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에베소서 강해(23) -자녀양육을 위한 성경적인 원리(엡 6:4)

비전의 사람 2023. 9. 2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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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23) -자녀양육을 위한 성경적인 원리(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6:4).

 

시편은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127:3)라고 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과 상급이기에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자녀의 인생에서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미래의 희망이며 살아갈 용기를 주는 소중한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자녀로 인하여 기쁨을 얻는 것입니다.

 

자녀 양육하는 것을 parenting 이라고 합니다. 자녀를 양육한다는 것은 부모의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에 대하여 에베소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6:4). 성령은 우리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가 있다면 자녀를 주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도록 양육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가치는 오직 성공과 권세를 위하여 자녀를 키워가지만, 우리는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를 양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가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자녀들을 우리의 뜻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가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저의 교회는 주일학교와 학생 청년부들이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모습에 큰 격려가 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의 사람이라도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지 못하고 실패한 경우를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담에게는 아벨과 같은 믿음의 자녀가 있었지만, 가인과 같은 악한 자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믿음의 사람으로 잘 키웠지만, 이삭은 아들인 에서가 하나님의 말씀안에 거하지 아니하고 약속의 땅을 떠나 이방 지역에 거주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모세는 믿음의 거장이었지만 그의 손자인 요나단은 단 지파가 우상 숭배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믿음의 거장이었지만 그의 아들인 압살롬은 개인적인 원한으로 암논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고, 심지어 아들인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향하여 칼을 들고 반역하기도 했습니다. 사무엘도 영적인 거장이었지만 그의 자녀들은 영적으로 실패하여 사사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와같이 부모가 바른 신앙을 가졌다 할지라도 자녀들이 바르게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부모님이 목회자이거나 집사와 같은 직분자들이지만 자녀들이 바르게 믿음 생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주신 인격과 믿음으로 자신의 믿음을 키워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의 믿음 안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와 다른 인격을 가졌기에 부모를 따라 맹목적으로 믿음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의식 속에 하나님을 믿어야 할 이유를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바르게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도록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사람은 바로 부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는 역할을 부모에게 주셨습니다. 신명기는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기를 가르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6:6-7).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마음에 새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되, 집에 앉았거나 길에 걸어가거나, 눕거나 일어날 때라도 말씀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잠언에서는 자녀들에게 부모의 명령과 법을 떠나지 말고 지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그것이 너의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너의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너의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하리니.” (6:20-22). 부모의 가르침은 자녀를 보호하게 되어 세상의 유혹과 고난에서도 견디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들을 잘 양육하여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고자 하는 것은 모두의 공통된 마음입니다. 자녀가 잘 되는 것이 부모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서는 자녀를 단지 세상적으로 성공적인 자녀를 키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키워가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세상과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자녀들을 양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자녀들의 문제가 심각한 이때에,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로 잘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 소중한 가치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우리의 자녀들을 양육해야 할까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6:4).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에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녀를 분노하도록 자극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녀들도 인격적인 존재이기에 마음에 큰 상처를 받으면 증오심이 일어나거나 분노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분노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분노나 노여움이 부모로부터 온다면 자녀는 심각한 상처 속에서 회복하기가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보호자로서 인격과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과거에 한 분이 딸이 가출하며 문제를 일으키자 가위로 머리를 잘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딸의 인격을 훼손하는 것으로 자녀들을 분노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양육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도리어 자녀가 탈선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분노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합리적이지 않은 요구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능력을 뛰어넘는 요구는 자녀들에게 좌절감을 가져다 주고 결국은 분노심까지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 상황에서 자녀들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성적에 대한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상위권 대학에 대한 강한 요구로 자녀들이 우울하거나 분노를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향하여 격려와 칭찬으로 안정감을 주어야 하는데, 자녀가 남들보다 뛰어난 학생이 되는 목적으로 지속적으로 요구만 한다면 자녀는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러면 자녀는 좌절하게 되고 분노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의 결점만을 지적하면 자녀는 노엽게 되기도 합니다. 자녀에게는 강점도 있고 약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의 허물만을 찾아 지적하는 습관을 갖는다면, 자녀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멀어지게 되고 결국은 마음에 분노만 쌓이게 될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허물을 찾기 보다는 강점이나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 격려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반대로 부모가 자녀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도 자녀가 분노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자녀를 학대하는 모습 중의 하나가 무관심입니다. 무관심은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도 자녀를 방치하고 부모가 pc 방에서 며칠씩 있다가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자녀가 어떠한 마음인지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직장이나 교회에만 관심을 갖는 것도 부모가 저지르는 실수 중의 하나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에 대하여 무관심했습니다. 그를 2년 동안 만나지 않고 무관심하자, 압살롬은 다윗에 대하여 분노하였고 결국 반역하기로 결단했습니다.

 

얼마 전에 중앙고등학교의 이사회 모임에 참여한 후에 학교 시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진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캠핑 용품과 시설들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이 그곳에서 캠핑하며 부모와 대화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부모와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면서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하여 새롭게 출발하는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관계의 회복이 삶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너무나 분주하게 살아가다 보니 인격적인 대화가 사라지는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들의 정서가 메마르고 부모의 사랑이 결핍되어 사회나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이승한 청년 형제와 교제를 나눈적이 있었습니다. 승한 형제는 언어 치료 전문가로서 아이들의 언어를 치료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교제를 하면서 새롭게 배운 것은 요즘 어린 아이들이 언어 발달이 늦어지는데 그 이유는 언어를 배우기 전에 스마트 폰에 너무나 노출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모님이 자녀들과 인격적인 대화를 하면서 사랑의 관계를 세우기 보다는, 너무나 바쁜 이유로 자녀들에게 스마트 폰을 주고 있기 때문에 자녀들이 언어에서 늦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어 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대화하고 놀아만 주어도 그 증상이 많이 호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은 사랑으로 자녀를 돌보는 것입니다. 이는 인격적인 대화와 사랑의 교제가 핵심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에 자녀 양육으로 유명한 캠블 교수님이 강의를 하신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아이들을 어떻게 진심으로 사랑할수 있는가“’라는 책을 저술하신 분입니다. 캠블 교수님은 그 분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필요한 것은 눈맞춤(eye contact), 육체적인 접촉(physical contact), 집중적인 관심(focused attention) 이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눈 맞춤을 하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고, 육체적인 접촉, 즉 허그 하거나 안아주는 터치를 통하여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면에서 무척이나 부족함을 느낍니다.

 

유미가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 와서 가족들과 대화를 하면서 저에게 자주 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정이나 유빈이가 말을 하면 제가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저는 듣는다고 하지만 생각은 딴 데 가 있을 때가 많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듣고 공감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부족함을 지켜본 것입니다. 저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었는데 외부에서 살다가 집에 오니 그러한 모습이 보였던 것입니다. 저는 그 지적에 공감하여 고쳐가려고 노력했고 지금은 과거보다 더 자녀들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잭 하일스 목사님은 자녀들을 개인적으로 데리고 나가 식사를 사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매주 돌아가면서 자녀와 외식을 하면서 개인적인 관심과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자녀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고 진정한 사랑으로 관계를 세워가야 합니다. 부모와 좋은 관계에서 자란 아이들은 사회에서도 높은 자존감을 지니고 있으며, 무엇을 하더라도 당당하게 세상을 헤쳐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2.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6:4).

 

유대인의 인구수는 전 세계에 약 1450만명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노벨상 수상자의 약 삼분의 일을 차지하고 잇습니다. 미국의 변호사의 20%가 유대인이며, 미국에 있는 4백명의 재벌 중 23%가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미국 대학 교수 중 유대인이 25-35%가 된다고 합니다. 이와같은 유대인들의 우수성은 선천적인 머리가 아니라, 교육에 의해 우수한 민족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교육의 비밀은 무엇인가요? 유대인들은 자녀 교육의 일차적 스승은 부모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부여한 가장 큰 의무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6:4-9).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며 선물이기에, 그 자녀를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지혜의 책인 탈무드를 중심으로 자녀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가 부모에게 가르치는 자녀 양육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즉 자녀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자녀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주님의 말씀으로 가르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는 믿음의 자녀로 키우는 것이 자녀 양육의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교양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으로 자녀를 훈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의 교양에서 교양은 원어적으로 세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훈과 훈련, 그리고 책망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코치가 선수를 훈련하여 경기에서 기량을 발휘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즉 코치가 지속적으로 선수를 지켜보며 교훈하고 그리고 선수로서 바른 습관을 갖도록 훈련하며, 지시를 따르지 않을 때는 책망하여 다시 바른 길로 가게 하는 역할과 같다고 볼수 있습니다.

 

부모의 역할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시며 바르게 인도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6-17).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를 교훈하시고 책망하셔서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자라가면 우리가 온전하게 되어 선한 일을 행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부모가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먼저 교훈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교훈이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신명기에서는 너희는 부지런히 자녀들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그 가르침의 핵심은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며 순종하는 삶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9:10)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지혜롭게 자라가는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링컨 대통령의 어린 시절은 무척이나 가난했습니다. 특히 링컨 대통령이 어릴 시절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어머님께서 링컨 대통령에게 남기신 것은 바로 성경책이었습니다. 링컨은 어릴 때부터 성경을 읽고 자라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링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특히 미국 사람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링컨 대통령이 흑인들을 노예에서 자유하는 자가 되도록 내전까지 치루면서 힘을 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경외심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진정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확인하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지 교회를 다니는 것이 구원의 증거가 아니라, 내적인 증거를 볼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과의 영적인 교제를 통하여 진정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시며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고백하며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는 간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는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구원을 확증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자녀들의 영혼에도 관심을 가지며 그들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마음에 없다면 버리운 자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을 양육하고 훈계하는 것은 자녀들이 바르게 자라도록 교훈과 훈련, 그리고 책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녀들이 구원의 확신 속에 있다면 그들은 새 생명으로 자라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면 부모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는 교훈이 있어야 합니다. 교훈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교리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포함되지만, 부모의 교육은 말씀을 교훈으로 삶으로 가르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구원의 길을 보여주어야 하며, 예배의 삶과 십일조의 삶, 그리고 세상과 성별하는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성품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교훈을 삶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가르치는 최고의 교훈은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교훈을 가르친 후에는 그들의 삶에서 영적인 습관이 배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양육은 교훈과 훈련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훈련의 목적은 영적인 습관을 형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훈련이란 discipline 으로서 제자 훈련과 같은 개념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전서에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8)라고 했습니다. 이때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는 것이 영적인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훈련이라는 말은 교훈에 순종하여 반복적인 행동을 함으로 바른 습관을 형성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운동 선수들은 같은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바른 습관과 자세를 배우며 습관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영적인 훈련도 반복적인 행동을 통하여 형성되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른 습관과 자세를 갖도록 도와주는 코치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공부에만 관심을 갖기 보다는 바른 자세와 영적 습관을 갖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읽고 묵상하는 습관,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응답받는 바른 습관을 형성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바른 자세를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녀들은 지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바른 습관과 자세를 형성해야 합니다.

 

잠언서는 습관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22:6). 우리는 습관을 따라서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적인 습관은 그의 삶을 자연스럽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도록 할 것입니다.

 

자녀들이 배워야 할 영적인 습관은 주일날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며, 재물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삶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교회에서 자신의 은사와 재능에 따라서 섬기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어릴 때 배운 신앙의 습관은 늙어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려지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을 깊이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소유를 오직 이 땅의 썩어질 것을 위해서만 사용하지만, 우리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드렸고, 그 가치있는 삶을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영적인 가치를 형성해야 합니다.

 

자녀교육은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부모로서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써 양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도록 하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들을 축복하심으로 다윗이나 사무엘과 같이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받는 믿음의 자녀로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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