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에베소서 강해(24) - 직장에서의 성경적인 관계(엡 6:5-9)

비전의 사람 2023. 10. 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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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강해(24) - 직장에서의 성경적인 관계(6:5-9)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6:5).

 

우리의 영적 생활에서는 우리가 믿는 믿음이 삶으로 표현되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로운 삶이란 바른 관계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사람과의 바른 관계속에 살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사람과의 바른 관계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와 사랑으로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의로운 삶이 됩니다. 그러한 삶은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은 서로에게 순복하며 남편의 머리 됨을 인정하고 순종하며,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함 같이 사랑하며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녀는 부모님을 공경하며 순종해야 하며,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는 이제 종과 주인, 오늘날의 표현대로 하면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노예들이 약 육천만명이나 있었다고 추정합니다. 특히 로마나 고린도, 그리고 에베소와 같은 거대 도시 인구의 삼분의 일은 노예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세워진 교회에는 종들도 있었고 상전들도 있었습니다. 골로새 교회의 빌레몬은 상전이었고, 오네시모는 종이었습니다. 초대 교회에는 노예도 있었고, 자유인도 있었으며, 노예를 소유한 상전들도 있었습니다.

 

로마의 초기 시대에는 노예들의 인권은 전혀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많은 노예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쟁에서 패배한 나라의 군인이나 사람들을 로마로 데려와 그들의 노예가 되게 했습니다. 초기의 로마 시대에는 노예들은 인격적인 존재로 간주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사고 파는 물건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인으로부터 혹독한 착취를 당하곤 했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아우구스투스의 노에는 애완용 메추라기를 죽였다는 이유로 십자가 처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기원전 140-70년 사이에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노예들로 인하여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영향이 로마에 퍼지면서 노예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초대 교회의 시대인 1세기에 이르러서는 노예들은 부분적인 자유를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노예들이 평생에 노예로 살기 보다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유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노예들은 나이 30이 되기 전에 약 50%가 자유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노예가 주인의 소유로 남아 있을지라도, 그는 다른 노예를 둘 수 있었고 동시에 자신의 소유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소유를 축적함으로 인하여 자신의 자유를 사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하여 노예들은 사회적인 지위를 누리기도 했기에, 외모적인 면으로 노예와 자유인을 구별하기가 어렵게 되기도 했습니다. 노예는 세일즈맨이 될 수도 있었고 사업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노예들은 자신들의 주인과 따로 자신의 거처에서 살아가기도 했습니다. 20세기에 유럽이나 미국에서 노예로 생활했던 삶의 양식과는 다르게 살아갔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종과 상전의 관계에서 어떻게 서로 존중해야 하는가를 배우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기에 성경적인 세계관을 갖게 되면 종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노예를 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종을 존중하는 자세를 배워야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상전과 종의 관계로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고용주와 고용인이라는 관계를 통하여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용주는 돈을 주고 고용인을 사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시키는 자이고, 고용인은 자신의 시간과 노동력을 희생해서 월급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회에서 고용인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고용주로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또는 우리가 고용인이지만 우리의 직장에서 상하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에서 어떻게 성경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는 무척이나 소중합니다. 상전과 종이라는 성경 시대의 용어를 우리는 고용주와 고용인이라는 관계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 고용인은 고용주에게 그리스도께 하듯 순종해야 합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6:5).

 

에베소서에게 가르치는 상전에 대한 종의 태도는 순종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6:5). 즉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권위에 있는 자에 대하여 순종하는 자세글 가져야 합니다. 마치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이 상전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종들은 상전을 존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종들이 육체의 상전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군대에서 군인이 상관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의무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리스도를 사랑하기에 순종하듯이, 종들은 자신의 권위인 상전의 지위와 권위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배경에는 하나님께서는 권위를 세우셨기에 우리는 권위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노예인 자는 불신자인 상전을 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상전의 집에서 일을 하다 보면 상전을 무시하려는 자세를 갖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시에 상전과 종들이 가족과 같이 함께 지내다 보면 친밀해지고 그러한 관계에서 상전을 무시하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죄성이 바르지 못한 태도나 행동들이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키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자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찌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딤전 6:1). 사도 바울 당시에 그리스도인 노예들 중에서 상전을 함부로 대하는 자가 있기에 복음의 진보에 장애가 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멍에 아래 있는 자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이름과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종이 그리스도인인 상전아래 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때 종들은 교회에서 영적인 형제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기에 집에서도 상전을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종이 교회에서 말씀을 배워서 가르치는 교사이고, 상전이 그의 권위 아래서 말씀을 배우는 경우에는 관계가 더욱 어려울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영적인 권위가 높다라고 해서 직장에서 상사를 아래 취급하고 무시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딤전 6:2). 사도 바울은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을 향하여 형제라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겨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피차 유익을 얻으며 사랑을 받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종들은 상전들을 향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6:5). 성실한 마음은 한 마음으로 겉과 속이 같은 마음인 것입니다. 즉 우리가 나뉘이지 않은 마음으로 상전을 순종하고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나뉘이지 않는 마음이란 앞에서 하는 말과 행동과 뒤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성실함으로 상전을 순종하고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의 동기는 주님을 대하듯이 위선이나 거짓이 없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위선이나 거짓이 없는 마음으로 상전을 대하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께 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는 상전이나 종이나 모두에게 필요한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 섬겨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5:6-7).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주님을 섬기듯이 사람들을 대하며 섬겨야 합니다.

 

골로새서에서도 우리가 성실한 마음으로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3:22-23). 우리는 주님을 대하듯이 상전들을 마음을 다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은 무슨 선을 행하든지 주께서 그대로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6:8).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주에게 그대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골로새서도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3:24)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상전을 섬기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섬김은 우리가 상을 받게 하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대하듯이 하라는 말씀을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말씀으로 간주하며 자신의 권위자나 상전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가르침은 종들이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는 것이며, 이에 대하여 주님께서 그의 순종에 대하여 보상하심으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서 일을 하듯지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상전을 주님을 대하듯이 섬기며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는 주부가 집에서 요리할 때에 가족이 아닌 주님을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요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집을 청소할 때에 예수님의 기쁨이 되는 마음으로 집을 청결히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교사가 학교에서 어린이나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 예수님을 대하는 것과 같은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사가 환자들을 대하거나 간호사가 환자들을 대할 때에 예수님을 대하듯이 한다면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러한 섬김의 순종에 대하여 보상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업장에서 고객을 대할 때에 마치 예수님을 대하듯이 친절과 사랑을 베푸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상사를 대할 때에 주님을 대하듯이 겸손과 신실함으로 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6:6)라고 했습니다. 눈가림은 눈으로 하는 서비스를 의미합니다. 이는 진정한 헌신이나 책임감이 없이 사람들의 관심만을 끄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있으면 최선을 다하는 듯 하지만, 사람들이 없으면 책임감 없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위선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종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에 각각의 재능대로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이 없는 상황에서도 열심히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었습니다. 그 후에 주인이 돌아와 그들에게 맡긴 달란트를 회계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는 달란트를 남긴 종들에 대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였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종에 대하여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했습니다. 눈가림만 하는 자는 이와같이 주인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서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종들이 가져야 하는 바른 자세는 즐거움으로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6:7). ‘단 마음으로는 영어로 ‘good will’로서 좋은 또는 선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즐거움으로 상전을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즐거움으로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한 마음을 축복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는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6:6-7). 우리가 상전을 잘 섬기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상의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상전을 잘 섬기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어려운 일을 맡아 힘들어 할 때도 주님께 기도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시고 즐거운 마음을 풍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2. 고용주는 고용인에게 그리스도를 대하듯이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줄 너희가 앎이니라.”(6:9).

 

에베소서는 종들이 주께 하듯 순종하듯이, 상전들도 종들을 향하여 이와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즉 상전들도 종들을 주님을 대하듯이 겸손과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종들이 상전에게 주님을 향한 믿음의 동기로 최선을 다하듯이, 상전들도 주님을 향한 믿음의 동기로 주님을 대하듯이 종들을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종들이 상전에게 두려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대하듯이, 상전은 종들을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성실함과 기쁨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권위를 주신 이유는 힘을 가지고 권세를 누리거나 자신을 높이거나 다른 사람을 억압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세우고 보호하며 인도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전은 자신의 위치가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을 인정하며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을 대하듯이 종들을 사랑하며 격려하며 보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1절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5:21)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남편과 아내가 그리스도를 경외하기에 서로에게 복종하듯이, 상전과 종들도 서로를 존중하며 순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도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상전들에게 자신들이 대우받기를 원하는대로 그의 종들을 대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존중을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존중감을 표현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실함을 원한다면, 우리가 먼저 신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즐거움의 마음으로 섬김을 받고자 한다면, 우리가 먼저 즐거움으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상전들은 영적으로는 차별이 없음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줄 너희가 앎이니라.”(6:9). 상전은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종들을 공갈함으로 협박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종과 상전의 참된 상전을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상전은 마음으로 종들을 향하여 차별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부르심을 주셨기에 상전은 자신을 부르시고 세우신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 섬김은 종들을 겸손과 사랑으로 대하며 그리스도께 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우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을 향하여 최선을 다하여 돌아보며 섬기고자 할 것입니다. 그들의 삶의 형편도 이해하려고 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에 돕고자 할 것입니다.

 

이와같이 주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은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에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에베소서 518절에서 술 취하지 마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5:18)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시와 찬미와 영적인 찬양으로 하나님게 나아가며, 우리의 입술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삶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이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믿음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직장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자신에게 주신 직책과 권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대하듯이 고용주나 고용인을 대하는 자세는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비결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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