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

바울인물강해(8) - 복음의 선명한 기준

비전의 사람 2012. 11. 2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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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인물강해(8) - 복음의 선명한 기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딛 2:11-14).

 

초대 교회의 신앙은 구약의 성경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의존해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아직 성경이 완성되지 않은 시대였기에, 그들에게는 율법과 은혜에 대한 혼돈이 있었고 나아가 구원을 얻는 믿음에 대한 혼돈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혼돈에서 바울은 복음의 선명한 기준을 제시하며 초대 교회의 그릇된 신앙을 바로 잡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복음을 바르게 전하며 신앙의 기초를 확립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이 첫 번째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 세 가지의 어려운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첫째, 사도의 리더격인 베드로가 안디옥에 와서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유함을 타협하게 됩니다.

둘째, 바울은 자신과 바나바가 갈라디아 지역에 세운 교회들이 복음의 진리에서 타협한다는 심각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셋째,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온 몇 몇 유대인들이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은 복음의 선명한 기준을 제시하며,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리의 말씀을 증거하게 됩니다.

 

1. 안디옥 교회에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 도착하자, 그들은 모임을 열어 자신들의 간증을 나누었습니다.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이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행 14:27). 이러한 소식은 안디옥 교회에게는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대부분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이방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뻐하는 가운데, 바울은 신학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첫째는 베드로가 포함된 문제로서, 바울이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행동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 베드로의 행동은 복음과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하면서, 그는 베드로의 일치하지 않는 행동을 묘사하고, 그가 어떻게 베드로와 대면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갈 2:11-13).

 

베드로는 자신의 편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을 받아 이방인에 대한 벽을 허물었던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결정적인 시간에 자신이 믿는 바와는 다르게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욥바에서의 환상을 통하여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먹는 것이 잘못된 것이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처음에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안디옥에 임하는 것을 보고 바나바처럼 크게 기뻐했을 것입니다.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행 11:23).

 

그러나,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믿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기주장이 강한 자들이었기에,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에 대하여 큰 문제를 삼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자리를 급하게 피함으로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바나바를 포함한 다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도 함께 베드로를 따르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2) 바울이 베드로를 대면합니다.

 

바울은 베드로의 행동을 그냥 지켜볼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의 행동은 복음의 진리에 맞지 않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 (갈 2:14). 결국, 바울은 공개적으로 베드로의 위선을 질타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분명한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했습니다.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5-16).

 

바울이 베드로를 대면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위대한 사도로서 인식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초대 교회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하도록 세운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참으로 모든 사도들의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베드로의 이러한 행동에 큰 불편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베드로의 위선을 대면하여 자신이 믿는 바를 확실히 전할 필요를 느꼈던 것입니다. 바울은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2.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대한 심각한 보고를 듣습니다.

 

바울이 베드로와 직면한 문제는 신약시대에 일어난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안디옥에 문제를 일으킴으로 베드로가 위선적인 행동을 하게 했을뿐만 아니라,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디아 지역에 세운 교회들까지도 침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소식은 바울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생명의 위협을 극복하면서 세웠던 교회들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그리고 루스드라의 교회였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바울이 임명했던 교회의 장로들은 바울의 신뢰를 배신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강한 믿음을 가진 베드로가 유대인들의 위협에 위선을 할수 있었다면, 갈라디아 지역의 새로운 성도와 교회들은 얼마든지 유혹에 넘어갈 수 있었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으로 인하여 크게 실망했을 뿐만 아니라,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거짓 교사들을 향하여 크게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이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갈 1:6-9).

 

이들 거짓 교사들은 바울의 신뢰성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받은 자신의 사도적 소명을 방어했던 것입니다. (1:11-24). 바울은 또한 그들에게 예루살렘의 지도자인 야고보, 그리고,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그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청했음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바울은 이방인에게로 자신들은 할례자에게로 보내신 것을 동의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갈 2:8-9).

 

그리고, 바울은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베드로의 위선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대면해야 했던 일들을 나누었습니다.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갈 2:11-13).

 

바울에게는 갈라디아 교회에서 일어난 외식으로 인하여 큰 마음의 고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바울로 하여금 갈라디아서를 기록하게 하심으로, 후세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과 율법을 이해하도록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즉,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이가 없이 모든 사람은 율법을 지킴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진리를 깨닫게 한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3. 유대로부터 온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할례를 주장했습니다.

 

누가는 유대로부터 안디옥에 온 유대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행 15:1).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의 베드로의 외식과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에 침투된 유대주의, 그리고, 이제는 더 나아가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라는 잘못된 가르침의 도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이렇게 정리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갈 5:6). 바울은 자신의 고향 교회에서 할례로 인한 분쟁을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유대로부터 온 이들은 자신들의 믿음에 대하여 철저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바울과 바나바에게는 해결해야 할 큰 문제였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은 토론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토론이 긴장을 낳고, 긴장이 논쟁이 되어 큰 문제가 된 것입니다. 유대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조금도 자신의 주장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 교회의 갈등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서 회의가 열리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할례의 문제로 인하여 큰 다툼이 일어나자,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몇 명의 리더들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행 15:2).

그들이 예루살렘에 이르자 크게 영접을 받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나누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행 15:4).  그럼에도, 유대인의 그리스도인 중에는 바울의 간증에 대하여 강한 저항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행 15:5).   이때 베드로가 일어나 이방인들에게 자신들도 메지 못하는 멍에를 주는 것은 옳지 않으며, 저희도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임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행 15:10-11).

 

베드로가 확실하게 복음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한후에, 바울과 바나바는 다음의 말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간증하였습니다.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행 15:12).

 

1) 야고보가 논쟁에 대한 최종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가 할례와 율법의 논쟁에 대한 결론을 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여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행 15:19-20).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것은 교회의 역사에 중요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서의 결론은 구원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은혜로 말미암는 것임을 선명하게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같은 결정이 없었다면, 이방 세계에 세워진 교회들은 혼돈으로 인하여 큰 분리를 경험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 교회와 유대인 교회 사이의 분열은 더욱 커져서 아마도 다른 길을 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순수한 진리를 타협하지 않고 얻은 결정은 바울의 선교 사역에 더욱 큰 힘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결정은 예수님의 형제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가 영적인 안목으로 최종 결정을 내림으로 인하여 율법과 은혜의 논쟁은 마무리하게 된 것입니다.

 

2) 교회는 갈등을 해결할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은 베드로와 야고보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안디옥과 시리아, 길리기아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이에 유다와 실라를 선택하여 서신을 이들 교회에 보내도록 합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찌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행 15:28-29).

 

야고보는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의 전통을 지키도록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께로 오는것을 어렵게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교회가 우상의 재물과 피와 목졸라 죽인 음식을 허용한다면, 유대인들은 교회에 대한 선입관을 가지고 복음을 거절하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음행을 멀리하는 것인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경건한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구원의 증거로서 경건한 삶의 모습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엡 5:3).

 

유대와 실라는 안디옥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서신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자, 안디옥 교회는 큰 위로와 격려를 받게 됩니다. “저희가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행 15:30-31).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신실하게 사역을 감당하게 되고, 결국은 이차 선교여행을 안디옥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5. 오늘의 본문을 통하여 배우는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분명히 언급했습니다.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행 15:11). 즉,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선한 행위를 하거나 나쁜 행위를 함으로 인하여, 우리가 천국에 가거나 지옥에 가거나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도덕적인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다면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선한 행위를 쌓는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그는 위대한 복음의 진리를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롬 5:1-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진리는 위대한 복음의 진리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는,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이 안전하게 지켜집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으면,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4).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습니다. 이는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증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지켜주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하나요? 우리의 선한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이것인 바로 그리스도인의 두 번째 원리입니다.

 

2) 경건한 삶은 구원받은 자의 특징입니다.

 

거룩한 삶은 우리의 구원의 신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언급합니다. 우리는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10). 즉,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구원을 받았으며, 우리가 감당해야 할 선한 일은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경건한 삶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삶에서 믿음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는 그 믿음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성경적인 가치에 위배되는 것이 있다면, 그러한 모습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지상사명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20).

 

고린도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이러한 죄에 빠져 있었습니다. “...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 6:9-10).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격려합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전 6:11). 즉, 과거에는 술취하며 음란하며 방탕한 삶을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자 씻음과 거룩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거룩한 성도였지만, 그들은 아직도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표현합니다. “...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전 3:1).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고린도 전서를 통하여 그들의 육신적인 모습을 질책했습니다. 그 모습은 바로 교회에서 분열하고 있었고(3:3-4), 교만했으며(4:18), 음행하는 자가 있었고(5:1), 세상의 법정에서 서로 송사하였고(6:1-2), 믿음이 약한 지체들에 무관심했고(8:11-13), 주의 만찬을 하면서 취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러한 육신적인 문제를 대면하자, 고린도 교회는 변화하기 시작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변화된 이유는, 그들은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바울의 질책을 거부했다면, 그들은 사생아이며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 안에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있기에, 우리는 변화되어 주님을 닮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선한 삶이 결국은 삶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의 삶은 율법주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믿음에 선한 행실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침례를 받아야 하고, 기도를 열심히 해야하고, 예배와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율법주의적인 믿음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노력과 침례나 주의 만찬과 같은 교회 의식에 참여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입니다.

 

아브라함은 구약의 사람입니다. 그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의 구원은 율법이 있기 전이었으며, 심지어는 할례를 받기 전이었습니다. 그의 구원은 믿음으로 얻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롬 4:9). 아브라함은 할례의 의식을 받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침례나 주의 만찬, 그리고, 다른 신앙의 행동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딛 2:11-14).

 

디도서의 말씀에서와 같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아가며, 주님의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일에 열심을 내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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