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선한 청지기로의 부르심

비전의 사람 2024. 2. 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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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청지기로의 부르심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4:10)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사역을 위하여 사람을 부르셔서 일하게 하십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거룩한 성막을 지으신 후에 아론의 자손들을 제사장으로 구별하여 성전에서 섬기게 하셨고, 레위 사람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성막의 뜰에서 섬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큰 축복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65:4). 하나님께서 택하사 가까이 오게 하셔서 성전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전의 아름다움을 보며 만족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기면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인하여 기뻐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과의 이스라엘의 관계는 시내산에서 성막을 짓는 것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자원해서 성막에 필요한 재료를 헌신하였고, 하나님의 성막을 위하여 일군들이 부르심을 받아 일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중에 브살렐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였고 지혜를 얻어 하나님의 성막을 건축하는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레위 자손들은 성막에서 섬길 때에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고핫 자손들은 거룩한 성물들을 메고 이동해야 햇습니다. 그리고 게르손 자손들은 성막의 휘장과 덮개등을 책임져야 했고, 무랄리 자손들은 널판과 띠와 기둥들을 책임지고 옮겨야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성물과 덮개 및 보조 기구들은 모두가 구별된 레위 자손들에 의하여 설치가 되거나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사장들을 통하여 제사를 드리며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드려진 희생 제물을 단 위에 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약에 이르러서는 하나님께서는 믿는 모든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믿는 자들은 성도가 되어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우리를 향하여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는 하나님께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인정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전 성도의 만인 제사장직분을 믿습니다. 만인 제사장직에 대한 이해는 여러 측명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구약 시대와는 다르게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리며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이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 교회에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거룩한 교회에서 섬길 수 있는 것은 영적이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삶의 목표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에서 섬기는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선한 청지기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분의 사역으로 부르십니다. 베드로전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서 거룩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으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벧전 2:5).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집에서 섬기는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집으로 비유한다면 오이코스 즉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집을 세우는 것을 오이코도메오 라고 합니다. 집을 세우기 위해서는 집을 세우는 자가 필요합니다. 집을 세우는 자는 집을 책임지고 관리하며 세우는 청지기입니다. 즉 오이코노모스입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집을 관리하며 세우는 청지기가 있는 것입니다. 집을 세우는 청지기가 바로 교회의 지체된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집을 세우기를 기대하십니다. 집을 세운다는 것은 성도를 서로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우리의 집을 세우는 것이며, 우리의 집을 세우는 것은 성도를 서로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바로 영적인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선물로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영적인 은사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4:7)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은혜를 주셨는데, 구원의 은혜와 더불어 은사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은사를 주신 이유는 우리가 주님안에서 섬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서 교회를 세우도록 주신 것이 은사입니다. 로마서와 고린도전서에서는 우리에게 주신 은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12: 4-8)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고, 그 지체는 다른 기능을 하면서 몸을 세워갑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각 지체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은사는 믿음, 섬김, 가르침, 위로, 구제, 리더십, 긍휼 등의 은사가 있습니다. 이러한 은사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데에 있습니다. , 교회를 세우는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생명력있는 유기체적인 조직입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12:4-5) 우리의 생명력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하여 발산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고, 몸의 각 지체는 다른 기능을 하면서 건강한 몸을 세우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는,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은사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7).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영적이 은사를 통하여 어떻게 교회에서 지체들을 세워가며 교회를 세워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으므로, 그 은사를 귀하게 사용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영적인 은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은사가 있지만, 교회의 어떠한 영역에서 섬겨야 할지를 알지 못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여 교육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는 자신의 은사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판단하기도 하여 혼란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러한 은사는 하나님의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도록 주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과 연관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는 것은 교회에서 어떠한 소명을 갖는 것인가를 알고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2. 선한 청지기는 충성스러운 종의 자세를 갖습니다.

 

“...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벧전 4: 10)

 

우리가 봉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청지기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청지기는 종입니다. 종의 자세는 낮은 자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청지기가 갖추어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요?

 

첫째, 하나님의 청지기는 충성해야 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1-2).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세는 충성입니다. 충성이라는 것은 신실한 자세입니다. 즉 하나님이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하여 섬기는 자세입니다.

 

청지기는 집을 맡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집을 맡은 자로서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영적인 집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부르셔서 교회가 되었고, 그 분의 교회를 거룩하고 순결하며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그 분의 집에서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집에서 충성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3:1-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 분은 우리의 시도시며 대제사장이십니다. 그 분은 자기를 세우신 하나님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에 하나님의 온집에서 청지기를 충성했습니다.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3:5). 모세가 하나님의 집에서 사십년간 충성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대로 순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가나안으로 인도했던 종이었습니다.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3: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집입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가 거하시는 집인 교회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신 것은 그분의 교회를 세우시는 일에 충성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반석이시며 머리가 되시며 그 분의 몸인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를 입은 자로서 그 분의 집인 교회에서 청지기가 되어 그 분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문경의 한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때 출동했던 소방관이 화재를 진압하면서 두 명의 소방관이 순직하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습니다. 불타는 공장에서 나오는 사람을 보고 혹시나 사람이 있을까 해서 불타는 공장으로 진입했다가 두 명이 화재 현장에서 나오지 못하고 순직한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잊고 화재 현장에서 인원을 구조하려는 희생 정신에서 결국 순직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순직이 큰 아픔이며 상처이지만 분명한 것은 소방관으로서의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집에서 맡겨진 일에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 하나님의 집에서 섬기는 사역임을 잊지 말고 충성스럽게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낮아짐입니다. 즉 우리는 청지기로서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청지기로서 우리는 하나님과 교회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청지기가 주인이 있는 집에서 함부로 대하고 교만하면 그는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는 주님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지체들을 섬기고 사역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낮은 자의 자세가 배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복음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 종의 자세를 가지셨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 5-8)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신분의 지위를 포기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마음을 비우셨고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청지기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상적인 신분과 지위에 대한 우월의식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있는 자아와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청지기의 삶에 가장 소중한 요소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연하게 이 땅에 태어나서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8:42)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실 때, 재능과 물질과 건강과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한 후에, 아버지되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 만큼 더욱 겸손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탁월한 사역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이 구원을 받았고 참된 진리를 깨달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신을 은혜로 받아주시고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더욱 주님을 섬기는 일에 수고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기에 더욱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겸손한 청지기의 모습을 자신이 무익하다고 고백하는 종의 모습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찌니라.” (17: 7-10)

 

진정한 청지기는 자신이 섬기며 봉사하는 것에 대하여 의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분이 종이기에 자신이 하여야 할 일을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종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가 부어 주시는 풍성한 은혜안에서 살아갑니다. 말씀과 기도, 예배를 통하여 풍성한 은혜의 꼴을 먹고 성장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섭리를 통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종으로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3. 선한 청지기는 주어진 사역에 헌신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4: 10)

 

주님은 우리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하십니다. ‘봉사하라의 의미는 서로 섬기라, 돌보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봉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사역에 헌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역이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서로가 청지가가 되어서 서로를 섬기며 돌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기 위해서 봉사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0:28)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희생의 대가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봉사는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게 됩니다. 이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섬김을 받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 더욱 하나님을 잘 섬기게 됩니다.

 

교회에서의 섬김은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게 합니까? 교회에서 안내를 하며 인사를 하는 성도로 인하여, 성도들이 교회에 들어오며 섬김을 받고 마음의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안내 위원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통하여 찬양 사역으로 섬기게 될 때, 회중들이 찬양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며 마음속에 치유를 경험합니다. 이분들은 찬양의 은사를 가지신 분입니다. 이분들의 찬양은 우리의 마음을 녹이게 됩니다. 다윗도 찬양의 은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수금을 타면 사울에게 임한 악한 영이 떠나게 되고, 그의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우리 교회에 워십의 은사가 있으신 분이 있습니다. 이 분들의 워십은 하나님의 영광이 온 교회에 임하게 합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예술적인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교회의 홍보와 데코를 담당합니다. 이분들의 생각에서 나온 예술적인 감각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아름다움을 표현합니다. 어떤 분들은 섬김의 은사로 성도를 돌아봅니다. 성도들이 어려워하면, 이 분들은 함께 아파합니다. 함께 눈물을 흘리며, 마음으로 사랑을 전달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섬기시는 분들 중에는 드러나지 않고 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에도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몸 속의 장기나 뼈, 혈액, 인대 등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장기가 더욱 소중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섬기시는 분들은 음향 사역을 위하여 헌신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주방에서 섬기는 주부들이 계십니다. 교회 건물을 관리하시며 돌아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성도들을 위하여 매일 기도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교회의 차량을 위하여 헌신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주일 아침에 일찍 오셔서 주일학교를 섬기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교회 프랭카드를 위해서 헌신하시는 다자인을 하시고 인쇄를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교회의 필요를 위해서 큰 물질로 헌신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과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의 은혜를 깨달은 자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성취해야 할 하나님의 뜻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아버지께로 가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하실 일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분량대로 일들을 맡기시며 성취해 나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신실함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해 갈 때, 하나님은 큰 일을 맡기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임을 깊이 깨닫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나누어 드리는 주보가 소중하며, 우리가 섬기기 위하여 운전하는 차량 사역이 소중하며, 우리가 마음으로 드리는 찬양이 소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온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은사의 분량대로 그 일을 감당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순종하는 마음으로 함께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은혜의 삶을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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