나라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무덤에 계셨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분의 영으로 죽은 자들이 있는 아래로 내려가셨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고 기록했습니다. 그 옥은 어디를 의미하는가요? 그 옥은 죽은 자들이 가는 처소를 의미합니다. 구약에서는 죽은 자들이 가는 것을 하데스 또는 스올이라고 불렀습니다. 죽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장소로 가는 곳이 음부 또는 지옥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그곳은 헬라어로 하데스 그리고 히브리어로는 스올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로운 자들이 가는 곳이 있는 반면에, 가인이나 에서와 같이 하나님을 믿지 않던 자들이 가는 곳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죽은 후에 간 곳에 대하여 설명하시면서 부자는 죽어 음부인 하데스로 가서 고통을 당했지만,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낙원으로 갔습니다. 구약 시대의 의인들은 죽어서 낙원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이 죽어 가는 곳을 헬라어로 하데스 라고 하는 곳으로 죄인들이 심판때까지 고통당하는 곳입니다. 이곳은 죄인들이 가서 고통당하다가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을 받아 게헨나라고 하는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후서는 타락한 천사들이 심판 때까지 어두운 구덩이라고 표현한 지옥에 던져졌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매.”(벧후 2:4). 타락한 천사들이 심판의 때 까지 갇혀 있는 곳이 타르타루스(tartarus)라고 하는 곳입니다. 타락한 천사들인 사탄과 마귀들은 영원한 심판인 게헨나 지옥에 떨어질 때 까지 지옥의 어두운 구덩이에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타락한 천사인 마귀들이 있는 곳에 가셔서 하신 일이 예수님의 승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셨음을 선포하시기 위하여 사탄이 갇혀 있는 음부에 가셔서 그 곳에서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무덤에 장사되셨지만, 그 분의 영은 음부의 아래로 내려가셔서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의인들이 거하는 낙원에 가셔서, 구약의 성도들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예수님과 함께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라고 한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믿음으로 살다가 죽은 후에 하나님을 믿지 않던 자들과는 다른 낙원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로서 인류의 죄를 지불하셔서 구속하실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하데스에 갇혀 있던 의인들을 자유케 하신 후에 하늘로 함께 올라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4:8-10)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 온 세상의 왕으로서 온 세상을 충만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특히 그 분의 교회를 충만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에서 이기심으로 마귀의 권세에 대하여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포하며 더욱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포하며 그 분이 주신 은사로 섬길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이 거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에게 자신들의 은사를 사용하도록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은사와 그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그 분의 교회가 강건하며 승리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3. 그리스도는 목사를 통하여 성도를 준비시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4:11).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에 주신 네 가지의 직분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4:11). 사도와 선지자는 교회의 기초를 놓는 사역을 감당했던 자들입니다.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로서 초대 교회의 기틀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사도들과 함께 초대 교회의 사역에 참여했던 자들입니다. 그 당시에는 아직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며 교회의 기초와 방향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 되면서 이러한 직분들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 이후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직분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직분 중에는 복음 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은사를 가진 직분은 영혼들을 구원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합니다. 미국에는 복음 전도자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미국 전역을 다니며 부흥회를 인도하며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사역을 감당합니다. 예를 들어 빌리 그래함 같은 분들은 복음 전도자로서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던 분입니다. 그리고 디 엘 무디도 복음 전도자로서 수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습니다.

 

복음 전도자 외의 다른 직분은 목사와 교사입니다. 목사와 교사는 같은 직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목사는 양을 돌보는 목자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벧전 5:2)라고 했습니다. 사도 행전은 목회자는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를 감독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20:28). 목사는 양무리를 인도하며 돌보는 자입니다. 그리고 목사는 교사로서 하나님의 맡기신 양무리를 말씀으로 먹이는 일을 감당하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부탁하신 일이 바로 양들을 먹이라는 것이었습니다. (21:15-17).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강조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목사로서 그는 복음을 전해야 하며, 목사로서 그는 양들을 돌보며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사로서 그는 양들을 영적인 양식으로 먹이는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목사가 성도들을 세우기 위하여 사용하는 도구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으로 가르치고 삶으로 본을 보여 성도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제자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4:12).

 

하나님께서 교회의 영적 지도자인 목사에게 주신 것은 성도들을 사역을 위하여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온전케 하는 것은 성도들을 구비하고 준비시킨다는 뜻입니다. 온전케 한다는 원어적인 뜻은 직무를 감당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즉 군인이 군복무를 하기 위하여 신병 교육대에서 훈련을 받아 군의 자대에 배치되는 것과 같습니다. 운동선수가 선수로서 필드에서 활동하기 위하여 코치로부터 훈련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같이 성도는 목사로부터 말씀과 사역의 훈련을 받아서 주님을 따르며 교회를 세우는 일꾼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목사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여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도록 훈련하는 것이고, 훈련받은 성도들이 주님의 사역을 위하여 준비되어 헌신할 때에 주님의 사역이 세워질 수 있습니다.

 

목사는 성도를 사역을 위해서 준비시킨 후에 봉사의 일을 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봉사의 일이란 사역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사역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일군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역을 하면서 지체들간의 불협화음을 일으키거나 자신의 의가 드러나 시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충분히 훈련되지 않으면 사역을 기쁨으로 시작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역에 동참하지 않고 방관자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맡기신 사역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여기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목사는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은 건물을 세우는 것과 같이 각 지체들이 사랑으로 연합하여 성전인 교회를 세워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세워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는 모두가 사역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의 영적인 제사장으로서 주님의 영광 아래서 주님을 섬기는 자녀들입니다.

 

즉 성경적인 교회는 목회자가 주님의 사람들을 사역을 위하여 훈련하여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이고, 각자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말씀으로 성도들이 훈련되어지고 헌신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원활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성도들은 교회의 사역에 참여하면서 그리스도로부터 영적인 힘을 공급받고 교회를 세우는 일군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사역자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저는 시골 교회에서 자라며 주님을 섬겼습니다. 시골 교회는 전도사님도 없이 그냥 학생들과 청년들에 의하여 대부분의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찬양대에 서야 했고, 주일학교를 가르치고 예배에서 찬양 인도를 하면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 당시에 섬겼던 학생들과 청년들이 대부분 열정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가 사역자로서 사역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도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목장 사역이나 은사별 사역들에 참여하면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참여도가 높을 때에 교회는 건강하게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역을 위해서는 목회자로부터 제자 훈련을 받아 같은 마음과 같은 믿음, 그리고 같은 비전을 품고 하나가 되어 주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4.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몸이 온전히 연합할 때에 성숙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일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4:12-14).

 

그리스도는 교회가 성숙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성숙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는 은혜를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간다는 것은 교회의 각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충만한 데 까지 이르러 자라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목표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은 성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숙하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분별력이 약하여 쉽게 속는 속성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는 낯선 사람이 찾아와 아이스크림이나 사탕으로 유혹하면 쉽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결코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영적으로 어린 사람의 특징은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한다고 했습니다. 궤술이란 사람이 사기를 하거나 기만하는 것입니다. 속임수나 간사한 유혹으로 사람들을 흔들리게 할 때에 성숙한 사람은 그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분별력을 갖고 승리하게 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4:15-16).

 

교회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는 것은 사랑과 진리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라는 의미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할 뿐 아니라 진리를 행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진리는 사랑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며 살아갈 때에 우리는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에게서 각 마디를 통하여 연합하여 온 몸이 서로 연결되어 성장하듯이, 우리도 각 지체들과 연합하는 삶을 통하여 교회가 사랑 안에서 스스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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