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사무엘상(26) - 질투와 시기의 감정을 이겨라 (삼상 18:6-16)

비전의 사람 2024. 5. 1. 15:31

사무엘상(26) - 질투와 시기의 감정을 이겨라 (삼상 18:6-16)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우시을 주목하였더라.” (삼상 18: 7-9)

 

그리스도인의 길을 가는 것은 마음의 변화를 받아 주님을 따르며 그 분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듯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2:2) 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변화는 주님의 뜻 안에서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변화의 시작은 죄를 버리는 것에 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에서 극복해야 할 일곱가지 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중세 시대의 교부들이 가르쳤던 일곱가지의 죄는 다음의 것들을 포함했습니다. 첫 번째는 정욕(lust)입니다. 정욕은 간음의 죄로 이어지게 하는 성적인 욕구를 의미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온갖 종류의 성적인 유혹에 노출되어 있고, 그러한 성적인 죄에 빠지면 가정이나 개인의 삶에 큰 파멸을 가져오게 합니다. 두 번째는 폭식입니다. 이는 음식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육체의 탐심입니다. 세 번째는 탐욕입니다. 이는 물질적인 소유를 통제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필요하지 않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구에 빠져 살아가기도 합니다. 네 번째는 게으름입니다. 이는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육체적인 게으름에 빠져 살아가는 것입니다. 게으름에 빠지면 성경이나 기도 생활에 게으르게 되고, 정신적으로는 책을 읽기 보다는 엔터테인먼트에 빠져 살아갑니다. 그리고 육체적으로 운동하기를 게을리하며 자신의 몸을 관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분노입니다. 분노는 통제되지 않는 화를 품는 것입니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자주 화를 내며 분노하는 것은 관계를 깨트리게 하는 요인입니다. 여섯 번째는 질투입니다. 질투는 사람 사람의 명성이나 소유에 대하여 슬퍼하거나 증오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소설 네트워크를 보면서 나쁜 감정이 드는 것은 비교하기 때문이며 마음에 친구에 대한 시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곱 번째는 교만입니다. 교만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의 필요나 욕구를 우선시하는 것입니다. 교만의 중심은 자신을 중심에 두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건강하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일곱가지의 연약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중에서 인간의 마음에서 가장 틈타기 쉬운 죄가 있다면 교만과 질투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지 하는 교만한 마음을 품으면서 선악과를 따서 먹게 됩니다. 이는 죄의 뿌리가 되어 온 인류가 사망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인과 아벨의 관계에서 가인은 질투로 인하여 아벨을 돌로 쳐서 죽이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지만, 자신의 제사는 거절된 것에 대하여 아벨을 질투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된 점을 깨닫고 회개해야 하지만, 오히려 바른 신앙으로 하나님을 예배한 아벨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이는 질투심에 불타서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사람의 죄악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인과 같이 사울도 파멸의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파멸의 길로 걸어갔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파멸의 길로 걸어가고 뛰어갔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말씀을 묵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육신의 소욕과 정욕대로 자신을 방임했습니다. 그는 마음속에 교만함이 찾아올 때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에 겸손이 사라지고 교만함이 찾아오는 것은 멸망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는 교만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께 불순종하고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불순종의 영이 자라서 그의 마음속에 다른 죄가 차지하게 됩니다. 그는 다윗을 질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질투의 가지가 자라서 그의 온 마음을 사로잡게 됩니다.

 

이는 마치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온 밭에 가득 퍼지듯이, 불순종의 죄가 커져서 교만과 질투의 마음으로 자라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사울의 마음에는 어떻게 하면 다윗을 죽일까하는 죄악된 생각만이 그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죄가 그의 마음을 온전히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울의 질투가 주는 교훈을 통하여, 어떻게 시기와 질투를 극복하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하기를 원합니다.

 

1. 우리는 왜 질투를 극복해야 하는가요?

 

질투는 나쁜 감정입니다. 질투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자신보다 앞서서 좋은 위치에 있는 것을 시기하여, 미워하며 깍아 내리는 것입니다. 질투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바르지 않은 감정이기에, 우리의 이러한 마음을 품는 것은 독을 품는 것과 같습니다. 질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우리는 파멸의 길에서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질투를 극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질투가 우리에게 주는 악한 영향력은 무엇인가요?

 

1) 질투는 우리를 분노하게 합니다.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삼상 18: 8).

 

여인들이 다윗과 사울을 칭송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을 향하여는 만만을 돌리고, 사울에게는 천천을 돌렸습니다. 그러자, 사울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내면의 죄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의 마음은 질투심으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질투의 마음이 그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자, 사울은 심히 분노하게 됩니다. 사울의 분노의 대상은 다윗이었습니다. 사울은 왕이었습니다. 왕으로서 신하들을 축복하고 격려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의 부족함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누려야 할 명예와 칭송만을 원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로 왕의 자리에 앉았지만,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육신을 만족해야 영혼이 만족하려는 생각은 육신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모든 면에서 최고의 칭송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교만의 생각이었습니다.

 

영적인 의미로 깊이 들어가면, 사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대개 사람들과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문제에서 시작됩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하여 하신 큰일을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사울이 영적으로 깨어있었다면, 다윗을 통하여 큰일을 베푸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이 모든 영광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이 모든 면에서 인정받으려는 생각은 교만에서 시작됩니다. 사울의 실패는 영적인 통찰력으로 다윗을 바라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일을 위하여 쓰임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영적인 통찰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질투의 렌즈로 다윗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미래도 질투의 렌즈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그의 평생에 불행한 삶을 살게하는 뿌리였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렌즈, 질투의 렌즈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과 성령의 렌즈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신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육신의 생각을 물리치고, 겸손함으로 주님께 쓰임받기를 기뻐하시고, 쓰임받는 인생임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분노의 씨앗은 육신의 생각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매사에 분노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부부간에도 사소한 일에도 분노하고, 직장에서 분노하며, 때로는 교회와 하나님께 대하여도 분노하고 있는지요?

 

우리는 깊이 내면을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에 대하여 다른 사람을 탓하며 자신을 합리화하였습니다. “내가 분노하는 것은 당신이 이렇게 행동했기 때문이야! 만일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나는 분노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여러분! 분노의 뿌리는 타인이나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세상의 죄의 뿌리,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분노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 쓴 뿌리가 자라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교만을 버리고, 육신의 자아를 만족시키려는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고, 주님을 따르면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대부분의 수많은 사람들이 겸손으로 시작하여 주님을 섬기다가, 교만의 씨앗이 마음에 들어와 시험에 들게 되고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려다 실망하여 분노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게 됩니다. 우리는 순결함과 정직함으로 주님을 섬기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질투는 우리에게 의심을 가져다 줍니다.

“...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삼상 18:8)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다윗은 또한 사울이 다윗에게 사명을 줄 때마다 지혜롭게 행하여 온 백성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다윗을 만만으로 칭송함으로 사울보다 더욱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사울에게는 다윗을 향한 질투심을 갖게 되고, 이는 다윗을 의심하는 마음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존경을 받고 명예를 얻게 된다면, 나중에 이스라엘의 나라를 얻으려고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나라는 요나단에게 물려주어야 하는데, 다윗이 있으면 이는 사울의 계획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울은 후에 요나단이 다윗을 포용하고 감싸주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니라.” (삼상 20:31) 사울의 말은 다윗이 살아있는 한 너와 네가 통치해야 할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질투에 가득찬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나쁜 감정을 품는 것입니다. 이는 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을 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의심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신뢰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가족이 서로 믿지를 못한다면, 그 가정은 불행한 가정이 됩니다. 남편이 아내를 신뢰하지 못하고, 아내가 남편을 의심하여 두 마음을 품는 것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서로에게 부족함이 있다할지라도 서로를 믿고 신뢰하는 마음으로 나아간다면, 행복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은, 믿고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를 향한 사랑의 우정으로 서로를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신뢰가 있고 우정이 있는 곳에도 신뢰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공동체도 이와같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누구도 신뢰를 깨는 말을 퍼트리거나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부정적인 말을 하여 이미지를 실추시켜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가 교회에 모여서 서로를 위로하고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지도자로 준비되어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서로를 의심하고 권위를 떨어트리고,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불행한 일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풍성한 사랑을 경험한 자들이 모여서 함께 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7)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자는 불행한 자입니다. 사울은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충성스러운 신하를 두었기에 더욱 든든한 나라를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을 통하여 리더십을 배우고 영성을 배워서 더욱 능력있는 왕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질투하였고, 그 결과로 다윗의 동기를 의심하고 그가 나라를 전복할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사울은 큰 죄를 짓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죄의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질투의 뿌리를 제하고 마음으로 축복하고 신뢰하며 믿음을 주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질투는 악한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삼상 18:9)

 

질투의 절정은 사울로 하여금 악한 생각을 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이 그 날 후로 다윗을 주목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울이 다윗을 마음에 품고 악한 생각을 한 것입니다. 기회가 대는 대로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사무엘 상 1811 절에서는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창을 던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삼상 18: 11). 사울은 그 후로 끊임없이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결혼을 빙자하여 다윗을 블레셋의 손에 죽이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무엇을 하든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형통케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다윗을 붙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시기와 질투하는 마음은 나쁜 생각에서 나옵니다. 시기와 질투하는 마음을 버리려면, 우리는 생각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생각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승리하는 삶은 생각에서 먼저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생각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을 마음에서 지워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하여 성령께서 주시는 영의 생각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다윗을 창으로 죽이려고 하고, 죄없는 사위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죄악된 생각입니다. 그러나, 질투에 사로잡혀 있는 사울은 자신이 죄악된 생각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정욕을 충족시키려는 악한 생각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2. 우리는 질투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질투는 죄의 성품이기에 언제든지 우리의 마음속에 찾아오는 불청객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된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1) 우리는 질투하는 마음이 찾아올 때 회개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

 

순간적으로 마음에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찾아올 때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찾아오는 죄의 뿌리를 주님께 내려놓고 회개할 때, 하나님은 마음이 뿌리를 제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은 순간적으로 선한 생각이 찾아오다가 갑자기 나쁜 생각을 품을수가 있습니다. 갑자기 마음에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상대를 바라보며 미움의 생각으로 가득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이 회개해야 할 나쁜 죄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개의 마음이 늘 정결한 마음으로 가는 비결인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51:10-12).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늘 깨끗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의 마음을 회복시키시며 구원의 즐거움이 날마다 가득하게 하실 것입니다. 다윗이 회개를 통하여 자신의 영혼을 정결하게 했듯이,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마음을 통하여 영혼을 정결함과 마음의 순결함을 회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우리는 감정과 상관없이 진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요삼 4).

 

하나님은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진리대로 행하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며 주의 뜻대로 바른 행실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진리대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감정에 치우치는 삶이 아니라, 그리고, 사람들의 말에 의하여 미혹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충만한 은혜에 힘입어 진리대로 살아가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이 상하거나 마음에 분이 가득하면 자신의 자아대로 행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감정대로 행하고자 하는 명분을 스스로 만드는 기회로 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이나 마음에 이끌리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함으로 진리대로 행하는 영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는 많은 절제와 믿음의 연단을 통하여 나타나는 영성인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고 잠언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림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리대로 걸어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결단하는 최종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니엘과 같이 뜻을 정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결단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3)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우리는 마음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질투의 원인은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부어주신 풍성한 은혜들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에 대한 질투의 마음은 사라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뿌리는 욕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셨지만, 사람의 욕심은 다른 사람이 소유한 것을 보고 자신도 얻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러한 것을 얻지 못하면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며 스스로 좌절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우리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이 공급하시며 인도하시고 계십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떠한 형편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우며, 더 나아가 감사하는 마음을 계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행복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사울왕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지만, 다윗의 칭송을 부러워하며 그것까지도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욕심인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는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분께 간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감사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거나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늘 흠을 잡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풍성한 은혜에 감사하며 날마다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