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삶을 살아가라 IV.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우리는 이기는 삶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와 세상, 그리고 사탄을 이기는 삶에 대하여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는 육신의 자아, 즉 이기심과 정욕을 이기는 삶에 대하여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자아의 중심에 있는 염려와 두려움을 극복하는 삶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021년 설문 조사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은 실업이 가장 큰 걱정이었고, 당시의 코로나 19가 두 번째, 그리고 가난과 사회적 불평등, 범죄와 폭력, 기후변화 순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염려에 대하여 나누어 보자면, 20-30대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염려할 것이며, 30-50대 가정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자녀 교육, 그리고 60대 이상은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건강에 대한 염려가 클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어떤 자료에 의하여 이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 리스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 높은 곳에 오르는 것, 곤충이나 벌레, 금전적 문제, 깊은 물, 침몰, 죽음, 비행, 외로움, 개 등으로 순위가 올라왔습니다. 여러분은 이 부분에 해당하는 사항이 있는지요? 저는 높은 곳에 오르는 것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통 고공 공포증이라고 합니다. 저의 아내는 아마도 깊은 물을 무서워해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염려와 두려움은 우리가 삶에서 필수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감정입니다. 이러한 감정은 우리의 삶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두려움이 없다면 높은 건물에서 그냥 뛰어내리거나 물에 혼자 들어가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위험을 감지하게 되면 두려움이 찾아와서 자신을 보호하게 되는 것은 두려움의 긍정적인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두려움이나 염려가 전혀 없다면 삶이 통제가 되지 않아 큰 사고를 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우리가 순간적인 위기에 처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일의 삶에서 염려와 두려움에 갇혀 살아가는 것은 부정적인 자아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두려움에 대하여 성경은 어떻게 해답을 제시하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두려움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는 이러한 두려움에 대하여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가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1,34).
주님께서는 산상 수훈의 교훈을 주시면서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시고 그 염려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필요를 가진 존재로서 살아가면서 항상 무언가를 노력해서 결과를 얻어야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 사람들은 무엇을 추운 겨울 동안 먹어야 할지를 고민하기도 하고, 몸이 병들어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일을 해서 가족을 먹여 살릴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것을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나 구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로 공급하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 하나님께서는 공중의 새를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가 자라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공중의 새나 들의 백합화보다 더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시며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의 길을 걸어갈 때에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그들의 사십년 광야 생활 동안 의복이 헤어지거나 발이 부릍지 않도록 보호하셨습니다.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신 8:4).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소중한 가치는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순종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훈련의 과정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의 여정을 마치고 가나안에 이르면, 그 곳에는 그들을 위한 집과 포도원과 비옥한 밭이 예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가나안은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었기에, 그들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 먹고 마시는 것보다 더욱 중요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기 보다는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려 합니다.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모습입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삶은 항상 염려와 불안이 가득하여 자아 중심이 되는 삶의 모습입니다. 빌립보서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염려를 극복하는 비결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어야 합니다. 왜 우리는 기도할 때에 감사해야 하나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감사하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역경을 아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의 길을 걸어갈 때에 그들의 필요를 아셨고 공급하셨습니다. 엘리야 시대 때에 그 땅에 기근이 나자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통하여 엘리야 선지자의 필요를 날마다 공급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사르밧 과부의 필요를 풍성하게 채워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하는 삶은 삶의 가치에서 변화가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와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우리가 염려할 일이 있을 때에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나 구하는 것보다 넘치도록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그 분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참된 가치는 하나님을 섬기며 그 분의 의를 구하는 것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직접 경험한 자로서 하나님의 선하신 돌보심을 선포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을 구원하셨고 부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으로서 세상의 죽은 우상과는 다른 참되고 진실된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돌보셨듯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의 필요를 풍성한대로 채우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사역을 위해서 물질을 풍성하게 보내주었습니다. 로마의 감옥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도 바울을 위하여 사랑의 헌금을 하며 선교로 보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빌립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선언한 것입니다.
우리의 염려는 자동적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무거운 짐을 하나님을 신뢰하며 맡길 때에 염려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염려를 자신에게 전가하게 되면 우리의 삶은 고달프게 됩니다. 마음에 스트레스로 인하여 염려가 커지만 불안해지고, 우울증이 찾아오거나 건강을 헤치기 까지 합니다. 염려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건강을 헤치게 되고 결국은 기쁨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약화시킴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기 위하여 염려가 아닌 주님의 나라와 그 분의 뜻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시련이 찾아와도 기도로 이기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 고통스러운 시련이 우리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줍니다. 이때 우리는 믿음의 용기로 전진해야 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찌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 56:2-4).
시편 56편은 다윗이 어려운 시련을 만나 두려워할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힘을 얻는 고백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찾아 오는 사울이 두려워 도망하여 블레셋의 가드로 피신했습니다.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삼상 21:10). 다윗은 용맹스러운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강한 믿음은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골리앗과 맞서 이기게 하는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울을 피하여 도망하는 상황에서 사울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왜 다윗은 사울을 두려워 했을까요? 사울은 골리앗이 두려워 피했던 자이지만, 다윗은 골리앗을 무서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긴 사람이었습니다. 어찌보면 다윗이 사울보다 더욱 용맹스러운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을 향하여 다윗은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세운 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기름부은 왕이었지만 사울은 시기와 질투가 동기가 되어 다윗을 죽이려는 악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갈 곳을 찾다가 블레셋 사람들의 영토인 가드에 들어갔다가 붇잡혀 가드 왕 아기스에게 보내졌습니다. 이때 다윗은 의심을 피하기 위하여 미친 체하면서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기스 왕은 그를 쫓아내고 결국 다윗은 아둘람 굴로 도망했습니다.
다윗은 앞날이 캄캄한 상황에 처하자 두려움이 앞서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시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하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찌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 56:2-4). 다윗이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자 마음에 찬송이 나오기 사작했습니다. 그는 두려워 하는 날에 흐르는 눈물을 병에 담을 정도로 큰 고통의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자 하나님이 도우심을 신뢰하며 두려움이 물러가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 56:10-11).
극한 시련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주지만,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은 우리에게 담대함을 얻게 합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겪어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보호와 함께 하심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를 향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극한 환경에서 우리를 붙드시고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붙드시며 도우십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의 입을 막으시고 다니엘을 보호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는 것을 알고도 하나님께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사자굴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이 다니엘을 붙드셨고 사자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다니엘의 믿음은 그의 극한 환경에서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은혜를 얻게 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르밧 과부의 집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온 이스라엘에 기근이 있어 먹을 음식이 고갈된 상황이었습니다. 과부는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엘리야를 대접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축복하셔서 기근이 일어나는 동안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여호와께서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열상 17:14). 하나님께서는 시련의 때에 사르밧 과부를 붙드시고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을 붙드시고 도우시듯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을 붙드시고 도우십니다.
조지 뮐러는 오만 번의 기도를 응답받은 기도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분은 고아원에서 많은 아이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신 분이십니다. 한 번은 고아원에 음식이 떨어지자, 그 분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했습니다. 양식이 떨어져 더 이상 아이들에게 줄 음식이 없는 아침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아침에 빵집 주인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고아원에 빵을 가져가라고 하셨다고 하면서 빵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고아원을 지나가던 우유차가 고장이 나자, 그 신선한 우유를 고아원에 기증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조지 뮐러의 기도를 들으시고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이 붙드시고 돌보시는 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붙드시고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큰 문제의 원인을 해결해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십자가의 은혜로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셨기에 이 땅에서 육신의 장막에서 벗어나면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거하는 소망을 얻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온갖 환난을 당할 줄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당하기 전에 미리 이 세상에서 모진 고난과 시련을 겪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환난 당할 때에 우리와 함께 하시며 도우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때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담대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죄책감이 있어서 사람들을 대면하기가 두려울 수가 있습니다. 자신이 연약해 보이고 작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마음의 무거운 짐이 우리를 억누를 수가 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주셔서 자유케 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7,9). 우리는 주님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면 주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씻어주시기에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얻어 마음의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사랑으로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앞에서 도전하는 골리앗과 같은 거대한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나아가 승리하는 믿음의 용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은혜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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