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사무엘상 강해(6) -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삼상 3장)

비전의 사람 2023. 8. 23. 17:27
반응형

사무엘상 강해(6) -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삼상 3)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삼상 3:4).

 

우리는 삶에서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고 당연히 여기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건강과 자유를 누리는 것, 우정, 가족과 같이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것들은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이기에 그 소중함을 깊이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나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는 아모스는 기원전 8세기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선포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8:11).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께서 기근을 보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음식과 물을 찾으러 다니지만 얻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영적이 기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지 않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을 정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라사대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가르되 여름 실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아니하리니.”(8: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다고 하셨습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경고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이스라엘 자손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식이 약했거나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당연히 여기며 감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실로의 사무엘이 살던 때도 아모스 선지자의 시대와 같았습니다. 사무엘이 살던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던 시대였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삼상 3:1). 사무엘의 시대는 하나님이 말씀은 하셨지만, 그 말씀이 희귀한 시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던 이유는 실로의 홉니와 비느하스와 같은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이 도리어 불량자로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말씀을 제사장을 통해서 주실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영적인 어두움의 시대에 아이 사무엘이 등장하게 됩니다. 사무엘의 어린 시절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삼상 2:11).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삼상 2:18).

“...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삼상 2:21).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삼상 2:26).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삼상 3:1).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떠나며 엘리의 집안은 몰락의 길을 걸어갔지만, 사무엘은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다가, 자라가며 제사장의 에봇을 입게 되었고, 사무엘이 점점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을 입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세우셔서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 제사장이 영적으로 어두워가는 것을 보시고 대신에 사무엘을 영적인 지도자로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삼상 3:2).

 

사무엘상 3장은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길 때에,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지며 잘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는 것은 영적으로 어두운 당시의 시대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엘리는 육체적으로도 약해서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그의 영적인 어두움도 깊어갔습니다. 그는 이미 이스라엘의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해야 하는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더구나 그가 죽고 나면 그의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 직분을 감당해야 했기에 이스라엘의 영적인 위기는 더 깊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영적인 지도자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사무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삼상 3:3). 하나님의 등불은 성소에 있는 등잔대였습니다. 등잔대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등불을 켜야 했는데,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은 것은 아직 밤시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것은 상징적으로는 이스라엘에 아직 소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아직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이 누워있는 성전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거하시는 처소였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고, 제사장들이 희생제물을 드렸고, 성소에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표하는 직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의 쇠태와 그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의 타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의 관계를 무너트리는 위험요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위한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삼상 3:4).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지하지 못하고 엘리 제사장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삼상 3:5). 사무엘은 엘리에게로 즉시 달려갔지만, 엘리는 사무엘을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가서 다시 누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사무엘은 다시 엘리에게로 가서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삼상 3:6)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엘리는 사무엘을 부르지 않았으니 다시 누우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이 부르시는 줄을 몰랐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실 때에,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신 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다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스라엘 중에 행하실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지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 3:12-13).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하신 것을 다 이루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상 227-36절의 말씀을 통하여 엘리의 집에 일어날 일들을 이미 말씀하신적이 있으셨습니다.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찌라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네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영토록 오인이 없을 것으며 내 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너의 사람이 네 눈을 쇠잔케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네 두 아늘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삼상 2:31-34).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의 집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그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지목하신 엘리의 죄는 아들들의 죄를 금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 3:13). 홉니와 비느하스가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하고 성소의 여인들과 간음하였지만 엘리는 그러한 일들을 강하게 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집의 죄는 제물이나 예물로도 속함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삼상 3:14). 엘리의 아들들은 엘리 제사장의 말을 듣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죄는 의도적이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후에 그 말씀을 엘리에게 알려주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엘리 제사장 집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하나도 숨기지 말고 이야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엘리에게 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엘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후에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사무엘이 세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삼상 3:18). 엘리는 하나님이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라는 답변을 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삼상 3:19). 사무엘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이지지 않고 성취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무엘의 말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제 사무엘이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라는 사실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삼상 3:20). 하나님께서 실로에서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제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장은 하나님께서 구약에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지만, 지금은 그의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1:1-2).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 분은 살아계셔서 우리 안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시고 이 시대에 그 분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씀하시며 인도하십니다.

 

오늘 말씀이 주는 영적이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항상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기에 그 분의 말씀은 그 분의 뜻대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은 그 분의 때에 성취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는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30고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에 기준이 되어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잘못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기에 우리가 그 말씀을 날마다 읽고 묵상하는 삶은 우리의 영적인 삶에 생명이 되게 하여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을 듣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말씀에 반응하는가요?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무엘과 같은 자세가 필요합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사무엘은 엘 리가 한 말에 순종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3. 우리는 이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삼상 3:3).

 

하나님의 등불은 어두움을 밝히는 빛을 상징합니다. 빛은 어두움을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사무엘 시대에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였기에 말씀이 희귀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 영적으로 어두워지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다시 불을 밝히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빛이 비취는 것은 주님의 빛이 우리를 통하여 빛나는 것입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 어두움을 밝히는 빛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며, 이 시대에 선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