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내일을 위하여 오늘 믿음의 선택을 하라

비전의 사람 2023. 9. 1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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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하여 믿음의 선택을 하라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이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 (30:19-20).

 

사람은 하루에도 100번 이상 선택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하루가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어떤 나라에서 태어날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날지, 어떤 시대에 태어날지 등을 택할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한 선택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태어난 이후로 죽을 때까지는 주어진 환경과 시간에서 선택할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가정과 삶, 건강과 사업이 슬픔의 인생이 될 수 있고 기쁨과 행복의 인생도 될 수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삶이 행복하지 못하고 뒤죽박죽이 되어 있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며 새롭게 인생을 회복해야 합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끝난후 두 병사가 고향으로 가다 언덕에 있는 교회를 발견했습니다. 한 병사는 교회에 들어가 감사기도를 드리자고 했고 한 병사는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후, 술마시자고 한 병사는 알콜중독으로 범죄자가 되어 교도소에 들어갔는데 어느날 신문을 보다 깜짝놀랐습니다. 그것은 미국의 22대 대통령에 클리블런드가 당선되었다는 기사였습니다. 클리블런드는 전쟁후 자신과 함께 고향으로 가다 교회에 가자고 했던 전우였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두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았던 것입니다. 즉 어느 방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처럼 일생의 흐름을 바꾸어 놓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오늘의 삶의 선택이 내일의 삶에서 자신과 가족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하는 것이 최선의 삶인줄 알기에 신중하며 겸손하게 행하게 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사람이 하나님께 확신을 두고 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면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은 반드시 절망으로 마치게 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결정하는 모든 행사는 결국은 절망과 파멸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선택이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한 우리의 선택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I. 우리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30:19).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사망, 그리고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 앞에 생명과 사망의 길을 두셨을까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심으로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침반으로 삼아 하루 하루의 삶과 순간의 선택을 올바르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선택은 우리와 자녀들의 삶에 무척이나 중요한 영향력을 주게 됩니다. 왜 우리의 삶의 선택이 중요할까요?

 

1. 선택은 씨앗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6:7).

 

씨앗은 작지만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씨앗이 땅속에서 나와서 열매를 맺게 되면 30, 60, 100배의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씨앗은 미래의 열매인 것입니다.

 

오늘 봄에 어떠한 씨앗을 심느냐에 따라서 추수때에 원하는 열매를 얻을수가 있습니다. 농부가 고추를 심고 참외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고추의 씨앗에서 수박이나 참외를 수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농부의 믿음은 그 씨앗을 심을 때에 중요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오늘 무엇을 심을지 순간으로 결단해야 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6:8). 육체를 위하여 살아가는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가 썩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됩니다. 이는 영원한 것을 천국에서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심으면 사랑의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으로 심으면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열매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존경을 심으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을 심으면 미래에 그 꿈의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미래는 오늘 어떤 것으로 생각속에 심고 마음에 심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2. 선택은 인생의 방향입니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4:19).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주님의 부르심에 베드로와 안드레가 주님의 제자가 되어 따르기로 결단합니다. 그들이 주님을 따르기로 결단한 것은 그의 인생의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살던 어부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를수도 있고 자아 중심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삶은 제자로서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누리며 풍성한 삶을 향한 순종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의 정하는 선택은 인생의 방향입니다. 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은 다니엘과 같이 세상적인 것으로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않고자 하는 거룩에 대한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주의 백성으로 살고자 결단했습니다. 함께 신앙 생활했던 친구들은 주님을 떠나 있기도 합니다. 그들은 어린시절 세상을 택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도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의 고별 설교를 기억합니다.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24:15). 하나님을 섬기고자 결단하는 믿음의 가정은 그 자손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3. 선택은 삶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13:44).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는 시금석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의 비유를 하시면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밭보다 보화의 가치가 수십배 더하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가치는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서 사람의 가치는 어떻게 알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의 선택하는 기준을 보게 되면 그 가치를 알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스탈린 시대 때, 보리스 콘펠드라는 젊은 유대인 의사가 스탈린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을 했다 해서 체포를 당했습니다. 시베리아의 집단 강제 수용소에 수용되었는데, 마침 그 수용소에 그리스도인이 한 사람 있어 이 유대인 의사에게 집요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의사도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그리스도인의 집요한 전도 끝에 드디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의사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영혼의 자유와 평안을 얻고 나서 두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첫째는 이 놀라운 사랑을 가르쳐 준 그 그리스도인처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겠다는 결심이고, 또 하나는 나에게 기쁜 소식이었던 이 복음을 나도 전하면서 살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수용소 안에서도 그는 의사로서 있었는데, 부정이 횡행하는 그 곳에서 의사로서의 활동은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고, 또 부정에 협조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지만 그는 일체를 거절하고 신앙인답게 살아갔습니다. 그때 한 젊은 사람이 암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그의 수술환자 명단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의사는 그를 수술하기로 결심하고 수술을 했습니다. 이 소문이 알려지자 규칙을 어겼다 해서 그에게는 말할 수 없는 박해가 왔습니다.

 

어느 날 밤, 이 의사는 자기가 수술했던 젊은이 곁에 앉아서 밤늦도록 그에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에 대해서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 이 의사는 처형을 당했습니다. 처형당하기 직전에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선택에 후회함이 없소?이때 그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후회함이 없습니다.그는 한 영혼을 사랑했고, 복음을 전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약속을 그에게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이 의사로 인해 살아난 젊은이가 바로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알렉산더 솔제니친입니다. 그는 의사의 복음 전도를 통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구소련의 스탈린의 만행을 소설로 기록한 수용소 군도를 통하여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인물입니다. 유대인 의사가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는 결정을 내린 동기는 오직 영혼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강한 믿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선택한 것에 후회가 없습니까? ,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후회함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리스 콘펠트라고 하는 그리스도인의 가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물질이나 쾌락을 위하여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헐값에 팔아버리는 것입니다. 직장과 가정에서 직장을 우선순위에 두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물질에서 물질을 우선순위에 두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일과 관계에서 관계를 희생하고 일을 우선순위에 두는 경우가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가치를 팔아 재물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팔아 가치를 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야 할 소중한 가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결정이 세상의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에 근거해서 결정하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II.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나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비결은 끊임없는 세상의 도전에 맞서서 믿음의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세상에 우리의 믿음을 양보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 분을 기뻐하는 삶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미래의 삶이 행복이 가득한 삶을 누리기 위한 우리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1. 어리석은 길을 버리고 지혜로운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1:7).

 

불행한 삶의 시작은 어디에서 시작하나요? 불행한 삶의 시작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의 비결은 자신의 노력이나 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참된 행복과 만족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함을 인생의 근본으로 삼는 것입니다. 욥은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28:28) 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몽골로 선교사로 간 이용규 선교사의 내려놓음에는 이러한 간증이 실려있습니다. 2005년에 몽골에서 개척한 한 에배 처소를 방문해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벌러르라는 소녀가 땀을 흘리며 교회 안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예배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린 소녀는 소를 찾으로 뛰어다니다가 예배 시간이 임박하지 말씀을 듣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두고 달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때 이 선교사님은 소가 아닌 예배를 선택한 믿음의 결단을 부끄럽게 하지 말아 주시기를 기도하며 이 소녀가 소를 찾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때 예배를 마치자마다 바깥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소녀는 소를 찾을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소녀가 소를 찾기 전에 소가 예배 처소를 찾아온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그 소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었고 소도 찾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6:33) 라고 하셨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되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할만큼 강팍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귀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율법적인 태도를 버리고 은혜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29).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율법적인 태도에는 자신이 옳고 다른 사람이 틀리다는 자만심과 교만의 마음이 중심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7:1) 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비판은 더 큰 비판을 불러오게 됩니다. 자신은 모르지만 그 비판을 들은 사람들은 더 큰 비판으로 그 사람을 정죄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서로에게 불행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마음은 다른 사람을 섬기며 이해하며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한 것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용납하며 용서하는 마음은 서로에게 큰 복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은혜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하셔서 우리를 이해하십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셔서 우리보다 낮은 십자가에서 섬겨주셨습니다. 율법이 있는 곳에는 정죄와 판단이 중심이지만, 은혜가 있는 곳에는 사랑과 용서가 중심이 됩니다. 큰 자는 누구인가요? 큰 자는 율법의 마음을 가지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마음으로 용서하며 품을 수 있는 자입니다.

 

우리가 율법의 마음을 품고 정죄하기 시작하면 주위 사람들이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그 정죄가 결국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마음에는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허물을 정죄하지 않고 용서해주며 품을 수 있는 사람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허물과 연약함을 내려놓고 그러한 사람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CBMC 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건물의 청소를 맡게 되었고, 첫날 인수인계를 받아서 청소를 하였습니다. 진공청소기를 지하에서 지상 3층까지 카페트를 청소하였습니다. 다음날 보니까 제가 큰 실수를 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공청소기의 고무가 잘못 끼워져 카페트에 검은 줄을 남긴 것입니다. 제가 근무 첫날에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를 책망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이해해 주었습니다. 한 분은 저를 안아주면서 이렇게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불에 타서 없어질 카펫보다 제가 더 소중합니다.그리고, 한국의 경제위기(IMF)가 찾아왔을 때에 저의 이름으로 수표를 봉투에 넣어서 사무실 문에 붙이고 퇴근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순간을 지금도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온 신학생을 위해서 주님의 사랑으로 축복하며 섬겨주신 그 분들의 사랑이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저희가 유미를 낳자 그 분들이 아내와 유미를 초청하여 BABY SHOWER를 해주면서 많은 선물로 섬겨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로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납하며 용서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셨고 날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풍성하게 채우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의 마음을 품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행복의 삶을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3. 강팍한 마음을 버리고 순종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3:15).

 

순종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통로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는 믿음의 삶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가나안에서 행복을 꿈꾸었지만 실패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강팍한 마음을 가지고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했지만 불순종으로 인하여 불행하게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순종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순종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의 표식입니다. 하나님께 절대적인 순종은 절대적인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과 평안을 위해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원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배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거하는 삶은 안정과 평안,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이 힘들고 지치고 무거운 짐을 지는 이유는 자신의 힘대로 살아가려는 자아의식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을 선택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짐을 지시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11:28-30). 우리의 무거운 짐을 주님께 가져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무거운 짐을 지실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순종하며 그 분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헨리 블랙커비는 하나님 음성에 응답하는 삶에서 순종의 중요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블랙커비 목사님이 처음 집례한 장례식은 어린 꼬마의 장례식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성도의 첫 아이었던 것입니다. 목사님이 그 집에 심방을 가서 보니 그 아이는 부모님의 말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오라고 하면 가고, 앉으라고 하면 일어서는 것입니다. 부모는 그런 행동을 책망하기 보다는 그저 귀여워했습니다. 하루는 그 집 앞마다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딸 아이가 마당을 빠져나가 길 쪽으로 가는 것이 부모의 눈에 띄었습니다. 저쪽에서 차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딸아이는 주차해 둔 두 대의 차 사이로 빠져나가 도로 쪽으로 달려갑니다. “안돼! 돌아와!” 부모가 다급한 목소리로 어린 딸에게 외칩니다. 아이는 잠깐 서서 부모를 보고 씩 웃더니 다시 돌아서서는 달려오는 차 쪽으로 곧장 뛰어들었습니다. 차는 아이를 세차게 들이 받았습니다. 아이의 죽음 앞에서 터져 나오는 부모의 통곡은 큰 슬픔의 비통함이었습니다.

 

그것은 한 아이가 부모의 말에 순종하도록 훈련되어 있지 않아서 일어난 비극입니다. 이때 블랙커비 목사님은 큰 교훈을 얻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 분의 음성이 들릴 때 반드시 즉각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주의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한 삶의 근원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영적인 리더인 목회자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영적 리더인 목자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을 받는 통로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승리의 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올바른 선택을 하고 계신지요? 어리석은 길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의 길을 선택하십니까? 율법적으로 정죄하는 삶이 아니라, 은혜로써 용납하며 포용하고 있는지요? 불순종의 길이 아니라, 순종의 길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는지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행동하는 것은 미래의 삶을 위하여 날마다 심는 것입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승리함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하며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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