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에베소서 강해(15) -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라(엡 4:25-32).

비전의 사람 2023. 7. 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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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15) -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라(4:25-32).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4:30).

 

보통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령님을 단지 영적인 힘이나 신적인 영향력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성령님을 삼위 일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약하고 하나님과 예수님 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삶에서 성령님은 하나님으로서 인격적인 분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30절은 성령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4:30). 근심되게 하는 것의 의미는 아프게 하다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아파하시거나 슬퍼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근심하시기도 하시고 기뻐하시며 충만하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자녀가 삶에서 바르게 살며 행복하면 우리도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이나 자녀가 실패하거나 좌절하면 우리도 함께 슬퍼하거나 좌절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승리할 때에 기뻐하시며 충만하시지만, 우리가 영적으로 패배하고 어두운 길을 걸어가면 근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법하는 죄는 성령님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며 근심되게 합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님을 근심되게 하는 일을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고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가 승리하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속되는 그 날까지 성령님은 우리를 인치셔서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에스겔 36장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36:27)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진흙과 같은 우리의 육체에 오셔서 우리안에 거하시며 함께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녀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진리로 가르치시며 인도하십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6:13).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모든 진리를 가르치시며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가 어떠한 기도를 해야 할지를 가르치시는 분이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와같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고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근심되게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성령님을 근심되게 하는 일을 피하고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힘쓸 수가 있을까요? 오늘 우리는 에베소서 425절에서 32절 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을 근심되게 하는 일을 피하고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힘쓰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1. 거짓을 버리는 삶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4:25).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은 진실된 삶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4:25)고 했습니다. 골로새서는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3:9-10)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거짓말은 옛 사람에게 속한 삶의 방식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거짓과 기만이 가득합니다. 십계명에서 일곱 번째 계명이 거짓 증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만큼 사람들은 거짓에 노출되어 있고 서로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거짓말은 에덴 동산에서 사탄의 유혹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에 대하여 아담과 하와에게 거짓말을 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의심하게 함으로 죄를 범하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을 거짓의 아버지라고 정의하시며, 당시의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의 거짓을 책망하셨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자신들이 요셉을 미디안의 상인들에게 팔아 애굽의 노예가 되게 한 후에, 그들의 아버지인 야곱에게는 짐승이 요셉을 헤쳤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엘리사의 사환이었던 게하시가 나아만 장군에게 찾아가 거짓말로 귀한 의복을 얻었습니다. 신약에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을 속이고 교회에 거짓말을 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

 

교회의 지체들도 거짓말을 하여 여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진리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와 가정에서는 거짓을 위한 자리를 두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금하실가요? 그것은 바로 거짓은 하나님을 향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향한 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 지체가 된 성도안에서의 거짓은 그리스도의 몸을 헤쳐서 건강하게 활동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4:25)고 했습니다. 우리가 몸 안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성령을 근심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항상 참된 진실만을 말하기를 기뻐하시며 우리를 진실된 사람이 되도록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2. 분노를 버리는 삶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4:26-27).

 

분노에는 두 가지의 분노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분노와 부정적인 분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하여 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이 성전을 더럽히자 분노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닮아가는 자로서 때때로 분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분노는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로서 죄와 불의에 대한 분노여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노할 때는 사탄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아야 하며, 특히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그 분이 해를 넘어가면 사탄이 틈을 타서 우리의 영적인 삶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분노는 죄가 되게 하고, 분노로 인한 죄는 사탄이 틈을 타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 분노했다 할지라도, 그 분노를 마음에 오랫동안 품고 있다면 불의에 대한 분노가 자신의 마음에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그 분노로 인하여 사탄이 틈을 타서 우리의 마음에 미움과 분노가 가득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산상 수훈에서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고 경고하셨듯이,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하여 분노한 것이 도리어 미움이 되어 우리가 죄를 범하는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분노는 그 당일에 해결하여 마음에서 사라지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분노가 가득하거나, 교회 내에 분노가 가득한 것은 성령을 근심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근심하시는 것은 개인이나 교회에 하나님의 역사를 막는 방해 요소가 됩니다.

 

유명한 디엘 무디가 이러한 간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무디와 생키가 한 도시를 방문하여 부흥 집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무디 목사님이 열심히 복음을 전했지만 교회의 분위기가 냉랭하고 성령의 감동이 찾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때 무디 목사님이 아마도 이 곳에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예배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집회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예배를 떠났습니다. 이때 그는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의 찔림을 받게 됩니다. 그는 지난 육개월 동안 누군가와 관계에 문제가 있어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즉시 그 사람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며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는 무디 목사님에게 찾아와 눈물로 감사했습니다. “무디 목사님이 이 곳에 오셔서 말씀을 전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가 회개하고 난 후에 집회는 성령의 은혜로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분노를 자신과 교회를 위하여 잘 다스려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분노를 하되 죄를 짓지 말아야 하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가 분노를 극복할 때에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분노가 가득차게 되면, 그 다음에는 사탄이 찾아와 우리의 감정을 이용해서 죄를 짓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3. 도적질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4:28).

 

교회에서 성령을 근심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에베소서 428절은 도덕질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4:28).

 

오늘날 도덕질은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회 각처에서 뇌물을 받고 불의하게 판단하거나 공평하지 않게 일을 행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도적질이 큰 사회 문제가 되어서 큰 마트들이 문을 닫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미국의 오레곤 주에서는 월마트가 도덕질하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어서 매장을 폐쇄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월 그린이라는 중형 마트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매장에 들어오는 도둑들 때문에 온라인으로만 주문을 받도록 정책을 변경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일에는 참여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삶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정직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즉 세금과 관계된 일이나 노동자에게 주는 임금을 체불하거나, 장사하면서 속여서 파는 일들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엘론 머스크와 마크 주커버그와 격투기 경기장에서 싸울 뿐 아니라 법정 소송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인스타와 페이스북을 시작한 주커버그가 머스크가 인수한 트위터의 직원을 채용해서 기술을 빼내어 쓰레드라는 소셜 네트워크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엘론 머스크는 트위터에서 공개적으로 마크 주커버그가 자신이 44억 달러를 투자해서 얻은 앱을 통째로 복사해서 사용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격투기 경기자에서 만나서 싸우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할 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정직하게 행하여 도적질하는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합니다. 에베소서는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것을 도적질하여 자신의 필요를 채우지 말고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수고하여 얻은 수입으로 빈궁한 자를 구제하는 일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은 마케도나야 교회의 구제하는 믿음에 대하여 격려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전 8;1-5).

 

성령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려 선교와 구제에 힘을 쓰는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이 이와같은 믿음으로 헌신했습니다.

 

4. 더러운 말을 버려야 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4:29).

 

성령께서는 우리의 말이 순결하고 정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는 우리의 입에서 더러운 말이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4:29).

 

더러운 말은 그야 말로 썩고 더러운 말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말하는 음담 패설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비하하거나 비방하며 험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과 주위 사람에게 영적인 독물을 주입해서 영적으로 무감각하게 하게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식탁에 이러한 문구를 걸었다고 합니다. “현장에 없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이 식탁에 초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러운 말을 버려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도리어 덕을 세우는 말을 하며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거위는 백조가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격려하며 세우는 말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세워서 더 큰 자가 되게 하는 비결입니다. 엘리바스가 욥에 대하여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4:4)라고 했습니다. 욥은 의로운 자였기에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세웠고, 약한 자를 말로 격려하여 강하게 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더러운 말로 비난이나 비방을 하여 넘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격려하는 말로 덕을 세우고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골로새서는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4:6)고 했습니다. 골로새서는 우리의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소금은 부패를 막는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의 말은 항상 다른 사람의 감정과 마음을 배려해서 덕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잠언 12장은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12:18)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에 칼로 찌름 같이 상처를 줍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을 회복시키고 치유하게 하는 말을 하는 자를 성령께서는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4:30-32).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서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하여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를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삶에서 네 가지의 부류를 분석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실을 말하고, 분노를 버리고, 도적질하지 말고, 덕이 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행실이 어떠한지 진지하게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성령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결단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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