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사무엘상 강해(2) -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삼상 1:3-28)

비전의 사람 2023. 6. 28. 17:14
반응형

사무엘상 강해(2) -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삼상 1:3-28)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관여하시며 돌보시는가요? 이러한 질문은 종종 우리의 마음에 찾아오는 의문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한나도 동일한 의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아픔과 고통에 관심이 있으시나요?”

 

삶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나가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통하여 그 분의 선하신 뜻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오미와 룻도 극심한 괴로움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며 귀한 믿음의 사람으로 쓰임받았습니다. 한나도 큰 슬픔과 좌절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나아간 믿음은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상에서 우리는 엘가나를 만나게 됩니다. 그의 첫 아내는 한나로서 자녀가 없었고, 브닌나는 둘째 아내로서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장은 엘가나 가정에서 일어난 어려움을 통하여 가정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문제 까지도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엘가나의 신실한 믿음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삼상 1:3).

 

실로는 엘가나의 고향인 라마로부터 북쪽으로 약 20 km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실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 성막을 세운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 회막을 세웠으니 그 땅이 이미 그들의 앞에 돌아와 복종하였음이나.”(18:1). 하나님의 성막이 실로에 있었기에, 그곳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소중한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실로에서 가나안 땅의 유업을 할당받기도 했습니다(18:1-10).

 

그리고 실로에서는 하나님의 성막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당시에 엘리 제사장이 성막을 섬기고 있었고, 그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그곳에 있던 때였습니다.

 

엘가나는 해마다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실로에 가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제물을 드리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신실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사기 시대에 많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영적으로 어두운 시기에 엘가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을 지키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엘가나는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 분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감당해야 할 책임을 다하는 자였습니다.

 

엘가나는 하나님을 잘 섬길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에게도 자상하고 신실하게 대했습니다.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 아내 브닌나와 그 모든 자녀에게 주고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닌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삼상 1:4-5). 비록 엘가나는 한나를 브닌나보다 더욱 사랑했지만, 그는 브닌나를 홀대하지 안았고 그와 그녀의 자녀들의 필요까지도 챙겨주었습니다. 엘가나가 한나에게 갑절의 제물의 분깃을 준 이유는 한나를 더욱 사랑했기 때문이며, 그녀에게 자녀가 없는 것에 대하여 위로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엘가나는 한나에게 찾아온 고통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자녀를 주지 않았기에 엘가나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며 한나를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엘가나는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그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나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삶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섭리를 인정한다면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원망이나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잘 이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관여하시며 주권적인 섭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의 눈에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게 된다면, 우리가 그 어려움을 대처하는 일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될 것입니다.

 

2. 브닌나와 그녀의 핍박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심으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삼상 1:6).

 

사람들은 동일한 상황을 각자의 상황이나 주관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엘가나는 하나님께서 한나를 잉태치 못하게 하신 이유로 인하여 더욱 사랑의 마음으로 한나를 대했습니다. 그러나 브닌나는 하나님께서 한나를 잉태치 못하게 하시는 것을 보고 한나의 대적이 되어 그녀를 격동시키고 번민하게 했습니다.

 

브닌나는 하나님을 경배하며 제사드리러 가는 한나를 격동하며 조롱했던 것입니다. 브닌나는 한나를 향하여 하나님이 당신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데 감사할 제목이 무엇이 있느냐고 조롱하며 격노케 했습니다. 브닌나는 한나를 경쟁자로 상대하며 시기와 질투의 마음으로 한나에게 고통을 주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엘가나가 한나에게 제물의 값절의 분깃을 주며 사랑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삼상 1:7). 그러자, 한나는 브닌나를 인하여 슬피 울며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자녀가 없는 것을 인하여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한나는 브닌나로 인하여 그 슬픔은 배가 되었습니다. 이때 엘가나는 울며 음식을 먹지 않는 한나를 보고, 그녀를 다음의 말로 위로했습니다.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삼상 1:8). 엘가나는 슬피우는 한나를 바라보며 자신이 한나에게 열 아들보다 나은 남편이라는 사실을 말하며 위로를 했습니다.

 

브닌나는 한나의 어려운 상황을 보고 도리어 한나의 약점을 가지고 핍박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허물은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며 무너트리려 하는 것입니다. 특히 상대가 경재자라는 인식이 있을 때에 그러한 자세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무너트리는 자가 아니라 세우는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한나의 간절한 기도

 

한나는 절망의 순간에 주저앉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로 결단합니다.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그 의자에 앉았더라.”(삼상 1:9). 한나는 엘가나의 위로에 힘을 얻어 실로에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일어났습니다.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있었지만, 한나는 일어나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성경은 한나는 일어났지만,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다고 하면서 두 사람을 비교했습니다. 제사장 엘리는 평안한 가운데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한나는 극심한 고통과 눈물의 아픔을 가지고 일어나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그녀의 기도는 이스라엘 나라의 영적인 기류를 바꾸게 되는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에 주저않는 자가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일어나 해결책을 찾는 자가 있습니다. 우리의 해결책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나는 자신에게 자녀가 없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한나가 잉태치 못하게 하셨다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한나는 운명론에 빠져 절망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한나의 믿음은 그러한 상황에 모든 환경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절망이 하나님의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했던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은 우리에게 선을 우리시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분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을 이루시기 위하여 허락하신 축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8:39).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환란이나 고난이 찾아오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나가 행한 믿음이었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의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1).

 

한나는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생각하사 아들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고통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긍휼을 베푸셔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신 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한나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지 마시고 생각하셔서 아들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아들을 주시면 그를 하나님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는 것은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한나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나실인으로 드려 평생에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서원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나실인은 일정기간 동안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나실인으로 구별하여 자신을 드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들은 평생을 나실인으로 섬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나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을 때에 엘리는 한나가 포도주에 취한 줄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한나가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입술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엘리는 한나가 드리는 기도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입술만을 보고 그렇게 오해를 했습니다. 그러자 엘리 제사장이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엘 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삼상 1:14).

 

한나는 엘리의 책망을 듣고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 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삼상 1:15-16). 한나는 엘리 제사장에게 자신이 술에 취하여 술주정하는 악한 여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슬픔 심정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한나의 기도와 형편을 들은 후에 한나를 축복했습니다.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삼상 1:17). 엘리는 제사장으로서 한나를 축복하며 평안히 가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한나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삼상 1;18). 한나는 엘리 제사장의 축복을 받고 난 후에 돌아가서는 다시는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모든 짐을 기도로 하나님께 맡긴 것이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짐을 맡기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짐을 주님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7). 한나는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것을 믿고 마음에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께 경배하고 돌아가서 자신의 집인 라마에 이르렀습니다.

 

4. 하나님의 응답

 

“...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삼상 1:19).

 

하나님께서 한나를 생각하신 것은 한나를 기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절망을 기억하셨고 한나의 믿음의 기도를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절망 가운데서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하는 그 모습을 기억하셔서 은혜를 베푸시기를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응답의 기적이 한나에게 찾아왔습니다.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삼상 1:20). 하나님께서 아들을 한나에게 주심으로 한나의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한나의 아들인 사무엘을 통하여 큰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해마다 드리는 제사를 위하여 실로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 엘가나와 그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그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삼상 2:21). 엘가나와 그 온 집이 하나님의 집이 있는 실로에 가서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가고자 했습니다. 이때 한나는 올라가지 않고 남편에게 아이가 젖을 떼면 그를 하나님의 전에 영영히 있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한나에게 한나의 소견에 선한대로 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엘가나는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한나의 서원을 존중하였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뜻하신 역사를 한나와 사무엘을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2-3년 사무엘이 젖을 떼는 기간을 기다리다고 젖을 뗀 후에 사무엘과 함께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실로에 갔습니다. 한나는 실로에 갈 때에 수소 셋 마리아 가루 한 에바 그리고 포도주 한 가죽부대의 예물을 가지고 갔습니다. 한나는 엘리 제사장에게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하던 여자인데,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셨음을 간증했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자신의 아들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삼상 2:28).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엘가나는 믿음으로 가정을 세우는 경건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는 해마다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실로에 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갖도록 온 가족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 이르렀습니다.

 

엘가나는 믿음으로 가정을 세울 뿐만 아니라, 그는 사랑으로 가족을 돌아보았습니다. 특히 한나가 마음에 고통이 있는 것을 알고 자신이 열 아들보다 나은 남편이라고 하면서 아내를 위로할 수 있는 자였습니다. 그리고 한나가 하나님께 아들을 드리겠다고 서원한 후에 그 아들을 드릴 때에 한나의 서원을 막지 않고 그 말대로 하도록 허용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갔던 엘가나였습니다.

 

둘째, 한나는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에 좌절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실로에 가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절망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시련을 극복하는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한 후에 모든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자녀로 인하여 근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자, 그녀는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기억하며 그 서원을 지켰습니다.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일평생 섬기도록 나실인으로 서원하여 드렸습니다.

 

셋째,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배웠습니다.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는 삶을 살았기에, 그는 평생에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엘가나와 한나와 같이 자녀들이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안에서 자라가도록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교육은 그들이 성장하며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하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