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사무엘상(24) - 다윗이 승리한 비결 (삼상 17:41-58).

비전의 사람 2024. 4. 1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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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24) - 다윗이 승리한 비결 (삼상 17:41-58).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45).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갔다가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듣고 거룩한 분노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은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 골리앗과 싸우기로 결정하고 골리앗에게 나아갔습니다.

 

다윗에게 나오는 골리앗은 완전 무장을 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놋헬멧으로 머리를 보호하고 있었고, 그의 몸은 놋으로 만든 갑옷으로 보호했고, 심지어 그의 다리도 놋으로 만든 장비로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을 보호하기 위하여 방패를 든 자가 직접 골리앗을 보호하기 위하여 큰 방패를 들고 진행했습니다. 골리앗은 큰 검을 들고 창을 메고 다윗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골리앗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삼상 17:42-43). 블레셋 사람이 지난 사십일간 이스라엘 군대를 도전했지만 아무도 나와서 싸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온 상대는 군인도 아니고 젊고 용모가 아름다운 소년이었습니다. 특히 다윗이 골리앗을 향하여 나올 때에 막대기를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골리앗은 모욕감을 느겼습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나아왔느냐.”, 그리고 다윗은 그리고 자신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골리앗이 자신의 신인 다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한 것은 단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 아니라 다곤과 하나님과의 싸음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골리앗이 알지 못한 것은 다윗은 자신의 힘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을 의지해서 나온 것입니다. 골리앗은 다윗에게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삼상 17:44)라고 하며 교만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왜냐하면 골리앗은 자신의 힘을 의지했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장차 이스라엘을 다스릴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은 불순종하는 사울과는 다른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다윗은 믿음으로 골리앗을 향하여 선포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45). 골리앗은 칼과 창과 단창으로 다윗을 위협하며 다가왔지만, 다윗은 칼이나 창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골리앗이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에게 다가갔습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골리앗으로부터 모욕을 당했던 이유는 사울의 지속적인 불순종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백성이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염려와 두려움으로 인하여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골리앗의 위협 앞에 위축되지 않고 더욱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도리어 골리앗을 향하여 그의 운명에 대하여 선포합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삼상 17:46). 골리앗은 자신의 힘과 칼을 의지하여 다윗을 쳐서 공주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준다고 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골리앗을 자신의 손에 붙이실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에 대한 믿음을 선포한 이유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거나 승리로 인하여 이스라엘에 기쁨을 주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무너트리고 나서 온 세상에 이스아레에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님의 구원이 칼과 창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 ...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 17:47). 다윗은 골리앗을 무너트림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 알려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3:17)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할 때에 자신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며 그 일이나 결과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로 싸우기 위하여 올 때에 다윗이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졌습니다. 그러자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맞고 그 이마에 박히자 그가 엎드러졌습니다. 다윗이 물매와 돌로 브레셋 사람을 이기고 쳐서 죽였지만, 다윗에게는 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골리앗의 칼로 그를 죽이고 머리를 베었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가 죽음을 보고 도망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칼이나 창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다윗은 물맷돌로 골리앗을 무찌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다윗의 승리와 같은 승리를 얻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하자 이스라엘 자손은 비로서 일어나 블레셋 사람을 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의 성인 에그론과 가드까지 따라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고 그 진을 노략했습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에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의 역사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전체 이스라엘에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 다윗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한 사람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22:30).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바벨론에 멸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때 예루살렘 성을 막아서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찾으셨지만, 의로운 한 사람이 없어서 그 성을 멸하실 수 밖에 없음을 한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그 성을 멸하지 못하게 할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그러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와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패배하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믿음의 사람을 하나님은 찾으셨던 것입니다. 이때 다윗이 믿음으로 일어나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에 큰 승리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신의 장막에 두었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상 1754절에서 다윗은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는 말씀을 통하여 그 시기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예루사렘을 정복한 것은 사무엘하 5장에서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간 시기는 골리앗을 죽인 직후가 아니라 시간이 상당히 지나서인 것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나아갈 때에 사울이 군대 장관 아브넬에게 그ㅏ 누구인지 묻지만 아브넬은 다윗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청년이 누구의 아들인지 알아보라고 하자, 아브넬은 다윗을 사울에게 인도했습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누구의 아들이냐고 묻자, 다윗은 말하기를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사울 앞에서 용사로 알려지기 시작하는 시점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다윗의 승리가 주는 교훈은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골리앗에게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이름의 의미는 그 사람의 명성이나 인격, 능력 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을 알리실 때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능력에 의하여 창조되신 분이 아니라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온 만물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알았기에 그 분의 이름으로 나아가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대의 다윗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이 세상적으로 자랑할 것이 있거나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울이나 요나단과 같이 적을 무너트릴 멋진 칼이나 창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골리앗과 같이 자신을 보호할 놋투구나 갑옷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따르고 싶은 그러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의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이름이며 세상의 소망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낳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기묘와 모사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원하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의 평강의 왕이십니다. 기묘와 묘사는 놀라운 지혜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영원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초대 교회에서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구걸을 하자 그를 향하여 긍휼의 마음을 품고 이렇게 선포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로 하고.”(3:6). 사도 베드로는 은과 금은 없지만, 자신에게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 능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자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도 베드로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그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선포 앞에 질병이 치유가 되었듯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아프거나 절망에 빠졌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여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구원의 이름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복음을 전하면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4:12). 예수의 이름은 구원자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한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개인의 구주로 영접할 때에 구원의 이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를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의 이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구원의 확신을 선포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는 것은 구원의 이름을 확신하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기도 응답의 비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 응답을 얻는 비결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14:13-14).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면 주님께서 응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14:14).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시행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는 비결은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듯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지금까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이제는 구하라고 말씀하시며 응답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16:24).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 분의 이름은 존귀한 이름이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독생자의 이름입니다.

 

다윗이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이 능력을 베풀어 주셨듯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며 기도 응답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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