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신실한 집사의 직분 (행 6:1-7)

비전의 사람 2024. 1. 27.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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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집사의 직분 (6:1-7)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6:3-4).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일군들을 세우십니다. 주님이 세우시는 일군들 중에는 하나님이 구별하여 세우시기도 하고, 스스로 자원해서 헌신하기도 합니다.

 

구약에서는 아론의 자손들은 제사장으로 구별되어 거룩한 성전에서 섬기는 직분을 감당했고 제사장들을 섬기기 위하여 레위 지파들이 구별되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이나 레위 지파의 사람이 아니지만 하나님을 자원해서 섬기기 위하여 자신을 나실인으로 헌신하여 드리기도 했습니다.

 

신약에 이르러서는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교회를 세우시면서 교회의 일군들을 구별하여 세우셨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두 가지가 있는데 목사와 집사입니다.

 

1. 목사는 교회를 목양하고 치리하는 영적인 리더입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20:28).

 

목사는 교회를 감독하며 양을 인도하는 직분으로서 교회의 영적인 리더로서의 책임을 가진 자입니다. 성경에서는 목사를 장로라고 부르기도 했고, 감독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는 기능적인 역할을 구별하여 사용한 단어입니다. 목사는 양을 인도하는 목자의 기능을 하는 것이고, 감독은 교회를 치리하며 감독하는 기능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장로는 교회의 연장자로서의 기능입니다.

 

사도행전 20장은 사도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보내어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오게 한 후에 고별 설교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20:17). 이때 사도 바울은 성령이 에베소의 장로들을 교회의 감독자로 삼고 주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20:28). 사도 바울은 장로와 감독, 그리고 교회를 치는 목사의 직분을 동일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하나님이 교회에 세우신 감독이며, 감독은 양들을 인도하는 목사라는 것입니다. 즉 교회를 치는 것은 교회를 영적인 양식인 말씀으로 먹이며 인도하며 돌보는 목사의 직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은 목사를 감독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딤전 3:1). 감독은 교회를 감독하는 기능을 의미합니다. 목사의 책임은 교회를 잘 감독하여 성경적으로 바르게 세워지도록 사역과 말씀, 행정을 감독하는 기능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목사의 지도력하에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디도서에서 사도 바울은 장로와 감독을 같은 직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1:5-9).

 

사도 베드로는 자신을 장로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양무리를 치도록 사명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벧전 5:1-2). 이와같이 성경은 목사와 장로, 그리고 감독을 같은 직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청지기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워 하나님의 종으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가정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방탕하는 일이 없이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감독은 자신의 고집대로 하지 않고 급히 분내거나 술을 즐기지 말아야 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야 하며, 바른 교훈을 가르칠 때에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는 교회를 인도하는 목사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 하나님께서는 주 안에서 장로요 감독인 목사에게 순종하는 겸손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히브리서는 영적으로 인도하는 목사에게 교회가 순종하라고 가르칩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13:17). 목사가 하나님이 맡기신 교회를 신실하게 잘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서 양들이 꼴을 먹어 영적으로 풍성한 삶이 되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2. 집사는 교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세워진 직분입니다.

 

교회에 목사의 직분이 있듯이, 또 다른 중요한 직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집사의 직분입니다. 직사의 직분이 세워지게 된 배경은 사도행전 6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6:1). 초대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는 지속적인 부흥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나면서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라고 했습니다.

 

성경학자인 렌스키는 당시에 믿는 자의 수는 20,000 - 15,000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수 만명의 사람들이 짧은 기간인 1-2년 사이에 모이게 되면서 여러 가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구제에 대한 문제가 교회의 갈등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 사람을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흩어져 살다가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온 디아스포라 출신의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히브리파 사람이란 이스라엘 땅에서 출생하여 성장한 유대인들을 의미합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이방 나라에 살다가 유대로 이주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본토 이스라엘 땅에 묻히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에 외국에 거주하던 많은 유대인이 말년을 이스라엘에서 보내기 위해 찾아왔고, 결국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과부가 되었습니다. 결국 외국 출신의 많은 유대인 과부가 예루살렘에 살게 되었고, 유대 사회는 구제 담당자를 세워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에 한계가 있었기에 예루살렘의 사회적인 문제가 교회에까지 미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의 원성이 교회 안에서 높아지자 사도들은 이 문제를 중재하기 위하여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때 사도들은 문제들 앞에서 영적인 우선순위를 분명히 했습니다. “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6:2). 사도들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제와 같은 일들로 인하여 사역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집중해야 할 것은 복음의 말씀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고, 그들의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며 닮아가는 제자들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했습니다. 공궤를 일삼는다는 영어로 serve tables, wait on , ‘식탁을 섬기다. 식탁에서 기다리다. 또는 식탁에서 봉사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섬기다의 디아코네오먼지가 일어날 만큼 분주히 움직이다, 열심히 일하다, 봉사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집사의 뜻은 디아코노스로 섬기다라는 섬기는 자입니다. 즉 식탁에서 섬기는 자와 같이 교회에서 섬기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섬기는 것은 말씀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교회의 보이는 필요인 구제나 재정, 그리고 건물 관리와 같은 사역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디오코니아는 봉사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집사라는 단어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이는 집사의 역할이 교회에서 어떠한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 교회의 행정이나 재정, 그리고 시설을 잘 관리하여 사역이 잘 감당되도록 봉사하는 업무인 것입니다. , 목사와 같은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복음 사역에 집중하도록 행정적인 업무를 돕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즉 집사는 교회의 필요인 교회의 시설을 돌아보거나 구제 사역에 참여하고, 교회의 재정을 관리하는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3. 교회는 영적인 자격을 지닌 자를 집사로 선출하였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6:3-4).

 

사도들은 교회에서 섬기는 자인 집사를 선출하면서 영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비록 교회의 구제의 일을 감당하는 자로 세웠지만, 세상적인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세웠습니다.

 

영적인 기준의 첫 번째는 성령의 충만함이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임을 의미합니다. 이는 감정적인 황홀경에 빠지거나 감정적으로 복받쳐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 채움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며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은 성령의 충만을 가져오게 됩니다. 만일 아무리 믿음이 있다하더라도 불순종의 죄가 있거나 죄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성령으로 충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기쁨과 평안의 삶을 살아갑니다.

 

스데반은 집사로 선출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당하는 모습을 향하여 성경은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7:55) 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고 돌에 맞아 순교의 순간까지도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였습니다. 빌립도 선출된 집사였습니다. 빌립도 성령이 충만하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우리도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은 성령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며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를 붙드시며 말씀에 능력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의 집사는 성령으로 충만한 자를 선출했습니다.

 

영적인 기준의 두 번째는 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지혜가 충만하다는 것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처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과 행실이 바르게 행함으로 올바르게 살아가며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살아갑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올바르며 의롭게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성령이 충만하다고 해도 지혜가 없다면 공동체로 모인 교회에서 덕이 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은 교회에서 칭찬을 들을만큼 좋은 평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은 위로부터 오는 지혜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으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3:13-18).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자는 시기와 다툼의 행실을 피하게 됩니다. 시기와 다툼으로 욕심을 내는 자는 세상적이며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거룩하고 화평하며 관용하고 선한 열매가 가득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편견을 갖거나 거짓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여 지혜와 믿음이 가득한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가 제시하는 기준에 따라서 교회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일곱 명의 집사를 선출하게 됩니다. 그들은 스데반과 빌립과 니골라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들이 기도하고 안수함으로 직분자로 세웠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 전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집사들은 구제와 같은 행정과 봉사의 일을 담당하면서 교회의 필요를 채워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균형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디모데전서는 집사의 자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딤전 3: 8-13).

 

집사는 교회의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목사의 자격과 더불어 집사의 영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집사는 단정해야 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술에 인박이지 말아야 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말고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집사의 아내들도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집사는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자녀와 자신의 가정을 믿음으로 잘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집사는 교회의 직분자로서 교회에서 믿음 생활과 예배에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집사는 하나님이 교회를 잘 섬기라고 세워주셨기에,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먼저는 믿음과 예배, 헌금 생활 등 모든 삶에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자는 아름다운 지위와 믿음에 큰 담력에 얻게 됩니다.

 

4. 교회가 교회는 지속적인 부흥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6:7).

 

성경은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언급합니다. 특히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고 했습니다. , 성전에서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던 자들이 자신들의 직분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남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는 예루살렘에 큰 충격적인 일이었고, 유대교 내에서는 치욕적인 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성경학자에 따르면 예수님 당시의 일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모두 18,000 명 가량이었고, 이중 8,000 명 정도가 제사장들이었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허다한 제사장들도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교회의 생명의 본질인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본질에서 떠나서 탁자를 섬기는 것이 주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초대 교회가 구제의 사역을 필요에 따라서 시행했지만,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교회가 말씀 외에도 구제와 같이 식탁을 섬기는 사역이 늘어날수록 영적인 기준을 갖춘 집사를 세워서 교회가 지속적으로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말씀과 기도가 중심이 되어 세워질 때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다양한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영적인 기준을 충족되는 성도를 세워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세워지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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