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강해(9) - 블레셋과 하나님의 언약궤(삼상 5장).
사무엘상 4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 과의 전쟁에서 언약궤를 가져가면 그들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했지만 결국 패배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도 이스라엘 자손이 가져온 언약궤로 인하여 자신들에게 큰 위협이 될 거라 생각하지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결국 승리하는 모습을 설명하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전쟁에서도 패배했을 뿐 아니라 많은 군인들과 함께 홉니와 비느하스 두 제사장이 죽는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상 2-3장을 통하여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제사장이 이 모든 실패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다하지 못했고, ㄷ리어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 제물과 헌물을 모독하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패배한 이유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비느하스의 아내가 해산하면서 아들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하면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표현했습니다. 이가봇의 의미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 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과의 중보자인 제사장을 거절하시고,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가 블레셋 사람에게 빼앗기도록 하용하셨기에,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사무엘상 5장은 언약궤를 가져간 블레셋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자신들의 전리품으로 가져갔습니다.
언약궤 앞에서 다곤 신상이 무너지다 (1-5절)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빼아은 후에 자신들의 도시인 아스돗에 이르렀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삼상 5:1). 블레셋은 다섯 개의 도시로 이루어진 나라로서 아스돗은 블레셋의 중심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를 가져다가 다곤이 있는 당에 들어가 다곤의 곁에 두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당에 들어가서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삼상 5:2). 다곤의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는 주신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곤 신전에 둔 것입니다. 그들은 다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하여 승리했다고 자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영적인 무지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곤 신전에 둔 다음날 아스돗 사람이 신전에 이르자 다곤이 바닥에 엎드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삼상 5:3).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은 것을 보고,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숭배하는 우상은 사람들이 만든 형상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우상이 넘어졌지만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는 신상을 숭배하는 블레셋 사람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46장 7절은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서 있고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사 46:7)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사야 선지자가 바벨론 우상의 무능함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에 그들이 다곤이 있는 신전에 들어가니 이번에는 다곤의 머리와 손목이 끊어진 상태로 엎드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 앞에 철저하게 무너지는 다곤의 상태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어두웠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날 이후로 다곤의 당에 들어가는 자는 다곤의 문지방을 발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다곤신의 머리와 손목이 끊어져 널부러져 있었기에 그들이 신에 대한 경외심으로 다곤 신전의 문지방을 발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의 강한 손이 블레셋을 치시다 (6-10).
하나님께서는 다곤 신의 머리와 손목을 끊어지게 하심으로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한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종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경을 쳐서 망하게 하니.”(삼상 5:6). 하나님께서는 아스돗 사람에게 독종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경을 쳐서 망하게 하셨습니다.
아스돗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온 이후로 자신에게 내리는 독종의 재앙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게 못할찌라 그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삼상 5:7). 아스돗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이 자신들과 그들의 신인 다곤을 친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로 인하여 위기에 처하자 그들의 방백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 후에 한가지 방책을 마련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약궤를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 가로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할꼬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시의 궤를 옮겨 갔더니.?(삼상 5:8). 그들은 아스돗이 하나님의 언약궤로 인하여 위기에 처하자 언약궤를 가드로 옮기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들이 가드로 정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위기를 빨리 극복하기 위하여 급조하여 만든 계략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가드에 옮겨간 후에 가드에는 큰 환난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에 더하사 성읍 사람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종이 나게 하신지라.“(삼상 5:9). 가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독종으로 고통을 당하자,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자 에그론 사람들이 놀라서 자신들으 죽이려 한다고 반발했습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이 블레셋에 나타나다 (11-12)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회의를 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엇습니다. ”이에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본처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 죽임을 면케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삼상 5:11).
그들은 하나님의 궤가 있을 처소가 블레셋이 아니라 그 본래의 자리인 이스라엘 땅임을 인식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져와 스스로 승리했다고 하는 것이 큰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 굴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본처로 보내고자 했던 이유는 그들이 죽임을 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온 성이 사망의 환난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셔서 블레셋 땅에 사망의 환난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자는 독종으로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종으로 치심을 받아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삼상 5:12). 블레셋 사람들은 사망과 독종의 고통으로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만홀히 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이름 조차도 거룩하고, 그 분이 거하시는 언약궤 조차도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무시하고 자신의 다곤 산당에 언약궤를 가져와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은 오래가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로 인하여 언약궤가 끌려가는 것을 허락하셨지만, 블레셋 사람에게 조롱당하시는 분이 아니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사람이 숭배하는 다곤을 치셨고, 그 후에 블레셋 사람들을 사망과 독종으로 치셔서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언약궤를 원래의 자리로 가져가는 것 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사탄은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탄의 권세를 멸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에서 일어나셔서 모든 믿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세상은 하나님을 믿는 자를 조롱하고 핍박하지만, 그 핍박과 조롱은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날마다 주님의 영광을 높이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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