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사무엘상(8) - 이가봇(삼상 4:12-22).

비전의 사람 2023. 9. 20. 14:54

사무엘상(8) - 이가봇(삼상 4:12-22).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삼상 4:22).

 

사무엘 4장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블레셋에게서 두 번이나 패배합니다. 특히 두 번째 전투에서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에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패배함으로 그 충격이 더 컸습니다. 전쟁에서 하나님의 언약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이 패배한 이유는 블레셋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수 있을만큼 충분히 강하신 분이셨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자손 조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심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사람을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신들을 구원할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철저하게 무너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412-22절은 전쟁에서 패배한 소식이 실로의 엘리와 비느하스의 아내에게 전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엘리 제사장이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에게서 패배하고 자신의 두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며, 두 번째는 비느하스의 아내가 해산의 기한이 가까이 왔을 때에 언약궤가 빼앗기고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모습입니다.

 

1. 실로와 엘리의 슬픔 (삼상 4:12-18).

 

전쟁에서 패배한 날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에서 달려서 도망하여 실로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패배한 슬픔으로 인하여 옷을 찢고 머리에 티끌을 무릎썼습니다. 그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패배를 직감했을 것입니다. 그의 얼굴은 기쁨 보다는 절망이 가득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 베냐민 사람이 전쟁에서 빠져나와 실로에 이르렀을 때에 엘리는 길 곁 자기 의자에 앉아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를 때는 엘 리가 길 곁 자기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 마음이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에 들어오며 고하매 온 성이 부르짖는지라.”(삼상 4:13).

 

엘 리가 처음 등장할 때는 엘리 제사장으로 소개를 했습니다. 그는 성전의 문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엘리는 더 이상 제사장이 아니었고 그는 성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엘리는 늙었고 그의 시련도 이미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엘리는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떨고 있었습니다.

 

왜 엘리는 하나님의 궤로 인하여 떨고 있었을까요?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궤가 제사장인 홉니와 비느하스와 함께 전쟁터에 오자 환호했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로 인하여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하나님의 언약궤로 인하여 떨고 있었습니다. 왜 엘리는 떨고 있었을까요? 언약궤는 홉니와 비느하스에 의하여 블레셋과 전쟁하는 이스라엘 진에 옮겨졌던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거룩한 성물이었습니다. 엘 리가 떨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삼상 2:34). 홉니는 홉니와 비느하스기 한날에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무엘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삼상 3:12-13). 마침 전쟁에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를 메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엘리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두 아들을 죽이시는 날이 바로 그날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베냐민 사람은 이스라엘이 패배한 소식을 실로에 거주하는 백성들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러자 실로에 거하는 사람들이 크게 부르짖으며 슬퍼했습니다. 엘리도 그 부르지는 소리를 들은 후에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 이 훤화하는 소리는 어찜이뇨...” 그러자 베냐민 사람이 찾아와 그 엘리에게 고했습니다. 이때 엘리의 나이는 구십 팔세였고 그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엘리에게 고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 리가 가로되 내 아들아 일이 어찌 되었느냐.”(삼상 4:16).

 

베냐민 사람은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다고 했습니다. 엘 리가 전쟁의 상황이 어찌되었는지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육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삼상 4:17).

 

그 사람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육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은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 자손 삼만이 죽임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었고 하나님의 언약궤는 빼앗겼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엘리는 두 아들이 죽고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자 의자에서 자빠지며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 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사십년이었더라.”(삼상 4:18). 엘리는 사사로 이스라엘을 사십년가 다스렸다고 했습니다. 엘리는 제사장이었고 사사로 이스라엘을 다스렸지만, 그가 다스리는 기간에 이스라엘에는 영적인 회복이 없었고 도리어 하나님의 언약궤가 블레셋에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2. 비느하스 아내의 절망 (삼상 4:19-22).

 

전쟁에 대한 소식이 전해질 즈음에 비느하스의 아내가 잉태하여 해산한 날이 가까웠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고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자 갑자기 몸이 아파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잉태하여 산기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 빼앗긴 것과 그 시부와 남편의 죽은 소문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심상 4:19). 그녀가 들은 소식은 더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그의 남편은 죽었고 또한 시부인 엘리까지도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이러한 소식을 듣고 충격으로 해산을 하며 새로운 생명을 낳았지만 그녀도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죽어갈 때에 곁에 섰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지도 아니하며 관념치도 아니하고.”(삼상 4:20).

 

아들을 낳았다는 말에도 그녀는 대답하거나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받은 충격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그녀는 이스라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고 했습니다.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삼상 4:21-22).

 

이가봇은 영광이 어디 있느냐?’라는 의미로서 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라는 뜻입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다라는 말로 자신의 슬픔을 표현했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내는 해산하면서 새로 태어나는 아들에 대한 기쁨보다 현재 일어나는 상황으로 인하여 슬퍼하며 죽어갔습니다. 그녀가 이가봇이라고 한 이유는 제사장들이었던 남편과 시아버지가 죽임을 당하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기 때문이었습니다.

 

3. 영광이 어디 있느냐?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삼상 4:21).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이후부터 그 분의 영광을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막에 구름으로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영광 아래서 보호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예배하러 성막에 이르러서는 언약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평안과 안식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가운데 떠났다는 것이 언약궤를 빼앗김으로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비느하스의 아내는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어디 있느냐? 라고 했습니다.

 

사무엘 4장의 사건은 앞으로 일어날 이스라엘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앞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우상을 숭배하다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하여 이방에 끌려갈 것이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하여 포로로 끌려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바벨론 군대에 의하여 불타고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하나님의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영광이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은 어디에 있는가요? 하나님의 영광은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며 교회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 분의 영광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 분이 피로사신 생명의 교회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에 그 분의 빛이 더욱 비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우리의 기쁨은 하나님의 영광아래서 그 분의 임재와 영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안에 밝게 비추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가봇의 슬픈 탄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아래서 날마다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