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사무엘상(25) -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삼상 18:1-5)

비전의 사람 2024. 4. 24. 16:55
반응형

사무엘상(25) -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삼상 18:1-5)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삼상 18:1).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 분을 닮아 간다는 것은 그 분의 사랑을 삶에서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16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동기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로마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구주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우리에게 친구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나니.”(15:13).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참 친구이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주실 만큼 희생하시며 참된 친구가 되셨는데, 우리는 주님을 믿고 신뢰하면서 그 분을 향한 사랑의 우정을 잘 간직하고 있는지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진실한지 묻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향하여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던 것처럼, 우리가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지를 묻고 계십니다. 진실된 사랑은 시간이 지나거나 환경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우정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참된 사랑의 모습인 깊은 우정에 대하여 생각나게 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사람들은 다윗과 요나단이었습니다. 요나단의 다윗을 향한 우정은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초월한 순수한 사랑이었습니다. 요나단의 우정을 깊이 연구하기 전에, 우리는 요나단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나단은 사울왕의 장남으로서 왕의 후계자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왕의 군대의 1/3 을 맡은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그는 용감하고 믿음의 장수였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왕과 군사들이 블레셋 군대의 대군에 밀려서 굴과 수풀과 바위틈에 숨고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병거는 삼만이고, 마병이 육천이며 백성은 모래같이 많이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무기도 변변치 못하고 군사는 약 육백 명 가량이었습니다. 조금도 승산이 없는 전투인지라 이스라엘은 싸울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이때 요나단은 자신의 병기 든 자와 함께 믿음의 용기를 발휘합니다. 요나단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삼상 14:6). 그때 병기 든 자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리이다.” (삼상 16:7). 요나단에게 충성된 부하였습니다.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다음과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리이다.” 병기 든 자의 충성심은 요나단으로 하여금 더욱 담대하게 블레셋을 향하여 나아가게 합니다.

 

요나단은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삼상 14:12). 요나단의 믿음은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일으킵니다. 둘이 가서 블레셋 군인들을 무찌르기 시작하자 블레셋 군사들이 쓰러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땅에 큰 떨림을 주셨습니다. 땅이 진동하기 시작하고, 군사들이 동요하면서 서로 칼로 치며 죽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때 숨어있던 이스라엘 군사들이 나와서 함께 싸우러 나아와 전쟁을 승리로 이끕니다.

 

성경은 증거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삼상 14:23).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믿음으로 전진한 요나단을 통하여 일어났습니다. 요나단은 리더였습니다. 그는 영적인 리더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 숨어 있을 때, 자신의 안전 지대에서 일어나 목표를 향하여 도전하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블레셋을 향하여 도전하였고 승리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용감하고 믿음의 장수였던 요나단이 다윗을 무척이나 아끼며 사랑하는 우정을 보이게 됩니다.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이 아름다운 것은, 요나단이 외적으로 왕자이며 육체적으로 용감한 군사인 자가 다윗을 위하여 자신의 왕권을 포기하면서까지 다윗을 사랑하는 희생적인 모습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윗과 요나단의 희생적인 사랑은 어떠한 우정이었을까요? 우리도 요나단의 우정을 배워서 삶 속에 실천하여 삶이 더욱 풍성하고 의미있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1. 요나단은 마음을 다하여 다윗을 사랑하였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삼상 18:1)

 

요나단이 다윗을 만난 후에 그를 자기의 생명같이 사랑하였습니다. 그의 사랑은 마음으로 하나된 사랑이었습니다. ‘연락되어라는 단어는 ‘bind, knit'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요나단의 마음과 다윗의 마음이 서로 묶어져 있어서 끊을 수 없는 관계라는 의미입니다.

 

연락되어는 신약에서 몸을 비유하며 쓰여졌습니다. “...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3:19) 몸이 마디와 힘줄로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었듯이, 다윗과 요나단은 사랑의 우정으로 마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랑으로 묶여진 관계이기에, 어떠한 환경이나 핍박이나 눈앞이 이익 앞에서도 그 관계를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과의 우정에 대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삼하 1:26) 요나단을 향한 다윗의 사랑은 진실한 우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우정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정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은 무척이나 소중합니다. 우정은 친구와의 사랑의 관계이기에, 좋은 우정은 인생을 복되게 하지만, 나쁜 우정은 인생에 화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잠언 2224 절은,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Make no friendship with an angry man.)” 이라고 가르칩니다. 사귀는 것은 우정을 맺는 것입니다. 잠언은 노를 품는 자’ (angry man) 과는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를 품는 자와 사귀면 화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는 세상과 사귀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4:4). 세상과 벗이 되는 것은 세상과 우정을 나누는 것입니다. 세상과 우정을 맺지 마십시오. , 마음으로 세상과 끈을 묶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과 견고한 끈을 가지게 되면, 세상의 영향을 받게 되어 결국 세상을 따라갑니다.

 

우리는 누구와 우정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까? 우리는 먼저 주님과의 우정을 맺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과 최고의 우정을 맺어야 하는 것은, 그 분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는 요나단이 먼저 다윗을 사랑함으로 시작합니다.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주님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 19)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을 알고 믿기에, 우리도 주님과의 우정의 관계를 맺을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우정을 맺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마음의 하나됨으로 인한 우정을 맺어야 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이 마음으로 연합하였듯이, 우리도 주님과 함께 마음으로 연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형제들과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형제들과의 사랑의 관계는 우리가 먼저 사랑함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먼저 사랑하였듯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였듯이, 우리는 형제를 먼저 사랑하는 사랑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요나단은 생명을 다하여 다윗을 사랑하였습니다.

 

“...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삼상 18:1)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였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위험에 처했을 때, 요나단은 목숨의 위협을 무릎쓰고 다윗을 구해줍니다. 사울이 다윗을 해하려고 하면, 요나단은 다윗으로 하여금 은밀한 곳에 숨도록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설득하여 다윗을 해하지 못하도록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요나단은 다윗과 언약을 맺어 여호와께서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윗을 향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삼상 20: 17). 그후에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자 이렇게 대항합니다. “...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그러자 사울이 단창을 던져 자신의 아들인 요나단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요나단은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을 알고, 다윗을 위하여 슬퍼하였습니다.

 

요나단은 용사이며, 존경받는 이스라엘의 왕자였습니다. 그의 목표가 왕권이라고 할지라도 누구도 그것을 비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을 지키는 것이 목표가 되었습니다. 다윗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은 사람이 요나단이었던 것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왕이 된다 할지라도, 조금도 시기하지 않았을 인물입니다. “...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부친 사울이 안다...” (삼상 24: 17) 요나단은 자신보다 먼저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요나단은 다윗이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친구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신 존귀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5: 13) 예수님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은 것은 가장 숭고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랑도 최고의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님은 최고의 친구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친구가 되시니 우리는 정말로 행복한 자입니다.

 

우리에게도 친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친구는 믿음의 가족입니다. 믿음 안에서 함께 교제하며 삶을 나누는 우리야 말로 진정으로 소중한 관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를 주님 안에서 소중한 우정의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상대의 흠을 잡고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같이 사랑하며 지키며 보호하는 것이 진정한 친구인 것입니다.

 

3. 요나단은 다윗과의 언약을 통하여 우정을 실천하였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 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삼상18: 3-4)

 

요나단은 다윗과 언약을 맺었는데, 그것은 서로간의 우정과 사랑, 신뢰를 계속 유지하고 서로의 후손들에게도 계속하자는 내용의 언약이었습니다.

 

너는 나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나로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하니라.” (삼상 20: 14-16)

 

그들은 서로 언약을 맺어 두 집안이 함께 인자를 베풀도록 하면서, 언약의 증거로서 요나단이 입었던 겉옷과 군복과 칼과 활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사랑의 표현으로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나누었던 요나단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우정은 그 후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위험에 처했을 때에 요나단은 다윗을 보호해주었으며, 요나단이 죽자 다윗은 그의 아들은 므비보셋을 찾아서 재물을 주고 선하게 후대하였습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차기 왕으로 삼으신 것을 깨달았기에, 그에 대한 시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를 왕으로 인정하고 보호하려고 한 것입니다. 요나단의 우정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진실한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어려울 때마다 그를 위로하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나누면서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언약의 중보가 되셨습니다 (8:6). 하나님과 우리는 언약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이 중보가 되셔서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한 자녀의 관계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중보가 되실 때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 재물로 드리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과의 언약은 예수님의 중보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좋은 친구가 되십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진정한 친구였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에 대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이해를 하였으며, 그의 약점을 잡거나 흠집을 내려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많은 흠집을 내어 죽이려고 하였지만, 요나단은 다윗을 지키고 보호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요나단의 우정은 진실한 우정이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하였습니다. 비록 다윗이 자신의 왕권을 빼앗아가는 자임을 알았지만, 그 왕권도 둘의 우정에 금을 그을수가 없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기에 당하는 어려움과 고통을 이해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다윗의 깊은 고통을 이해하여 사랑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친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진정한 친구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내면 깊은 곳을 이해하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시험과 고통을 이해하십니다. 그리고, 상처를 싸매시며 위로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흠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흠이 있는 자를 보혈로 씻어 주시고 새롭게 하셔서 늘 새롭게 시작하도록 격려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친구가 되시는 것은, 그 분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과 같이, 우리는 주님과의 영원한 우정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믿음 안에 섬기는 지체들과의 우정을 주님 오실 때까지 변하지 않고 지켜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