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사무엘상 (22) -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종, 다윗(삼상 16 장).

비전의 사람 2024. 3. 1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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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2) -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종, 다윗(삼상 16 ).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삼상 16:12-13).

 

사울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이후에 사무엘은 사울을 떠나 라마로 가고 사울은 기브아 본집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로 이스라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삼상 16: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더 이상 사울로 인하여 슬퍼하지 말고, 이새의 아들 중 한 명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의 영적인 실패로 인하여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영적 지도자로서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부었기에 사울의 연속적인 불순종에 대하여 크게 슬퍼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슬픔에 잠기지 말고 다시 일어나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새의 아들중 한명에게 기름을 부어 차기 왕으로 삼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보내신 곳은 베들레헴이었습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베들레헴으로 보내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새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택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 ...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삼상 16:1).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무엘은 기쁨으로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주저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이 자신이 미래의 왕을 위하여 기름 부으러 가는 것을 알면 자신을 죽일 것이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이 행할 일에 대하여 가르치실 것이며, 기름 부을 자를 알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사무엘이 베들레헴에 이르자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며 평강을 위하여 온건지를 물었습니다. 베들레헴의 장로들은 사무엘이 사울 왕과 결별하여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혹시 사울의 화가 자신들에게 미칠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은 하나님께 제사하려 왔기에, 스스로 성결케 하고 함께 제사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새와 그 아들들도 제사에 참석하도록 알렸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을 보고 외모로 사람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장자인 엘리압을 보자 그의 탁월한 외모에 감동을 받아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삼상 16:6)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으로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엘리압의 출중한 외모를 보고 하나님이 기름부으실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마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하나님께서는 외모와 키를 보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달리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기준은 마음 보다는 외모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외모를 많이 보기도 하고, 직원을 선택할 때도 외모 중심으로 보기도 합니다. 외모를 중시하는 시대를 살아가기에 우리도 외모를 치장하기 위하여 많은 비용을 들이기도 하고 관심을 갖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진정으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마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보신다는 것은 삶의 동기와 추구가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중심을 보셨기에,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영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외모는 출중했지만 그의 마음은 시기와 질투가 가득했고, 불순종하는 마음이 강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성향을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은 하나님의 종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기에는 부족했던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인 아비나답과 삼마 등 일곱을 다 보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제 사무엘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이새의 일곱 아들 모두가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이새에게 다른 아들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새가 막내가 있는데 그는 양을 지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그를 데려오기 까지는 식사 자리에 앉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다윗을 보자 하나님께서 그가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삼상 16:12-13).

 

이새는 막내는 어리기에 양들을 돌보는 일에 보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새의 막내 아들인 다윗의 마음을 보시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왕으로 구별한 것입니다. 그 날 이후로 다윗은 하나님의 신에 크게 감동되었습니다. 즉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직분은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그 분의 사역을 위해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종이 되어 이스라엘을 의와 공평으로 세워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의 중보자가 되어 백성들을 위하여 대신 나아가는 역할을 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메시야라는 의미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임을 알고 있습니다. 즉 메시야는 하나님의 종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입니다. 구약의 왕과 선지자, 제사장은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베들레헴이 다윗의 동네이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베들레헴에서 나셨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천사가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전했습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2:11).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목자들은 천사가 전해준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2:15-16). 목자들은 다윗의 동네가 베들레헴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베들레헴으로 가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유다 지파의 자손이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유다 지파의 혈통으로 이 땅에 나셨습니다. 그 분은 유다의 사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땅에 나신 분이십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부은 후에 다윗은 여호와의 신으로 크게 감동되었습니다. 즉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마치고 라마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사무엘상 1614절은 사울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삼상 16:14). 사울이 하나님을 버리자 하나님께서 사울에게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이 사울을 번뇌케 하고 있었습니다. 즉 사울이 크게 심정인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신하들이 왕에게 수금 잘 탈줄 아는 사림을 구하여 악기를 타면 왕이 나을 것이라는 조언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사울은 신하에게 위하여 자신을 위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소년 중 한 사람이 사울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탈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삼하 16:18). 다윗을 아는 한 소년이 다윗이 수금을 잘 타고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이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고 하며 다윗을 천거했습니다. 즉 다윗은 전서로서 용맹하고 말에도 분별력과 능력이 있고, 외모로도 준수한 자라고 했습니다. 즉 다윗은 사울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이새에게 사자를 보내어 양을 치는 아들 다윗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새는 다윗을 사울에게 보내어 사울 왕 앞에서 섬기는 자가 되게 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크게 사랑하고 기뻐하여 병기 든 자로 삼았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탄즉 사울이 낫는 역사가 일어났고 악신이 그에게서 떠나갔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떠난 사람이고,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에게는 하나님의 신이 떠났지만,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신이 머무셨기에 그가 찬양하는 수금의 찬양이 사울의 고통을 이기게 하는 해결책이 된 것입니다.

 

사무엘상 16장의 말씀이 주는 교훈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

 

사람은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외모가 출중했지마 그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와같이 이새의 형들은 외모가 탁월했지만 하나님께서 외모를 보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새의 막내 아들이고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인 다윗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냐하면 다윗의 중심에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게서 다윗의 중심을 보시고 그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연단하셔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기에 마음을 지켜서 말씀으로 빚어지고 주님을 닮아가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삶을 살았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은 겸손하게 섬기는 종의 마음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기름 부으셔서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 2:20).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기름부으셔서 거룩한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는 외적으로는 아직 변화된 것은 없었습니다. 그에게 왕권이 주어진 것도 없고 그에게 군사력이나 외교력이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왕이 된다는 증거로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성령이 충만하여 믿음이 더욱 굳건해 졌습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기름 부으신 하나님을 시편에서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나이다.”(92:10).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성령으로 다윗에게 임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한 기름인 성령으로 부으셔서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성도란 거룩하게 구별된 자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받았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심으로 성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습니다. 즉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믿음의 담대함을 얻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성령의 내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더욱 성령이 충만한 삶을 통하여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 찬양의 능력은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킵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145:1).

 

사울은 하나님의 영이 떠난 이후에 하나님이 부르신 악신으로 인하여 번뇌하며 고통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불안과 두려우므로 고통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울은 다윗이 타는 수금으로 인하여 마음이 상쾌해지고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용사이면서 동시에 음악가였습니다. 그는 수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그가 연주한 악기와 그의 찬양은 듣는 사울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큰 기쁨과 영광이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100:4)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기쁨으로 찬양하며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찬양을 부를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며 기뻐합니다. 하나님께서도의 우리의 찬양을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성에서 찬양은 영혼에 감격과 은혜가 넘치게 하기에 더욱 힘써 찬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도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것이라.”(69:30-31)라고 했습니다. 황소를 드림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찬양입니다.

 

에베소서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5:19)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시와 찬양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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