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에베소서 강해(16) -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엡 5:1-2)

비전의 사람 2023. 7. 1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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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18) -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5:1-7)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5:1-2).

 

에베소서 51절에서 7절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소중한 교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랑으로 행하는 것보다 더욱 아름다운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5:1-2).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와 단지 종교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차이는 참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느냐 아니면 사탄이 타락시킨 음행이나 더러운 일에 참여하느냐인 것입니다. 세상은 음행과 같이 부패한 사랑을 참된 사랑으로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희생의 가치가 있는 진실된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는 사랑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품성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어 구원받은 자는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에베소서 5장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로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것은 미믹한다는 말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카피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배워서 삶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란 하나님을 본받는 것 또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48절에서는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5:48)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는 115절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은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것 뿐 아니라 그 분의 거룩을 닮아가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자로서 사랑으로 행하는 삶에 대하여 나누고, 다음 주에는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가는 자로서 순결한 삶에 대하여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1. 우리는 용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4:32).

 

구원이란 전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탄의 권세와 능력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2절에서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2:2)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우리는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인 사탄을 따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은혜를 구원받아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우리는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422절에서 24절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4:22-24). 이것이 에베소서에서 가르치는 주제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기에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 사람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었기에 우리는 옛 사람의 옷인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대신에 우리는 서로를 향하여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를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4:32). 사랑은 서로를 향하여 친절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서로를 향하여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긍휼의 마음은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보여주셨던 마음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서로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가장 큰 사랑은 바로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에베소서 41절에서 우리는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하면서,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은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서로 용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4:1-2). 우리가 사랑으로 행하는 것은 서로를 용납하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즉 서로를 용서하고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것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자로 성숙되고 있다면, 우리의 사랑은 용서하는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롭게 태어났기에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신 것처럼, 우리는 교회와 지체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과 같이 전능한 능력이나,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는 것과 같은 전지한 능력을 닮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시는 무소부조하신 분이지만,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속에 살아가기에 그러한 초자연적인 하나님을 본받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으로서 사랑과 거룩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기초는 용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은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도하였고,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 우리의 죄에 대한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라고 칭함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요한일서 212절은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요일 2:12)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사랑입니다. 에베소서 17절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1:7)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전에는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며 죄악 가운데 행했던 우리였습니다. 이와같은 우리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에게 혐의가 있는 자를 이와같이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용서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는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 일서 47-8절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하나님을 아는 자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8절은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라고 했습니다. 열심히는 근육을 최대한으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서로를 최대한 사랑할 수 있는 한계까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만큼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마음이 표현되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 것입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이며, 죄를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잠언 1012절은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10:12)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무시를 당할 때도 있고, 비방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우리는 복수를 하거나 분노를 표현하거나 적대감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431절은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려야 합니다. 대신에 우리는 인자와 용서와 사랑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는 서로를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2. 우리는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5:1-2).

 

에베소서는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5:1-2). 사랑 가운데서 행한다는 의미는 두 가지로 볼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본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을 본받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3절에서 주님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15:13). 가장 위대한 사랑은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하신 사랑이 가장 위대한 사랑으로서 자신의 목숨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내려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보내신 그 사랑으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나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9-10).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서로를 용서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17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3:17)라고 했습니다.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가 굳어지는 것이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종이 되어 서로를 섬기는 희생적인 사랑에 대하여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만찬을 위해서 한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이때 아무도 주님이나 제자들의 발을 씻으려는 자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그때까지 주님이 나라를 세우시면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했기에, 누가 큰 자인가라는 논쟁을 하기도 하며 희생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기적이었고 자기 중심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식사를 하기 전에 손과 발을 씻는 것은 하나의 풍속이었습니다. 그러나 발을 씻기는 것은 종의 일이었기에 아무도 일어나 서로의 발을 씻어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일어나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수건으로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13:14-15). 주님께서는 종의 모습으로 스스로 낮아져서 발을 씻기는 희생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제자들이 자신을 희생하여 서로 발을 씻기는 섬김의 삶을 살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새 계명을 주시면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4-35). 주님께서는 서로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우리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제자의 표식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용서할 뿐 아니라, 서로를 위하여 희생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은 자신을 하나님의 어린양인 희생제물로 드리는 희생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인 우리의 자리에서 대신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향기로운 향은 레위기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레위기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번제와 소제, 그리고 화목제와 속죄제 및 속건제입니다. 이때 제사를 드리는 제물로는 황소나 염소, 또는 양을 사용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제물을 가져오면 제사장들이 그 제물을 번제단위에 올려 불에 태워야 했습니다. 이때 불에 타서 올라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향기로운 냄새라고 하셨습니다. 번제는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헌신을 의미합니다. 번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과 헌신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향기로운 냄새였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적인 희생을 통하여 완전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성품을 볼수 있습니다. 고운 가루는 흠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신 성품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 보시기에 향기로운 제물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그 분은 죄가 없으시고 흠이 없으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을 희생하신 분이십니다. 베드로전서는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벧전 3:18)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의인이지만 불의한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다가 고난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킴으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사역의 현장에서 불의한 일로 인하여 애매하게 오해를 받거나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화목 제물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평을 위하여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화평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하여는 분노하시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화목제물을 보시며 진노를 누그러트리시고 죄인과 화목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화평이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번제와 소제, 그리고 화목 제물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였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과 온전하신 성품, 그리고 그 분의 희생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위대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서로를 용서하며 서로를 위하여 희생하는 삶은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희생하신 그 사랑을 본받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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