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사무엘상 강해(4) -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삼상 2:11-26)

비전의 사람 2023. 7. 1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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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4) -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삼상 2:11-26)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삼상 1:12-26).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1:17). 하나님을 아는 자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날마다 감사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아는 것은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는 만큼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만큼 믿음 생활에서 진실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홉니와 비느하스, 그리고 사무엘의 삶을 통하여 그들의 영적인 삶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찾고자 합니다.

 

사무엘상 1장에서 우리는 엘가나와 한나의 가정에 사무엘이 출생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나의 서원대로 실로에 가서 어릴 때부터 엘리 제사장의 수련생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무엘상 1장은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삼상 1;28)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무엘상 21-10절의 한나의 기도가 마친 후에 사무엘상 211절은 다시 사무엘상 1장의 이야기를 연결하며 말씀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엘리의 제사장에게 보내어진 후에 일어난 사건들인 것입니다.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삼상 2:11).

 

엘가나는 사무엘을 제사장 엘리에게 맡기고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배우며 제사장으로 섬기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1.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삼상 2:12).

 

사무엘상 1장에서 성경은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을 잠시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삼상 1:3). 사무엘상은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제 2장에서 엘리 제사장의 아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때 성경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삼상 2:12).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에, 그들의 행실은 악했고 하나님 보시기에 불량자였습니다. 사무엘상은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삼상 2:12)라고 했습니다. 불량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벨리알로서 악하거나 반역과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이 단어를 공중의 권세잡은 자인 사탄을 지칭할 때에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 ”(고후 6:15). 구약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곳은 사사기 19장과 20장에서 레위 사람의 첩을 강간하고 살해한 무리들을 비류라고 했는데, 이 단어가 바로 벨리알 즉 악한자, 불량자라는 뜻입니다. 이와같이 악한 자들을 지칭하는 단어를 엘리의 아들들에게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아버지를 이어 제사장으로 성막에서 섬기고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로서 불량자들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바로가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노라고 한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으로서 그들의 행동을 달아보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행실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큰 죄들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제사장의 나라이며 거룩한 나라였습니다. “너희는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19;6). 실로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막이 세워져 있었고, 그 곳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의 아들들은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의 임무는 “...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10:10-11)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거룩과 부정한 것을 분별하여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불량자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일을 하는 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사무엘상은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범하는 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곧 아무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여 실로에서 무릇 그곳에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뿐 아니라.“(삼상 2:13-14).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수고한 대가로 예배자들이 드린 고기의 일부를 취하여 먹게 하셨습니다. (7:28-38, 18:1-8). 하나님께서는 화목제물을 드린 후에 제사장들이 가슴과 우편 뒷다리를 취하여 먹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드린 희생 제물을 훔쳐가서 먹는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종을 보내어 하나님께 드린 고기를 삶고 있을 때에 갈고리를 찔러 걸려 나오는 것을 함부로 취하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전에 그 고기를 취하여 자신들이 취하기도 했습니다.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치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삼상 2:15).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습관적으로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종을 보내어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미리 고기를 억지로 빼앗아 갔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대로 취하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삼상 2:16). 이들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였기에 그들의 죄는 하나님 앞에 무척이나 컸습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 2:17).

 

사무엘상은 사무엘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웠고 하나님을 경배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통하여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을 보여야 할 제사장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 것입니다.

 

2. 사무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갔습니다.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삼상 2:18).

 

사무엘은 어렸을 때부터 세마포 에봇을 입고 하나님 앞에서 섬겼습니다. 세마포 에봇은 제사장들이 입는 옷이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남용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고 있을 때에, 사무엘은 자신의 부르심을 따라 신신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처음에는 엘리 제사장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사무엘은 엘리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제사장의 의복인 에봇을 입고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영적인 리더 앞에서 섬기며 성장합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욱 의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성숙하면서 우리는 사람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분앞에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한나는 해마다 남편과 함께 매년제를 드리러 실로에 갈 때 사무엘을 위하여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습니다. 한나는 해마다 아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를 위하여 새 옷을 지어 입혔던 것입니다. 그들이 실로에 가자 엘리 제사장이 그들을 보며 다음과 같이 축복했습니다.

 

엘 리가 엘가나와 그 아내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드린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그 집으로 돌아가매.”(삼상 2:20).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기도하여 얻은 아들을 대신하여 엘가나와 한나에게 축복하셔서 후사를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셔서 그들에게 자녀들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사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삼상 2:21).

 

하나님께서는 아들 사무엘을 드린 엘가나와 한나에게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섯의 자녀들을 한나를 통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 제사장의 기도를 통하여 한나를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받을 자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엘리의 기도가 축복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축복의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아무리 그들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를 축복해도, 그들은 도리어 저주를 자청하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서약을 지키는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엘리 제사장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 가정에 복을 더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실한 믿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자라갔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라가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종으로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 상은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에 대하여 엘리 제사장의 대응이 부족한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엘 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삼상 2:22).

 

엘리는 비록 매우 늙었지만, 아들들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하는 죄를 범했을 뿐 아니라, 그는 성막의 문에서 여인들과 동침하는 죄를 범하기까지 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성적인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안 엘리 제사장은 그의 자녀들에게 그러한 일을 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그의 충고는 아들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기에는 너무나 약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들들이 엘리 제사장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삼상 2:23-25).

 

엘리 제사장은 그들의 죄에 대하여 아들들을 훈계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그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고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엘리 제사장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악한 죄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던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엘리 제사장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하였고 성전에서 다른 여인과 성적인 죄를 범하는 악행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엘리 제사장은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에 대하여 제사장으로서의 직위를 파문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로서 마음이 아프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우선이었기에,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아들이라도 제사장 직에서 물러나게 하여 하나님의 분노를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민수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알브올에서 바알을 숭배하고 이방여인과 성적인 죄를 범하자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기 창을 들고 일어나 시므리와 미디안 여인인 고스비를 죽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염병을 멈추시고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이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25:11).

 

비느하스의 거룩한 분노는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정이었고,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의 거룩한 분노와 열정을 축복하셨습니다. 우리도 죄에 대하여는 단호하게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홉니와 비느하스와 같이 유사한 죄를 범하는 자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요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10:29). 이러한 죄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10:2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욕되게 하는 행동에 대하여 용서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실 것을 경고한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아들들에게 경고했지만, 아들들은 한 노인의 잔소리로 듣고 무시했습니다. ”...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삼상 2:25). 그들은 회개할 수 없을 정도로 죄에 너무 빠져 있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아들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더라면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은 왜 그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를 묻고 가벼운 충고를 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가고 있었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삼상 2:26). 홉니와 비느하스는 불량자로서 알려지고 있었지만, 사무엘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서 은총을 받는 자로서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이제 영적으로 홀로 서기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자로 자라가고 있었습니다.

 

사무엘과 홉니와 비느하스의 본질적인 차이는 무엇이었나요? 사무엘과 홉니와 비느하스는 모두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막에서 자랐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죄를 범한 반면에,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며 하나님을 알아갔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장하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을 받는 자로 자라갔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이 되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배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홉니와 비느하스와 같이 불량한 자의 삶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을 받는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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