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구령의 열정을 회복합시다 (행 2:37-42).

비전의 사람 2024. 3. 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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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령의 열정을 회복합시다 (2:37-42).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2:40-41).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수 많은 사건들과 이슈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가족을 위하여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아니하고,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삶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산다 할지라도 그 삶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가치와 방향에서 하나님이 뜻하신 그 길로 가야 합니다. 우리의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향은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을 향하여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를 구원하신 이후에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서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복음을 전하셔서 구원하셨고, 수가성의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시는 곳곳마다 복음을 전하셔서 영혼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주님과 같이 사도 바울도 구원받은 이후에 삶과 사역의 방향을 분명히 했습니다. 빌립보서 314절에서 사도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3:14)고 했습니다. 모세가 가나안을 향하여 믿음으로 광야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에 자신의 생애를 바쳤습니다. 이와같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을 향하여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 길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의 목표와 방향이 주님이 주신 사명, 곧 복음 증거하는 일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 사도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삶을 드렸던 이유는 주님이 주신 고결한 사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삶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되고 있는지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삶의 모습대로 다시 한번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초대 교회의 복음의 열정은 기도의 열정에서 시작했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1:14).

 

주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은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을 입히우기까지 예루살렘에 머무는 것이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24:49).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한 마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기 바로 전에 주신 사명은 주님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바라보는 비전을 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전은 주님이 보내시는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초대 교회에 임한 성령의 역사는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즉 기도가 성령이 역하시는 통로인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권능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가 없는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이 만들어가는 종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스가랴서는 하나님의 역사는 힘이나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성령으로 된다고 했습니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4:6).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 영혼들이 구원받고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열정은 먼저 기도의 헌신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모일 때에 기도하고 흩어졌을 때에 복음을 전하는 열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함으로 성령으로 충만하면 주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7:7). 주님께서는 구하는 자가 찾으며, 찾는 자가 찾을 것이며,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사역을 위하여 필요한 성령의 충만을 구하는 것을 기뻐하시며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사모하며, 십자가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입술을 닫지 아니하고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고 했습니다. “내가 대회 중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가 주의 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대회 중에서 은휘치 아니하였나이다.”(40:9-10).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자는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입술을 닫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구원의 열정으로 충만하기 위하여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을 주시며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실 것입니다.

 

2. 초대 교회의 복음의 열정은 담대히 선포하는 사역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3:40).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복음 전도에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의 증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를 잠잠케 하시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수만의 군중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가르침은 율법사들이나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 달리 율법에 매여 종노릇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게 하고 참으로 자유케 하는 은혜를 얻게 하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율법사들은 정죄하기만 하고 생명을 얻게 하지 못했지만, 주님께서는 정죄하지 않으시고 믿는 자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온 인류를 위하여 죄 용서를 얻도록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 분의 죽으심은 시편 22편에서 보여주시는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성취하신 분이심을 믿게 했습니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22:16-18).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습이 예수님 오시기 천년 전에 기록된 시편에서의 증거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군사들이 주님의 손과 발을 못으로 찔렀고,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의 살이 떨어져 나가 뼈가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아 가지기도 했습니다.

 

이사야 53장에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습과 일치하는 것을 제자들은 보았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가시면서 조금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으시고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53:7). 예수 그리스도는 오직 세상을 구원하시는 희생양이 되셨기에, 그 희생의 대가를 기꺼히 지불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죄의 대가를 치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때 까지라도 어떠한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시 주님께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셨으며 말씀으로 가르치신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부활하신 주님이 가르치시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다시 뜨거워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가르치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인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24:32). 제자들은 엠마오로 가던 길에서 돌이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제자들과 만나 부활하신 주님을 알려주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오백 여 형제들에게 자신을 보이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사십일을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주님의 승천은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때 주님의 승천은 비밀스럽게 올라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승천은 수많은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1:9).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신 주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셔서 믿는 자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온 세상을 복음화하고 교회를 세워가도록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네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주님이 하신 사역과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이 단지 자신들이 본 것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증인이 되기 위해서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때로는 그들은 안락함과 가족, 심지어 목숨까지 내어놓아야 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증인이었기에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크신 구원의 은혜를 우리는 담대하게 증거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와 같이 내가 대회 중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40:9). 우리는 주님이 가져다 주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는 항상 기뻐하는 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슬픈 소식을 전하는 자는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가 가져다 주는 슬픈 소식은 듣는 자에게 큰 아픔을 주기에 전하는 자도 슬픔 속에 잠겨 있습니다. 그러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는 그 소식이 너무나 기쁘기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에 깨어 있다면 우리는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마라톤 경기는 42.195 km 를 달리는 장거리 달리기로 올림픽의 꽃이라고 불리웁니다. 마라톤 경기의 유래는 기원전 5세기 경에 그리스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유래합니다.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월등한 군사력으로 침공했지만,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마라톤이라는 평지에서 막아내고 승리하게 됩니다. 이때 그리스 용사가 그리스의 승리를 알리기 위하여 약 40 km 를 쉬지 않고 달려와 그 소식을 전하고 숨졌습니다. 그는 기쁜 소식을 전해서 그리스에 기쁨을 안겨 주기 위하여 40km를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명을 다했던 것입니다. 이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마라톤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이 주신 기쁜 소식, 즉 복음을 전하는 일을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큰 구원의 은혜를 나누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구원의 은혜는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셔서 생명으로 옮기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우리의 거처를 영원히 옮기셨습니다. 우리는 어두움에서 방황하다가 구원의 은혜를 입은 후에 빛 가운데 거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주님이 주신 구원으로 인하여 평화를 누리며, 삶의 만족과 기쁨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감으로 인생의 목적을 찾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초대 교회와 같이 주님의 증인으로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초대 교회의 복음 전도는 영혼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2:41).

 

초대 교회에서 사도 베드로는 강하고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으로 수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얻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2:40-41). 사도 바울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라고 선포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었고 순종하여 침례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해졌습니다.

 

초대 교회의 복음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이시고, 그 분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주이심을 믿는 무리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6:7).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제자의 수가 많아졌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전 중심으로 제사를 드리며 율법에 매여 있었지만, 그들은 성령이 제자들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능력과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부흥의 역사는 담대히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영혼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명령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16:1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은 한 영혼을 불타는 지옥에서 건지는 은혜를 얻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126:5-6).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씨는 눈물을 흘리며 뿌리지만, 하나님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오는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볼모지였던 한국에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토마스 영국 선교사는 성경을 가지고 한국에 입국하다 잡혀 순교의 피를 흘리기도 했습니다. 성서침례교회의 포스터 선교사님이나 잭 배스킨 선교사님 등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오셔서 복음의 씨를 뿌리셨습니다. 고난을 이기며 뿌려진 씨앗으로 수 많은 영혼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국 각처에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청년들이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하여 목회자나 선교사의 길을 가면서 하나님의 사역은 확장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봄을 맞이하면서 부활절과 창립 예배를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주신 명령을 생각하며 복음의 씨를 누구에게 전하여 구원을 얻게 할 것이며 고민하며 기도하고, 담대히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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