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사무엘상(23) - 골리앗을 향한 다윗의 믿음(삼상 17:1-40)

비전의 사람 2024. 4. 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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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23) - 골리앗을 향한 다윗의 믿음(삼상 17:1-40)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삼상 17:36).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스토리 중의 하나가 바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주일학교 때부터 다윗이 물맷돌 다섯 개로 골리앗을 쓰러트린 것을 배우곤 했습니다. 사무엘상 17장은 블레셋 사람들이 전쟁을 위하여 군대를 집결한 것으로 시작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삼상 17:1). 사무엘상의 배경은 블레셋과의 적대적인 관계에서 시작합니다.

 

엘리 제사장 시대에 블레셋 사람에게 전쟁에서 패한 후에 언약궤를 빼앗겼지만, 사무엘 선지자가 사사로 활동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블레셋 군대를 패배시켰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세워진 목적도 블레셋 사람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마지막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블레셋 사람에게 패한 후에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울은 그가 싸워서 이겨야 할 블레셋 군대에게 도리어 패배하고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할 세상의 죄를 극복하지 못하면 도리어 세상의 죄에게 무너지고 영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은 후에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 군대는 다시 전쟁하기 위하여 대치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대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삼상 17:1-2). 그들은 엘라 골짜기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대치하고 있을 대에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삼상 17:4).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가드 사람 골리앗이 나와서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드는 블레셋의 다섯 도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의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라고 했습니다. 여섯 규빗은 약 2.9m의 크기입니다. 그리고 그는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며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의 무게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리에는 곳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창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했습니다(삼상 17:5-6).. 그는 놋투구로 자신의 머리를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몸은 쇠구슬로 만든 갑옷으로 보호했습니다. 그 갑옷은 놋 오천 세겔로서 오십칠 킬로그램이나 되는 무게였습니다. 두꺼운 쇠로 보호가 되었기에 어떠한 무기로도 그 가슴을 뚫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다리는 놋으로 된 갑옷으로 보호받았습니다.

 

골리앗은 키도 클 뿐 아니라 온 몸을 철이나 놋으로 보호를 받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은 각종 갑옷으로 자신을 보호할 뿐 아니라 상대를 공격할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창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라고 했습니다. 베틀 채는 그의 창자루가 거대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창날은 철로 육백 세겔로서 약 1.8kg의 무게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방어할 갑옷과 공격할 창뿐만 아니라 자신을 방어할 방패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방패가 커서 다른 사람이 들고 있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칩니다.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 보내라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삼상 17:8-9). 골리앗은 자신은 블레셋 사람으로서 사울의 신복 중 한 사람을 보내어 싸우자고 제안했습니다. 자신이 이기면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종이 되고, 자신이 지면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섬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했으니 사람을 보내어 자신과 싸우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울과 온 이스라엘은 블레셋 사람인 골리앗의 말을 듣고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블레셋 사람은 물고기 형상의 다곤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궤가 다곤 우상의 집에 있을 때에 다곤 신상을 무너트리심으로써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궤가 블레셋 도시들에 있을 때에 그 곳에 재앙과 독종으로 치심으로 심판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골리앗을 물리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이스라엘을 조롱했지만, 사울과 이스라엘 자손은 두려움에 빠져 대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상이 가져다 주는 염려와 공포로 인하여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바로 우리의 믿음인 것입니다. 디모데후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으이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7-8).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무엘상 1712절은 이새와 다윗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이새라 하는 자의 아들이었는데 이새는 사울 당시 사람 중에 나이 많아 늙은 자로서 여덟 아들이 있는 중.”(삼상 17:12). 이새는 에브랏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의 아버지인 엘가나도 에브랏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에브랏 사람은 에브라임 지파의 사람을 지칭하기도 하고 베들레헴 지역에 사는 유다 지파 사람을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이새는 유다 사람으로서 베들레헴 지역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새에게는 여덟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장자 엘리압과 아비나답, 그리고 삼마는 전쟁에 참전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 아들로서 베들레헴에서 아비의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 베들레헴에서 양을 치고 있었는데, 골리앗은 사십일을 아침 저녁으로 나와서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대면하게 된 계기는 이새가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켰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새가 그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이 치스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삼상 17:17-18).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에 순종하여 전쟁터에 가서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이 서로 대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이 전쟁터에 가서 형들에게 문안할 때에 블레셋 사람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대가 골리앗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도망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다윗이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때에 한 사람이 골리앗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 너희가 이 올라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비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하게 하시리라.”(삼상 17:25).

 

다윗은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첫째는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둘째는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삼상 17:26). 다윗은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사람과 다른 시각으로 골리앗을 보았습니다. 그는 먼저 골리앗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치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치욕을 주는 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면 어떠한 대우를 하는가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길래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가였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군대를 단지 사울의 리더십아래 모인 군인들로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 군대를 이끈다고 믿었던 것입닏다. 그러므로 할례 없는 이방인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거룩한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듣고 동생에게 화를 냈습니다. “..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삼상 17:28). 형 엘리압은 다윗이 교만하고 완악하다고 하며 들에 있는 양이나 치지 왜 전쟁을 구경하러 왔냐고 했습니다. 엘리압은 다윗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압이 다윗을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하는 것은 다윗을 시기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엘리압의 질투는 다윗을 낙심시키려는 의도로 볼수 있습니다. 엘리압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전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믿음 없는 생각과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형을 향하여 담대하게 답변했습니다. “다윗이 가로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삼상 17:29). 다윗은 자신이 한 것은 말 뿐인데 왜 그렇게 자신을 무시하느냐고 답변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유가 없이 말하는 것이냐고 했습니다. 그가 말한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는 자신이 이렇게 분노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돌이켜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믿음 없는 형과는 대화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윗이 하는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고하자, 사울이 다윗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사울에게 믿음의 말을 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삼상 17:32). 다윗은 사울에게 할례 없는 블레셋으로 인하여 낙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주의 종인 자신이 가서 골리앗과 싸울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 것입니다. 사울이 듣기로 이러한 말은 어린 아이의 허풍에 지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의 장수들도 3m 나 되는 골리앗이 두려워 지난 사십일 동안 아무도 나서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양을 치는 목자인 어린 다윗이 자신이 가서 골리앗과 싸운다고 했을 때에 아무도 다윗을 신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선포에서 믿음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분의 뜻을 성취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아브라함은 가나안이 아무리 가나안 족속이 강하다 할지라도 자신과 후손에게 주신 땅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아브라함은 자신이 나이가 많고 자녀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을 것임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모세는 홍해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4장은 모세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4:13-14). 모세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싸우시며 구원을 주실 것을 보았습니다. 이와같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인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다윗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기에 골리앗이 전혀 두렵지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주의 종으로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16:33)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떠한 환난이나 시련에도 담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셨기에 우리도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담대함에 대하여 사울은 다윗을 평가절하 했습니다. 그는 다윗은 소년이기에 어려서부터 용사인 골리앗과 싸우기에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사울을 향하여 자신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음을 선포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목자로 양일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를 움키면 자신이 가서 사자와 곰을 물리치고 새끼를 구한 간증을 했습니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스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삼상 17:36).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지셨기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과 함께 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사자와 곰을 쳐서 죽인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지키셨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골리앗을 향한 담대함으로 표현될 수 있엇습니다. 마침내 사울은 다윗의 용기와 믿음에 설득이 되어 골리앗에게 보내기로 하며,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자신의 군복을 입히고 칼을 군복 위에 차게 했지만, 다윗은 익숙치 못한 군복과 칼로 인하여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익숙하고 검증된 물매와 돌을 가지고 골리앗에게로 나아갔습니다.

 

오늘 다윗의 믿음이 주는 영적인 교훈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의 눈과 육적인 눈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적인 눈은 세상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요나단과 같이 다윗은 믿음의 눈으로 골리앗의 모욕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골리앗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비록 힘이 있었지만 믿음이 없었기에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마주하는 골리앗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두려움을 가져다 줍니다. 골리앗의 실체는 세상의 힘입니다. 골리앗의 말은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는 모욕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을 믿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명이 단지 며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담대함으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와같이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믿음은 사탄의 권세와 유혹을 이기는 힘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이 믿음으로 골리앗과 같은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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