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첫 사랑을 회복하라 (계2:1-7)

비전의 사람 2023. 12. 16. 18:09
반응형

첫 사랑을 회복하라 (2:1-7)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2:1).

 

요한계시록 2장에서 3장은 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하여 주시는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주님께서 그 당시의 교회들에게 개인적으로 말씀을 주셨다는 것은 무척이나 의미있고 소중한 일이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의 형편과 영적 상태를 보고 서신을 보내주신다면 여러분의 반응은 어떠할까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족에게 또는 우리의 교회를 위한 서신이 온다면 우리는 무척이나 환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책망의 메시지라고 한다면 무척이나 당황스럽기도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서 첫 번째로 에베소 교회에 서신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도시는 아시아의 수도라고 불릴만큼 로마의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에베소는 번창하는 상업 중심지였고 아데미 여신을 위해 지어진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지정될 만큼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에베소는 바울, 디모데, 요한의 사역지였습니다. 바울이 3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에베소에서 2년 반 정도 지내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로 큰 부흥이 에베소에서 일어났기에 아데미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업이 타격을 받자 큰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면서 사역을 디모데에게 맡겨 복음을 계속해서 전하게 했습니다. 초기 전승에 의하면 1세기 말에는 사도 요한이 디모데를 대신해 에베소 교회의 사역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분의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몸된 교회가 영적으로 강건하게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에베소 교회에 필요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 메시지의 핵심은 첫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의미있는 가치는 사랑과 믿음과 소망입니다. 성경은 그 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과 사랑은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요? 왜 주님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셨을까요?

 

1. 사랑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를 맺게 하는 연결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사랑은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은 이 세상이 존재하게 하는 힘이며,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아름답게 하는 바탕이며, 우리가 섬기는 교회를 풍성하게 하는 은혜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 분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사랑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태양과 달, 별들의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태양이 빛을 비추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생명체는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태양이 비추는 빛으로 생명이 살아가게 합니다. 그리므로 빛을 생명의 빛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달이 지구를 자전하는 것으로 지구가 낮과 밤이 존재하고 밀물과 썰물의 조수간만의 차이가 있으며, 달의 월력으로 농사를 짓는 때를 구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은 서로를 위하여 존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피조물은 피차의 관계에서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산의 높은 곳에 솟아나는 샘물은 골짜기로 흘러 들의 짐승들이 마시며 해갈하게 하고, 개울가의 나무들과 식물이 자라게 합니다. 그리고 개울가의 나무들이 자라면 새들이 와서 쉼을 얻거나 거처를 삼습니다. 나무들은 산소를 공급하며 짐승들과 사람들이 살아가게 하며, 어떤 나무는 열매를 맺어 사람들과 짐승들의 식량이 되게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짐승이 죽으면 그 땅을 위한 양분이 되어 나무나 식물이 자라가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피조물의 존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피조물의 관계에서 서로에게 유익을 주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개울에서 흐르는 물은 강물이 되어 물고기들이 서식하게 하며, 그 물고기들은 사람들의 양식이 되게 합니다. 강물의 물은 바다로 흘러 큰 바다가 되어 수많은 물고기들의 서식처가 되게 하고, 때로는 갯벌을 만들어 많은 생명체들이 존재하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사랑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에게 유익이 되어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피조물이 서로 존재하도록 연결하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 분의 피조물도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에 빠진 아담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사탄의 속성인 죄를 받아들였고 그 결과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은 사랑 대신에 미움을 택하기 시작했고, 생명 대신에 사망의 그늘아래 거하는 비참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욕심과 탐욕이 가득하여 다툼과 싸움으로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했고, 살상무기를 만들어 다른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국가와 민족간의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시 생명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생명의 회복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연결 고리는 바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아직 죄의 저주 아래서 고통 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앞에 놓여 있는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 없이 공의만 있다면 우리의 죄는 하나님의 진노만 있고 결국은 지옥의 형벌에서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다시 관계를 회복하여 영적으로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었다는 의미는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는 DNA 가 같습니다. 같은 DNA 는 부모와 자녀가 닮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에게는 영적인 DNA 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생입니다. 이 영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원한 생명이기에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과 천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사랑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풍성하게 하는 연결이기 때문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 2:1).

 

사도 요한은 요한1서의 말씀을 통하여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졌습니다. 로마서는 “ ...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5: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함으로 우리는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들과 인격적인 교제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첫 사랑을 더욱 회복해야 하는 이유는 사랑이 풍성할수록 교제가 더욱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관계는 수동적이고 의미없는 만남만 지속될 뿐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관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외형적으로는 열심을 내는 교회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주님을 위하여 수고하는 수고와 인내를 아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단들을 용납하지 않고 그들의 거짓된 것을 드러내며 교회의 순수함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우상 숭배의 본거지로서 영적으로 어려운 곳에서 주님을 위하여 인내하며 수고했습니다. 특히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니골라당은 영지주의의 한 파로서 육체적으로 타락한 행위를 용납하고 조장하는 이단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도 그들의 행위를 미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외부적으로 에베소 교회는 주님을 위하여 열심을 내며 예배를 드리고 수고하는 교회였습니다. 교회 내의 이단적인 사상이나 잘못된 가르침을 걸러내어 그들을 물리치는 열정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2;4). 주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교회에서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가치는 관계를 지속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시기 위하여 사람을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과 교제하시기 위하여 그들 가운데 성막의 처소에서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며 그들 가운데 영광 가운데 임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신 계명 중의 최고의 계명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주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첫 사랑을 지속적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사랑은 관계가 멀어지면 식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사랑은 지성, 감성, 의지가 포함되어 나타나는 마음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계속해서 알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지적인 영역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가며 그 분을 더욱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예배를 통해서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예배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가 풍성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도우셔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풍성하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지체들을 더욱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교회의 지체들을 사랑하는 것은 함께 합니다. 우리가 지체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지체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한1서는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요일 4:21)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는 풍성한 은혜가 흐르게 되고,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서 교회의 지체들에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체들을 사랑하며 돌아보기 시작하면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이 더욱 가득하게 됩니다. 그러한 삶에는 예배가 회복되고 기도가 능력이 있으며, 경건의 시간이 더욱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기쁨이 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를 향하여 사도 바울은 사랑이 주는 은혜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2:4-5). 그리고 우리는 사랑으로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린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3:17).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믿음에서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가 아닌 세상을 사랑하거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시 된다면 그리스도와 그 분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서로 하나 되게 하는 능력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2-3). 우리가 교회로 하나 되는 것은 주님의 거룩한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며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가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게 합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4:16). 우리가 성장하는 환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서로에게 표현하며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체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통하여 흘러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의 지체들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가 더욱 하나님과의 풍성한 교제가 가득하게 합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의 삶은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더욱 예수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리고 서로의 관계가 풍성함으로 교회가 견고하게 세워지는 은혜를 얻게 합니다.

 

3. 사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5:1-2).

 

사랑의 능력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셔서 산 제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는 십자가에서 증거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죽으신 십자가를 통하여 영혼의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지체들의 연합을 이루는 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태어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자신의 육체를 희생하신 주님께서는 그 분의 영적인 몸인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원리는 서로를 향한 희생으로 표현되어 지게 됩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향한 헌신이 사랑이라는 내면의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부부의 관계와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에서 유사점이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내도 남편을 위하여 순종할 수 있는 것은 남편의 큰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으로 교회가 세워졌듯이, 교회는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죽기까지 자신을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인 교회의 목적이며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주님의 영광이 됩니다. 우리가 서로를 세워갈 때에 주님의 영광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을 다하여 예배하며 섬길 때에 주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삶이 될 때에 주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깊은 갈망은 주님을 향한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진심으로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첫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첫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2:5). 우리는 사랑이 식어진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진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의 변화가 사랑을 식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욕구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분주한 삶을 살다보니 어느 순간 주님을 향한 교제가 끊어지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다시 주님을 향한 첫 사랑을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처음 행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삶이 주님을 향한 마음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배를 회복하고, 교제를 회복하며, 기도와 말씀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맡기신 사역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