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삶

비전의 사람 2023. 12. 2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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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116:12).

 

오늘 우리는 시편 기자의 고백을 함께 고백하고자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116:12). 시편 기자는 자신의 고난 가운데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면서 무엇으로 보답할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마음에 살아있는 역동성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은혜는 우리가 받은 호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으로 호의를 베풀어 주셔서 영원한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보좌를 은혜의 보좌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4:16). 하나님의 보좌는 은혜의 보좌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의 수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 145편에서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145:8, 19)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가뭄이 찾아와 땅이 말라갈 때에 그 땅의 식물이 생존할수 있는 비결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되듯이,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사모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인색하거나 마음이 좁으신 분이 아니라, 은혜에도 풍성하시며 부요하시며 사랑의 하나님으로서 신실하게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3:22-23) 라고 고백했듯이, 우리의 하나님도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며 아침마다 자비를 베푸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으로 깊이 기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인가요?

 

첫째,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2:8-9).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은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을 떠나서 천국에서 영원히 살수 있는 영생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나 행위의 결과가 아닙니다. 우리가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노력으로 천국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값을 주고 사는 것이라고 한다면 구원이 은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선물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심으로 얻은 대가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삶을 살아도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고 결국은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당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 안에서 천국의 확신과 소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의 대가를 죽음으로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서신을 통하여,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8:32)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고 구원하셨습니다. 구원을 향하여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구원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성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리시고, 우리에게는 은혜를 주셔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의 특징이 있다면 행위 중심인 것입니다. 내세에 더 좋은 곳에 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종교적인 일들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단들의 특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곳에서 구원의 조건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필요한 모든 값을 치루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는 자에게 구원의 선물을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선물인 구원의 은혜를 받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혀 하심이니라.” (3:16).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자는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믿음의 경주에서 힘주시는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딤후 4:17).

 

우리는 믿음의 경주자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주자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지만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열광하는 경주장에서 어렵고 힘든 장애물을 만났을 때에 포기한다면 얼마나 실망스러운 경주가 될 것인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나, 힘들어도 끝까지 달려가는 자를 존경하며 모두에게 큰 격려가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12:1-2). 우리의 경주를 경주할 때에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며 힘을 얻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버리고 떠남으로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다고 고백하며 자신의 좌절감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굳게 서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었던 비결은 주님께서 곁에 서서 강건케 하시는 은혜를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사도 바울 곁에서 그를 강건케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강건하시는 은혜를 경험한 사도 바울은 주님이 허락하신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게 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7). 사도 바울이 믿음의 경주를 달려갈 수 있었던 비결은 주님의 도우시는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포기하고픈 순간들을 만나곤 합니다. 특히 믿음의 경주에서 우리는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유혹을 만날 때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사탄은 삼킬 자를 찾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8). 특히 이 시대는 유혹이 많은 시대를 살아갑니다. 성적인 유혹을 비롯하여 물질과 쾌락에 대한 유혹이 찾아올 때에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피할 길을 허락하시고 승리하는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깨어나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 찾아오는 시험은 피곤에 대한 시험입니다. 주님의 사역은 많은 노동과 수고가 동반됩니다. 주님을 섬기다 보면 지치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다 보면 스스로 좌절과 절망이 찾아올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6:9).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피곤을 이기도록 도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고후 2:21). 우리가 피곤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견고케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에 우리는 더 이상 나아갈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때 인생의 어려운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지할 때에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게 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41:10). 하나님이 우리가 두려워하고 놀라는 순간에 함께 하심으로 도움의 손길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약함으로 혼자 설수 없을 때에 주님은 함께 하심으로 큰 도움이 되십니다. 인생의 경주에서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찾아올 때도 주님의 은혜는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앞으로 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1:6).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셨고 진행중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그 날까지 주님은 함께 하심으로 착한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전진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셋째, 우리는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8:32).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시는 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로마서 기자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8:37)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제한이 없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의 현장에서 하나님은 그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서 사도 바울의 필요를 채우셨습니다. 그리고, 누가를 통해서 의료적인 혜택을 받게 하셨고 바나바를 통해서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뵈뵈 자매를 통해서 은혜를 입게 되고, 루디아를 통해서 사역의 많은 필요를 공급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사랑하심으로 고난도 허락하시지만 동시에 필요를 공급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에 이렇게 선언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4:19).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는 분으로서 신실하십니다.

 

수년전에 안식월을 미국에서 여행으로 하면서 느낀점은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40일간 미국을 여행하면서 필요한 비용을 필요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공급하셨습니다.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가 컸고, 그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저의 필요를 아시고 필요한 순간에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서 게스트 하우스를 제공받기도 하고, 교회에 초청되어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에서 기거하며 필요를 공급받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기에 신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위를 아시기에, 우리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고 풍성하게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6: 30-3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미리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의 풍성하신 공급하심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려고 세상으로 달려갑니다. 자신의 힘으로 필요를 채우고 마음껏 즐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고멜이 자신의 옛 삶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갔을 때에, 그 후에 더욱 비참한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우리의 필요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점점 더욱 곤고한 삶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이 광야에서 힘든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필요를 채우셔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먼저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광야에서 고난중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총리가 되기 위한 필요가 무엇인지 아시고 채워주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경험하는 은혜의 통로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공급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비결도 소녀가 자신의 전부를 주님께 가져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루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원리를 배우게 된다면, 우리는 아무 염려하지 않고 주님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넷째, 우리가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였고 날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은혜를 받은 자로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마음으로 공감하기를 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도록 사도 바울은 열심히 수고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주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이 받은 은혜를 알기에 사도 바울은 자신을 향하여 빚진 자라고 고백하였습니다. ,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이제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빚진 자의 심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은 자로서 은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모든 감사의 제목이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임을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그 필요를 나누어 주는 통로가 되고자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흘러가 통로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 은혜의 통로가 선교이며 구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체들간의 필요를 보면서 서로를 향하여 돕는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용서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완고함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향한 은혜의 마음으로 품고 용서하며 한 마음으로 섬기고자 하는 넓은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좁고 완고함에서 벗어나 넓은 마음을 품도록 기도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넓은 마음이란 많은 사람들을 품고 용납할수 있는 은혜의 마음인 것입니다. 다윗은 요나단이 베풀어준 은혜를 기억하면서 그의 아들인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풀어 줍니다. 그는 불구가 되어 곤경에 처해서 환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왕의 식탁에서 함께 가족과 같이 식사를 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요나단이 자신에게 베푼 은혜를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적어도 므비보셋에게 은혜의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반역한 압살롬을 향하여도 은혜의 마음을 품고 용서합니다. 심지어는 자신을 향하여 칼을 겨누는 사울을 향하여도 용서하는 은혜의 마음을 품었던 것입니다. 은혜의 마음은 하나님의 넓은 마음이며 용서하는 마음이며 겸손의 마음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는지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힘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격려가 필요한 자들을 향하여 사랑의 손길을 내밀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은혜를 생각하면서 더 어려운 지체들과 이웃들을 향하여 사랑의 섬김을 실천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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