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행복한 가정 시리즈 (4) - 아가페의 사랑으로 세워지는 가정

비전의 사람 2024. 5. 25. 21:22

행복한 가정 시리즈 (4) - 아가페의 사랑으로 세워지는 가정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우리의 가정이 건강하게 세워지기 위해서는 믿음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정은 믿음만으로는 세워질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기초가 되는 가정에서 더욱 필요한 것이 있다면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면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변화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새로운 생명에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새로운 DNA 가 생겨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요한1서 기자는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이는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가족간에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사랑은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헬라어로 크게 네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에로스의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입니다. 부부간에는 에로스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결혼 전에는 에로스의 사랑을 하면 안되고 절제해야 합니다. 스토르게는 가족 간의 사랑입니다. 가족은 스토르게의 사랑으로 친밀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필리아는 친구간의 우정입니다. 이는 다윗과 요나단과 같은 우정의 사랑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이러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가족은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살과 피와 같은 가족이기에 우리의 마음은 항상 가족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가족에게 기쁜 일이 생기면 모두가 행복을 느끼지만 가족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모든 가족들은 함께 슬퍼하거나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가족을 향하여 어떠한 사랑으로 대하느냐는 가족의 행복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1. 아가페의 사랑은 가정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나라.”(요일 4:16).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 가운데 거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나라.”(요일 4:16).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이 가득하여 서로의 삶과 필요를 나누는 공동체로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랑이 가득한 곳에 성령의 강한 역사와 말씀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하나님의 교회에 하나님의 강한 임재로 인한 부흥의 역사로 나타났습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교회와 가정에도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아가페의 사랑이 넘치게 되면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가 더욱 크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요일 4:21). 우리는 주님이 주신 계명에 순종하여 믿음 안에 있는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에 속한 가족을 진심으로 위하며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 안에 아가페의 사랑이 얼마나 풍성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가정의 행복의 온도가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여주신 아가페의 사랑은 우리의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우리가 행복과 기쁨의 찬양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가페의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시는 아가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와같이 아가페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이며 조건 없이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이는 어머니가 자녀들을 향하여 조건없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과 같은 사랑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향하여 보여줄 수 있는 선물은 사랑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향한 아가페의 사랑, 즉 희생하고 이타적이고 조건없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배우자가 서로를 향하여 아가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서로를 사랑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의 흐르게 할 뿐 아니라, 자녀들의 마음에도 강한 유대감과 안정감, 그리고 평안을 가져다 줍니다.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가족은 서로를 위하여 희생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듯이, 자녀들도 부모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돌보아 드리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하여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가르치는 아가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가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가정에서 가족 간에 보여주는 아가페의 사랑은 서로를 향하여 오래 참고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화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믿으며 바라며 견디며 함께 믿음의 여정을 향해 달려갑니다. 가정에서 보여주는 아가페의 사랑은 가족을 판단하기 보다 이해하려고 하고, 함께 강한 유대감을 강화하며, 함께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2. 아가페의 사랑은 가족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16:24).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가족을 향하여 선한 말을 하게 합니다. 잠언서는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16:24)라고 했습니다. 선한 마음에서 선한 말이 나오게 됩니다. 이러한 선한 말은 듣는 자들에게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된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표현은 가족들에게 있어서 뼈에 양약이 될 만큼 건강하게 합니다.

 

잠언 14장은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14:30)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정에는 화평이 가득합니다. 그러한 화평에는 육신의 생명과도 같아서 평안한 가운데 살아가게 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빠진 곳에는 시기와 질투가 있는데, 이러한 곳에는 뼈가 썩음과 같다고 했습니다. 잠언 12장은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12:4)라고 했습니다. 아내와 관계가 좋지 않으면 뼈가 썩음 같은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과 건강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1995년 미국에서 생명을 구한 포옹이라는 기사로 감동적인 아기의 이야기가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19951017, 매사추세츠 메모리얼 병원에서 카이리Kyrie와 브리엘 Brielle Jackson이라는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두 아이는 예정일보다 12주 빨리 태어났다. 우측 아이가 카이리이며, 좌측 아기가 브리엘입니다. 이들은 태어날 때 1킬로그램 밖에 안 되는 조산아였습니다. 이들에게 일어난 실화는 불가사의했습니다. 쌍둥이 중 한 아이(브리엘)가 심장에 큰 결함을 안고 태어났는데, 의사들은 하나같이 그 아이가 곧 죽게 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각각 인큐베이터 안에 보내졌습니다. 그런데 카이리는 회복되어 잘 자라고 있었는데 브리엘은 아무리 애를 써도 점점 더 나빠져서 죽기 직전 상태까지 갔습니다. 의사들은 다르게 손 써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안타깝게 돌보던 19년 경력의 간호사 Gayle Kasparian는 그 죽어가는 신생아가 뭔가 자기에게 말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때 그녀는 유럽에서 과거에 실시해오던 미숙아 치료법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아픈 아기를 건강한 쌍둥이 아기의 인큐베이터 안에 집어넣을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 아기들은 원래 엄마 배 속에서 함께 부둥켜안고 있었는데, 아기들을 따로 떼 둘 것이 아니라, 둘을 같이 두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이는 병원의 방침에 어긋나는 일이었기에 담당 의사는 잠시 고민했지만, 엄마의 동의를 얻어, 결국 엄마 자궁에서처럼 두 아이를 한 인큐베이터 안에 나란히 눕혀보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쌍둥이는 사진처럼 한 인큐베이터 안에 눕게 되었습니다. (이 때는 생후 한 달이 거의 되어갈 무렵이었다.) 그런데 건강한 아기(카이리), 제 스스로 팔을 뻗어 아픈 아기를 감싸 안았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아기의 손길이 닿아있을 때부터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픈 아기(브리엘)의 심장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고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다음에는 체온이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아픈 아기의 심장, 혈압, 체온이 모두 정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간호사는 처음에는 기계가 오작동하는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기적이었다는 증거입니다. 의사들은 이것을 보고 너무 기뻐서 사진에 생명을 구하는 포옹 The Rescuing Hug’ 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지역 신문에도 보도되어졌습니다. 그 후부터 쌍둥이 신생아들은, 인큐베이터에 같이 눕히는 방식이 다른 병원에서도, 조심스레 채택되어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 후 두 아기는 완전히 정상으로 무럭무럭 자라났고, 기자들이 추적한 이 두 아기는, 5년 후 2000년도에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가족의 사랑은 배우자와 자녀들의 정서적, 그리고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게 합니다. 자녀들을 향한 부모의 포옹은 자녀들에게 정서적인 안정 뿐 아니라 심리적 육체적인 건강을 가져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유미가 미국 대학에서 아동 심리학을 배우면서 한 말이 기억이 납니다. 건강한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은 자녀와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거나 방치된 아이들의 뇌 구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릴 적에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그 영향력이 평생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생각과 정서, 대인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 외에도 사랑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손을 잡아 주거나 포용하는 것은 사랑의 호르몬이라는 옥시토신의 분비를 촉진시켜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관계는 면역력을 강화하게 합니다. 사랑의 관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스트레스가 적어 면역 체계가 더 잘 기능하게 함으로 신체의 염증 반응을 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극심한 스트레스에 갇히게 되면 자가 면역력 결핍과 같은 면역력에 이상이 생겨 몸의 건강을 극도록 해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의 관계에서 살아가면 심혈관의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화를 잘 내거나 분노를 자주하면 심장에 무리를 주어 심장의 기능에 이상이 생기게 됩니다.

 

하바드 대학에서 약 75년간 행복한 사람의 삶을 연구한 하버드 의대 정신과의 조오지 베일런트 교수는 모든 데이터를 분석하여 최종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다. 어릴 적 사랑받은 경험이 노후에 더 행복한 삶이 되고, 노년기의 삶은 결국 우리가 경험한 사랑의 총합이다.

 

우리의 가정이 행복의 동산이길 원한다면 우리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친밀한 관계를 세워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결한 마음에서 흘러 나오는 은혜의 마음인 것입니다.

 

3. 아가페의 사랑은 서로를 지지함으로 함께 성장하게 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4:13).

 

아가페의 사랑은 가족을 향하여 지지하고 격려하게 합니다. 즉 사랑은 관심인 것입니다. 사랑의 관심은 실망하거나 절망에 빠진 가족을 응원하거나 격려함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됩니다.

 

구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중의 하나가 룻과 보아스의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룻은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아가페적으로 사랑했습니다. 다른 동서인 오르바는 가족의 사랑인 스토르게 사랑의 한계를 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죽자 어머니를 떠나 자신의 고향인 모압 땅에 남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를 끝까지 함께 하며 섬기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으로 함께 간 룻은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워 시어머님을 공경했습니다. 이러한 효심은 그 동네에 소문이 났고, 보아스는 그녀의 사랑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보아스는 이렇게 룻을 축복합니다.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2:12). 룻은 보아스의 축복을 받았고, 결국은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풍성한 은혜를 누렸습니다. 룻의 희생적인 사랑은 나오미의 어려운 상황을 이기게 하는 힘이 되었고, 룻의 사랑은 보아스에게 감동을 주어 마음에 축복하고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즉 아가페적인 사랑은 나오미의 가족과 친족 간에 영적인 유대감을 강화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통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나오미가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은 룻의 희생적인 사랑이었습니다. 룻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은 보아스의 값을 주고 산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의 사람이 행하는 희생적인 사랑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 흘러갑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가족 안에서 서로를 지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자녀가 미래의 꿈을 향하여 도전하고자 할 때에 부모는 자녀의 꿈을 지지하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들을 위하여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면서 자녀들의 꿈을 이루도록 돕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지지와 격려로 인하여 인격이 성장하며 지식이 자라갑니다. 그리고 영적으로도 성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지지하며 격려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배우자가 믿음 안에서 달려가는 삶을 지지하며 후원하며 격려합니다. 서로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지지하는 것은 가정안에 살아있는 아가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가족들이 성장하게 합니다. 이는 자녀들은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가게 하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누리게 합니다. 그리고 사랑이 가득한 믿음의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부모님의 신앙을 본받아 영적으로 성장하게 합니다.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라고 권면하고 ᅟᅵᆻ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족이 서로를 사랑하면 정서적으로나 영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이 결핍된다면 정서적인 성장이 멈추게 되고, 영적인 성장까지도 막히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정서적으로 성장하고 영적으로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즉 영적인 가족의 공동체에 거하면서 풍성한 사랑이 넘칠 때에 사랑의 은혜가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가족을 가치있게 바라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사랑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가족입니다. 우리의 가족을 귀하게 여기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다가가는 것은 우리의 가족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함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우리의 가치에 가족에 있기에 우리의 사랑은 가족들에게 의미있게 다가가며 힘을 얻게 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모든 가족을 편견없이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