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에베소서 강해(17) - 성의 순결을 지켜라(엡 5:3-7)

비전의 사람 2023. 8. 12. 21:16

에베소서 강해(17) - 성의 순결을 지켜라(5:3-7)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5:3).

 

우리는 에베소서 말씀을 강해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고자 합니다. 에베소서 5장은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자 되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5:1-2).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적인 출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말씀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고 하나님의 거룩을 본받는 것입니다. 지난 번에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삶은 우리가 사랑가운데서 거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삶은 우리가 가장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갈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처를 마련하셔서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3:16)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안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가요?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5:2).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는 용서의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처럼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용서를 통하여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새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4:24)는 말씀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속 사람에는 성령이 거하시기에, 그 분의 영향력을 받는 우리는 의를 따르며 진리의 거룩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희생적이며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입니다. 즉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은 세상과 구별된 진실된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거룩한 사랑을 타락시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구하는 것처럼, 세상도 사랑 가운데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진실되고 거룩한 사랑을 감정적인 경험으로 간주하거나 더 나아가서 쾌락적인 것을 경험하는 것으로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약안에서의 사랑입니다. 즉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부부로 언약을 맺었다면 우리는 서로를 향한 영원토록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이끌리면 배우자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고 성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이것은 사탄이 세상에서 가정을 무너트리고 삶을 파괴하려는 덫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1. 성적인 죄는 삶을 무너트리는 치명적인 죄입니다.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찌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7:25-27).

 

잠언서는 지혜의 책입니다. 잠언서에서는 음란의 죄에 빠지는 것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음녀의 입술을 탐하는 자에 대하여 처음에는 꿀이나 기름같이 유혹을 하지만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롭게 되어, 그 걸음이 죽음으로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로서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한다고 했습니다(6:32). 그리고 잠언서 7장에서는 음녀의 유혹에 빠지는 자는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적인 죄는 삶을 무너트리는 치명적인 죄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설교가인 폴 워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죄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죄는 성적인 죄라고 했습니다. 성적인 죄는 다른 죄와는 구별되는 치명적인 죄라고 했습니다.”

 

불순한 성적인 행동은 죄가 되며,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적인 죄를 범한 결과는 성경에서도 치명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민수기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과 모압 여인과 음행한 결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염병으로 이만 삼천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사사기에는 기브아 사람들이 레위 사람의 첩을 강간하고 죽인 대가로 베냐민 지파가 거의 전멸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그들이 범한 성적인 죄가 관영하여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성적인 범죄로 인하여 그의 아들이 죽음을 당하고, 그 후에 다윗과 이스라엘에 큰 재앙을 겪게 됩니다.

 

세상은 참된 사랑을 갈망하지만 그 사랑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의 본질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왜곡된 사랑을 찾기 위하여 포르노를 추구하거나 왜곡된 성생활로 자신의 삶을 파괴하거나 성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시스템은 인터넷에 포르노 사이트를 구축하여 중독되게 합니다. 그리고 포로노에 중독된 사람이 성적인 중독에 빠져 쾌락을 추구합니다. 그러다가 더 깊은 쾌락을 위하여 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거나 마약의 쾌락에 빠져 인생 자체를 무너지게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랑을 변질시켜 타락한 사랑의 모조품으로 대체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사탄이 변질시킨 음행과 더러운 것은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음행은 헬라어로 포르네이에서 온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성적인 죄를 의미합니다. 결혼하여 부부가 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떠난 어떠한 성적인 관계는 모두가 음란의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중에는 결혼 전에 맺는 성적인 관계도 음란의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성애의 죄에 빠지는 것도 타락한 성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동성애에 대한 관용적인 정책을 넘어 적극 지지하는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오염된 사랑을 반대하면 죄가 되는 삐뚤어진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문화는 어느 시대보다 성에 대하여 개방적이고 집착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 모두에게 성은 거룩하기에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성에 대하여 정절이라는 신념으로 자신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대는 성에 대한 개념이 오픈되어 자신의 경험을 tv나 미디어에 노출하거나, 자신의 성적인 이미지를 인스타나 미디어에 노출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고 있습니다.

 

성적 타락을 조장하고 유발하는 가장 유력한 도구는 인터넷입니다. 인터넷에 개설된 음란 사이트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1초마다 266개의 음란물 사이트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포르노 관련 웹사이트가 37200만 페이지라고 합니다. 음란물은 개인의 성적 쾌락의 도구를 넘어 기업화되었기 때문에, 법이나 국가 권력에 의해 제재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렸습니다.

 

미국이 2006년 한 해 동안 포르노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208400만 달러(2조원)이고, 세계적으로는 거래 금액이 200억 달러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2020년 최근 통계에 의하면 소위 성 산업을 통해서 벌어들이는 금액이 세계적으로 연간 200조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성적인 죄로 인한 결과는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는 남녀가 아기를 임신하여 사생아를 낳는 비율이 놓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하여 낙태를 하여 뱃속의 아기를 살인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성적인 타락은 동성애라는 수치스러운 결과를 가져오고 있고, 이 시대는 성전환 수술을 통하여 성을 바꾸는 비극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린아이의 성을 바꾸는 수술이 서구권에서는 하나의 트렌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적인 탐욕으로 서로를 향하여 부끄러운 일을 하는 타락한 문화가 유행처럼 번지더라도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기준은 명확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성적으로 순결한 삶을 살아가도록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성적인 순결을 지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종종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성적인 죄에 빠져서 타락의 길로 들어서곤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성적인 죄에 참여하지 않기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인들은 음행을 멀리해야 합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5:3-4).

 

에베소 지역은 여신 아데미를 숭배하는 도시였습니다. 아데미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여길 정도로 큰 신전이었고, 그 신전에는 가슴이 여러개가 있는 풍요의 여신인 아데미를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 도시도 고린도와 같이 여사제들이 창녀 노릇을 하며 신전 의식에 성적인 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한다는 명목하에 음란한 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도시를 배경으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하여 성적으로 순결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은 성적인 것과 연관된 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탐욕은 다른 사람의 육체를 탐하는 성적인 욕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적인 것과 관련된 더러운 것은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과는 다르게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거룩하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성적인 윤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의 어느 곳보다 높은 성적인 윤리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5:27-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행하는 음란 이전에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으로도 이미 간음하였다고 간주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이며 하나님의 성전이기에 더욱 성적인 죄에 가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로서 불순종하는 자들, 특히 성적인 죄를 범하는 자에게 임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618절은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자신의 몸을 거룩하게 지킬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8-20). 그리스도인이 음행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자신의 몸에 죄를 범하기에 성전을 더럽히는 것과 같은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 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동시에 우리에게는 성전을 거룩하게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성전을 더럽히는 것 중의 가장 큰 죄는 음란의 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한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4절은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13:4)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입니다.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에 성은 아무데서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은 오직 합법적인 부부의 관계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이라는 울타리에서 사용하는 성을 통하여 즐거움을 얻게 하셨고 자녀를 낳아 다음 세대를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의 부부 관계를 떠난 어떠한 성적인 행위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거룩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살전 4:3-5). 아내를 거룩함으로 취하고 이방인과 같이 음란을 좇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 2:11-12). 우리는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육체의 정욕이란 성적인 것을 탐하는 욕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을 지켜 거룩함에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음행과 관련된 어떠한 언어도 절제해야 합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5:3-4). 누추함하고 어리석은 말이나 다른 사람을 희롱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우리의 말은 감사가 넘치는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거룩을 지키기 위해서는 누추함이나 어리석은 말 그리고 희롱의 말을 하지 말고 도리어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입술의 말이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세상은 음담패설을 하며 성에 대하여 함부로 조롱하거나 비웃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말을 해야 하며 더 나아가 감사하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음행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5:5-6).

 

사도 바울은 성적인 죄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5:5-6).

 

사도 바울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도 이와같이 언급했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유혹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고린도전서에서도 음린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거나 남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급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음란하고 동성애의 죄를 범하며 성적으로 타락한 삶을 살아가며 우상을 숭배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어두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타락한 삶을 살아가는 자는 아직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한 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적인 타락에 대하여 심판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성적인 타락의 결과는 마약의 중독이나 폭력과 살인으로 이어져 사회가 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피조물인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인 순결을 파괴한 댓가는 큰 하나님의 심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로마서는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1:27)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신을 숭배하며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는 자를 범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염병으로 이만 사천명이 죽는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성에서 일어나는 음행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고 그 성을 멸하셨습니다. 우리는 음행의 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무엘상은 홉니와 비느하스가 성막에서 수종들던 여인들과 음행한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고, 그 결과로 한 날에 두 사람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죽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 가운데 그 전에는 이러한 삶을 살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후에는 성령 안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되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기에, 우리는 세상의 더러운 것에서 벗어나 깨끗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위에는 타락한 문화와 가치관이 주류가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향한 주님의 명령은 그들의 일에 동참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5:7). 우리는 세상의 죄에 동참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이 이러한 성적인 죄에 참여하고 있다면 말씀으로 책망하여 돌아오게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사랑으로 행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