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행복한 가정 시리즈(3) - 은혜로 세워지는 믿음의 가정 (엡 5:31-6:4).

비전의 사람 2024. 5. 18. 16:59

은혜로 세워지는 믿음의 가정 (5:31-6:4).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5:3-33).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AI 의 기술이 나오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지난 주 발표된 Chat Gpt 40 AI 가 공부도 시켜 주고, 여행지에서 그 지역에 대하여 설명하는 대화로 발전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인공지능을 잘 활용만 하면 공부하면서 학원에 갈 필요가 없디 인공 지능에게 물어보면서 지식을 습득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의 의식까지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 앞에 사람들의 의식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진리가 없는 세상이기에 그 변화는 자기들이 중심이 되는 가치관에 뿌리를 내리는 듯 합니다.

 

최근에 일본의 결혼 트렌드가 소개된 적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일본에서는 우정 결혼이라는 트렌드가 유행한다고 합니다. 우정 결혼은 전통적인 서로에게 헌신하는 결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애인을 가질수도 있고 자신의 애인과 여행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결혼에 대한 대안으로 선택하는 삶인 것입니다. 유럽과 같은 서구의 나라에서는 남녀 간의 결혼이 아니라, 동성 간의 결혼을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동성의 결혼을 비난하는 것 자체가 범죄자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변화하는 사회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교리나 가치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 중의 하나는 가정입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인 가정에서의 삶은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의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미래의 삶을 결정해 주는 곳이 가정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가정을 세우고자 하는 마음을 함께 나누며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믿음의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은혜로 세워져야 합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5:23).

 

온 만물의 주는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정을 세우신 분은 누구신가요? 그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가정은 사람들의 지혜나 사고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피조물인 사람이 더욱 행복하고 의미있는 관계에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가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지으시고 그가 독처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으셨기에 여자인 하와를 지으시고 아내가 되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는 창세기의 말씀을 인용하며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5:31)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는 결혼을 통하여 가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녀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며 태의 열매가 그의 상급이듯이,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거룩한 기업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사람들의 평안의 안식처였습니다. 그곳에는 사랑과 은혜가 넘쳤고 의미있는 관계로 삶을 살아가게 하는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사람을 유혹하고 시험하여 죄를 짓게 한 이후로 가정의 거룩함이 깨어졌고 죄가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돕는 베필로서 남편을 세워야 할 하와는 남편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였고,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비난하며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형제는 사랑으로 격려하며 우애있게 지내야 했지만, 가인과 아벨의 관계는 시기와 미움의 단계를 넘어 살인하는 죄까지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가장 견고하게 평화와 사랑이 넘쳐야 하는 가정이 때로는 위기를 맞이하고 아픔과 상처가 찾아오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시 우리 가정을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의 회복은 먼저 믿는 자에게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새 생명을 주시면서 시작합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죄와 연합하여 살아갔습니다. “ ... 전에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 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6:21). 죄와 연합하여 살아가던 옛 사람은 삶의 열매가 부정하고 불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사망이며 둘째 사망은 하나님의 심판의 진노 아래 살아갔습니다. 이러한 옛 사람의 가치는 세상이었고, 그들의 목표는 오직 이 땅에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인 새 생명을 주심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새 생명을 얻은 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본질은 아담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6:1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은혜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아가는 삶입니다.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자는 죄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의가 왕노릇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회복이란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의와 평강과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복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정에 강물처럼 흘러 넘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가정이 사울과 같이 불순종하여 무너지는 가정이 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가정에 대한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믿음의 가정인가? 아니면 무늬만 그리스도인 가정이면서 세상을 섬기는 세속적인 가정인가?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가정으로 고백하지만, 가정에 속한 가족들의 가치와 삶이 진정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은혜로 살아가는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가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기도와 말씀으로 나타나며 예배를 통하여 흐르게 됩니다. 가정에서의 대화가 말씀의 은혜가 나타나며 불평이나 원망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의 고백이 넘치는 회복한 가정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은혜의 가정은 죄의 뿌리가 뽑혀 더 이상 가족을 다스리지 못합니다. 죄가 주가 되는 가정은 불화와 원망이 나타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죄의 본질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중심이 되는 가정은 죄가 다스림으로 사랑과 화목이 깨어지고, 반목과 불평, 그리고 세상적인 쾌락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한 가정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다스리는 가정은 가족 모두에게 주님의 사랑이 흘러넘쳐서 가족을 아가페의 진실한 사랑으로 사랑하며 위해서 헌신하게 됩니다. 주님의 은혜가 넘치는 가정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듯이 서로를 사랑하며,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섬기듯이,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섬김이 넘치게 됩니다. 그러한 가정에는 의가 다스리며 기쁨과 감사가 넘치기에 웃음이 가득한 가정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사랑하시며 축복하시는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미래에 우리가 성취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며 누리는 현재에 있는 것입니다.

 

2. 믿음의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자 하는 가족의 영적 성장으로 세워집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9).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은 마음의 변화에서 시작하여 삶에서 그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생명이며 주인이 되신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통한 믿음와 인격의 변화를 통하여 주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은혜로 세워지고 있는 모습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경외해야 합니다.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5:33).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녀들의 관계는 혈연으로 이루어졌기에 그 관계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자녀는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향한 마음은 각별합니다.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관계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는 서로 언약으로 이루어진 관계입니다. 언약은 목숨을 다하여 지켜야 하는 굳건한 약속입니다. 즉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기에 사람이 나눌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연약함속에 살아가면서 부부의 관계에서 위기가 찾아오고 시련을 만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관계이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을 따라 배우자를 대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성경은 남편들을 향하여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사랑합니다. 자신을 사랑하기에 자신을 위하여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도 하고 좋은 옷을 사서 입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기에 자신을 위한 좋은 집과 차를 구해서 편안함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아내를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부는 남편과 아내가 하나가 되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기준에 대하여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과 같이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5:25).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은 세상과 구별된 마음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배우자 특히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자신의 피값으로 사시고 사랑하시는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시고 사신 교회이기에 주님은 교회를 세상의 무엇보다도 더욱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남편들은 아내를 교회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고 필요가 무엇인지 알고 채움을 주려고 할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한 몸으로 살아가기에 둘의 영적인 필요와 정서적인 필요, 그리고 육체의 필요를 채워주고자 하는 남편의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주님이 주신 은혜의 마음이 가득할 때에 나타나게 됩니다.

 

아내는 남편을 향한 어떠한 마음으로 대해야 할까요? 성경은 아내는 남편을 경외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5:33). 아내가 남편을 대할 때에 자신을 위하여 존재하는 배우자로 간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지으시고 그 후에 돕는 베필로 아내를 지으셨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대할 때에 관계에서 머리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5:23).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의 머리가 되시듯이, 아내의 머리는 남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을 경외해야 합니다. 경외라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남편을 두려워할 만큼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대하는 마음은 존중을 넘어 존경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경외할 때에 순종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5:22). 남편에게 복종하고 순종하고자 하는 아내의 마음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질서는 남편이 머리이기에 아내가 순종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아내와 남편의 온전한 연합은 부부 관계를 견고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원천이 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연합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듯이, 아내와 남편의 연합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축복을 얻게 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는 자녀들을 주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6:1-4).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가정에서 무척이나 소중합니다. 십계명에서 오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기본적인 관계가 바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희생하기에, 부모를 향하여 자녀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에게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죄인들 조차도 자녀들을 사랑하고 희생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한 마을에 자식들이 모두 효심이 깊은 것으로 유명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이 농부는 늘 자식들에게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고 가르치며 자랐습니다. 농부는 그가 농사를 지으며 얻은 모든 것을 부모님과 나누었고, 부모님의 건강과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농부는 논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하늘에서 무언가 이상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까마귀 한 마리가 늙고 날 수 없는 다른 까마귀에게 먹이를 가져다주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그 장면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까마귀도 자신의 부모에게 먹이를 주며 돌보는 것을 보면서, "인간은 당연히 더 큰 마음으로 부모님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부는 그 후로도 항상 부모님을 최선을 다해 모셨고, 그 모습을 본 그의 자식들도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공경하고 돌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이 농부와 그의 가족을 보며 효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고, 마을 전체가 효도와 사랑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자녀를 향하여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공경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비결이기도 한 것입니다. 룻기는 모압 여인이었던 룻이 이스라엘 자손이었던 나오미를 공경하고 순종함으로 복을 받은 삶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공경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에게 복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아스를 통하여 룻과 나오미에게 큰 은혜를 주셨던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를 사랑하되 주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6:4). 자녀들을 향한 부모의 영향력은 그들의 삶을 결정한다고 할지라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녀들의 믿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그들의 인격과 가치관에도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보여주어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중심이 되게 해야 합니다.

 

한 마을에 지혜로운 어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녀들을 사랑하고 양육하며, 올바른 가치관과 도덕을 가르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녀는 자녀들을 교훈하기 위하여 마을 외곽에 있는 한 공사 현장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막 시멘트가 부어져 아직 마르지 않은 길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이 젖은 시멘트 위에 발자국을 남겨 보렴." 아이들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젖은 시멘트 위를 걸었습니다. 그들의 발자국은 시멘트에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이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 시멘트가 마르면 너희가 남긴 발자국은 어떻게 될까?" 아이들은 "발자국이 굳어져서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맞아요. 너희의 발자국이 시멘트가 마르면 영원히 남게 되지."

 

"이 젖은 시멘트는 너희의 마음과 같아서,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들이 마치 젖은 시멘트에 남기는 발자국과 같아다. 지금은 부드럽고 쉽게 변화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너희 마음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좋은 것, 올바른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거란다.“

 

우리 부모의 가르침은 자녀들의 마음에 시멘트 자국과 같이 남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르치고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자녀들의 마음에 새겨집니다. 우리가 자녀들의 마음에 새기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영적인 가치를 깊이 새기고 있는가요? 아니면 세상에서의 성공만을 위하여 달려가는 가치를 새길 것인가요? 우리가 보여주는 삶은 자녀들의 눈에 어떠한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는지 우리는 깊이 새겨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은혜로 세워지는 믿음의 가정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 가정은 하나님 안에서 축복을 누리는 믿음의 가정입니다. 그곳에는 가족에 대한 거룩한 사랑이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사랑함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순종합니다. 그리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하여 주님의 사람으로 세워갑니다. 이러한 가정이 여호수아가 선포한 하나님을 섬기는 집으로 세워가는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