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에베소서 강해(19) -지혜롭게 행하는 삶의 원리(엡 5:15-17)

비전의 사람 2023. 8. 26.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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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19) -지혜롭게 행하는 삶의 원리(5:15-17)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5:15-16).

 

에베소서 5장은 우리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지혜 있는 자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지혜롭지 않고, 어리석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사람을 지혜롭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식은 축적되어 가지만 점점 어리석게 되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사람들의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왜 사람들은 지식과 기술은 발전하지만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는가요? 그 이유는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1.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입니다.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28:28).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어리석은 자로 태어납니다. 잠언은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22:15)라고 했습니다. 즉 사람은 어릴 때부터 미련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의 관점으로는 어리석은 자는 책임지는 행동을 하지 않거나 미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자들을 지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관점은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가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시편 14편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14:1)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자이지만,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부인하기에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잠언은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줄로 여기나 ...”(12:1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는 자신이 중심이 되기에 자신의 행위를 바른줄로 여깁니다. 자기 행위를 바른줄로 여기는 것은 자신의 눈에 옳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삶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고 하는 재판관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부인하기에 죄를 가볍게 여깁니다.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14:9). 홉니와 비느하스는 어리석은 자였기에 하나님 앞에서 범하는 죄를 가볍게 여겼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부인하며 살아가기에 온갖 죄를 범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자와 미련한 자의 차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1:7).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으로 살아가지만, 미련한 자는 하나님의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며 살아갑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어리석은 자는 재앙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1:27, 32). 미련한 자의 멸망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2.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는 자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5:15).

 

우리는 어떻게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혜를 얻을 수가 있을까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인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인 것입니다. 사람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삶에 적용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딤후 3:14).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대로 삶에서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두 가지의 목적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하나는 구원에 이르는 길이고, 둘째는 구원받은 자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원리를 말씀을 통하여 배워서 실천하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직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빛인 복음을 듣고 잠에서 깨어 일어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5:14). 그리고 이제 잠에서 깨어나 일어난 자들은 지혜롭게 행하는 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5:15)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지혜있는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의 지혜의 원천은 책이나 세미나, 유튜브의 성공 미담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혜의 원천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안에 거하시면, 그 분은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이 되십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에, 그 분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과 구속의 은혜를 누립니다.

 

골로새서는 “...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2:2-3)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오셔서 구원의 은혜를 주실 때에 지혜와 지식의 보화까지 함께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으로 넘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헤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1:7-8).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넘치게 하셨습니다.

 

요한일서는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 2:20)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으셔서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구원에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지 포함되어 영적인 것을 분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통찰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과 같이 하나님을 부인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에는 어리석은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디도서 3장은 우리가 전에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3:3). 우리는 전에는 어리석은 자의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정욕의 종노릇하며 악독과 투기로 지내며 서로 미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는 이러한 옛 사람의 어리석은 행실을 모두 벗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리석은 행실을 버릴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3. 지혜로운 자는 세월을 아끼며 살아갑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5:16).

 

우리가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잘 활ㄹ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시간입니다. 시간은 곧 우리의 인생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잘 사용하는 것은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무한대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시간의 한계를 만나면 모든 인생에서 살아왔던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제한된 시간 안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결코 헛되게 낭비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여정에서 최선의 삶을 살았습니다. 디모데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이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마지막 순간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시작이 있듯이 마지막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시작은 자신의 생년월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지막 날은 아무도 모릅니다. 적어도 우리가 아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마지막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주권적인 섭리로 우리의 삶의 시간을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우리의 시간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어찌보면 우리가 살아갈 시간은 결코 길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나무는 심으면 수백년을 살기도 하지만, 사람은 그 수명을 100년을 넘기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 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39:4-5)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의 마지막과 그 생명의 길이를 깨닫게 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인생이 손 넓이 만큼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손 넓이만큼 짧기에 우리는 시간을 아끼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4:14)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생명은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인생은 안개와 같이 짧은 인생입니다.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아무리 좋은 집을 가지고 있어도 하와이의 산불은 동네를 잿더미로 만들었고 미처 피하지 못했던 사람은 불에 타서 죽어갔습니다. 아무리 강한 군대와 권세를 가지고 푸틴에게 대항했던 바그너 그룹 프리고진은 비행기 폭발 테러로 사망했습니다. 그가 행했던 잔인한 일들로 인하여 그의 최후는 비참하게 마쳐졌습니다.

 

야고보서는 우리의 생명이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기에, 우리는 주님의 뜻을 행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것이거늘.”(4:15).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에 항상 주의 뜻이면 행하는 삶으로 하루 하루를 의미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시간의 한계를 아는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는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5:16). 세월을 아끼는 것은 영어로 “redeeming the time”이라고 했습니다. 원어적인 의미는 시간을 구속하라, 시간을 사라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시간을 값주고 살만큼 가치있게 여겨서 시간을 잘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시간을 잘 사용하는 비결은 시간속에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하는 기회를 붙들라는 것입니다. 지혜의 마음을 갖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시간에서 선한 일을 행하는 기회를 붙드는 것입니다.

 

가장 어리석은 삶은 시간을 허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악한 시대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계수하며 하나님을 위하여 기회를 붙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90:10-12)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년수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생애는 항상 수고와 슬픔 만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시간은 날아가듯이 빨리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날을 계수하게 하심으로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시기를 구했습니다. 자신의 날을 계수하는 것은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합니다. 삶의 여정에서 악한 일에는 동참하지 않고 거절합니다. 그러나 선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일에는 기회를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악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는 선하고 아름답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타락한 이후부터 세상은 악한 것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이 악했던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강포가 가득하고 악한 일들이 가득 넘쳐나고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총기 사건으로 매일 수백명이 죽어가고 있고, 각종 폭력과 도둑, 그리고 매춘과 마약이 거리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샌프란시스코는 멋진 도시였지만, 지금은 거리마다 마약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노숙하는 사람들이 거리를 점령하고 있고, 각종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같은 도시는 도심에 마약과 범죄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출근하지 않고 자택 근무를 하다 보니 도심의 빌딩이 비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남미는 온갖 마약이 가득하고 그로 인하여 마약 카르텔이 정부의 권세를 맞먹으려 지역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멕시코에서는 마약 갱단들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고, 얼마 전에는 엘살바도르 대통령 후보가 마약 갱단의 총격으로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브라질은 동성애자를 비방하거나 혐오하는 말을 하면 감옥에 가두는 형벌을 내리는 법령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는 내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거나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수십만명이 죽거나 부상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최근에는 흉악 범죄가 자주 일어나 시민들이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이 시대의 악한 일에 대하여 거짓 선지자의 활동들을 언급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계술과 간사한 유혹”(4:14)으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이단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방탕한 성적인 욕구를 위해 살아가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4:19). 에베소서 425절에서는 거짓과 분노, 그리고 도적질과 더러운 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3절은 음행과 온갖 더러운 성적인 죄, 그리고 어리석은 말이나 회롱의 말의 죄에 대하여 책망하였습니다.

 

이와같이 이 시대는 악한 시대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을 아끼는 것입니다. 시간을 아끼는 것은 주어진 시간 동안 기회를 잡아 하나님의 선한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6:9-10)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누릴 때에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고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 수 있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4. 지혜로운 자는 자신을 향한 주님의 뜻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5:17).

 

어리석은 자는 인생의 목적을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비전이 없이 그냥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은 단지 세상적인 가치에 우선 순위를 두고 살아가게 됩니다. 가장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이기에, 하나님의 뜻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도리어 대적하기만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인생을 살아가는 원리를 성경에서 배우고, 그리고 주어진 시간 안에 그러한 삶의 기회를 붙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항상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자입니다. 로마서는 복음을 변증한 후에 구원받은 자를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선하신 뜻은 무엇인가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우선적인 뜻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안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구원을 받지 않는다면 마음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자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살전 4:3). 우리는 음란을 버리고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성령 충만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5:18).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술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한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날마다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우리가 원망과 불평하는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그 분의 양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4:34).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오셨고, 그 뜻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6:38-39). 주님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이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을 인생의 분명한 목적으로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셔서 영혼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분의 뜻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어리석은 일을 버리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주님이 주신 시간을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혜롭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욱 지혜롭게 되어 주님의 영광으로 살아가기를 기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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