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좋은나무 시리즈 (2) - 생명이 있는 나무

비전의 사람 2015. 9. 9. 12:02

좋은나무 시리즈 (2) - 생명이 있는 나무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0: 10)

 

우리는 좋은나무되기에 대하여 시리즈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좋은나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7: 17). 우리가 좋은 나무가 될 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간혹 우리는 믿는 사람들이 본이 되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시험을 주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지난 주에 저는 교제를 하면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본이 되어 좋은 행실을 보여야 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나쁜 행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워 전도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을 인도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에 시험이 들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을 때에 주는 마음의 어려움도 나눈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이미지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쁜 열매를 맺는 부패한 나무인가요? 아니면, 스스로를 나무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느끼십니까? 자신은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인가? 아니면 좋지 않은 나무인가? 하는 것입니다. 혹시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좋은 나무의 이미지가 아니라면, 그 책임은 하나님께 있나요? 아니면 우리 자신들에게 있나요?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조금도 악이나 흠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생명의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성령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연약하고 흠이 많은 우리가 제대로 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에서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좋은 나무가 될 때에 좋은 숲을 이루어 세상에 영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나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나무가 되는 첫 번째 비결은 어디에 있나요? 그것은 바로 참된 생명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좋은 나무는 죽은 나무가 아니라 생명이 있어서 뿌리로부터 공급받아 자라가며 열매맺는 나무입니다. 죽은 나무는 곧 시들어 버리고, 벌레가 먹게 되고, 결국은 썩어서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주심으로 살아있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의미있게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생명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나누기를 원합니다. 생명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연적인 생명과 영원한 생명인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두 가지의 비교를 통하여 영생을 소유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자연적인 생명은 세상에서 소멸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9: 27).

 

생명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적인 생명입니다. 자연적인 생명은 태어날 때 시작하여 죽음과 함께 소멸되는 것입니다. 자연적인 것은 모두가 소멸합니다. 나무도 자라서 수명을 다하면 죽음과 함께 소멸되고, 짐승이나 사람들도 모두가 수명을 다하면 죽음과 함께 소멸됩니다.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불로장생을 구해서 영생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각지로 보내서 불로장생약을 구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구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천하를 얻었지만 자신의 생명이 수명과 함께 소멸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외계인을 숭배하는 라엘교라는 종교단체가 있습니다. 이들은 외계인을 숭배하고 있으며, 자신들은 인간복제를 통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복제하고, 뇌의 기억력을 이식하게 되면 복제가 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미국의 배우나 가수들이 돈과 영향력을 가지고 이러한 종교를 신봉하는 경우가 종종있습니다.

 

생명은 소멸합니다. 이는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자연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다음에 일어나는 현상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나무는 썩어서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동물이나 곤충들도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 소멸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곤충이나 짐승들과 다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사람은 영과 혼, 육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은 죽음과 함께 소멸하지만, 영혼은 살아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참된 생명이 없이 자연적인 죽임을 맞이하게 된다면, 죽음 이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까요? 혹시 여러분은 그러한 상상을 해보신 적인 있으신가요? 여러분이 관에 누워있다면 여러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외적으로는 사람들이 장례를 치루고, 관에 안치하여 장사하거나 화장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죽음을 맞이한 후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서 그 몸은 장례를 치루게 되어 땅속에 묻히거나 화장으로 한 줌의 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에 대하여는 어느 누구도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가본적이 없기 때문이죠. 사람들의 지혜나 철학으로 죽음의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죽음의 문제에 대한 분명한 답을 주십니다.

 

자연적인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죽음은 분리를 의미합니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분리이고, 이 세상과의 분리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과 분리하여 다음 세상으로 가게 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9: 27)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죽음이후에 또 다른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사망을 통과해야 하는가요? 그것은 바로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분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범한 죄는 하나님과의 분리를 가져왔고, 그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후에는 자신의 영혼은 하나님의 손에 맡겨지게 됩니다. 영생이 없이 죽은 영혼은 이제 하나님 앞에 서게 되고, 그 죄의 대가로 인하여 영원한 심판인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20: 15). 죽음을 떠난 후에 맞이하게 될 운명이 영원히 타는 불못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최근에 신종플루가 전염되기 시작하자, 국민들이 불안해하면서 손씻기 생활화 및 세정제를 사용하면서 건강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지켜서 전염되지 않으려는 모습,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모습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죽음 너머에 기다리고 있는 지옥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믿음이 있다면, 영혼의 구원에 대하여 고민하며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아무런 경고를 주지않고, 미래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자연적인 생명의 결국은 사망이며,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왜 사람들은 생명의 비극인 사망을 맞이할까요?

 

1. 사람들이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59: 2).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분리는 어두움과 사망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된 이유는 인간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지금도 하나님을 반역하면서 대적하고 있습니다.

 

2. 사람들이 공중의 권세잡은 자, 사탄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2: 2). 주님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사탄의 영향력아래서 억눌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여 사람들에게 죄의 쾌락을 주면서, 그 영혼은 지옥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을때는 사탄을 따르는 것입니다.

 

3.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21: 8).

둘째 사망에 참예하는 사람들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기에 그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과 천국, 지옥에 대하여 전하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불신으로 가득찼습니다. 사탄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에서 떠나서, 교회나 성도들의 인간적인 연약함에 집중하게 하여 하나님을 불신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영원한 사망의 길을 가는 첫 걸음인 것입니다.

 

4. 복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 16). 복음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복음의 순수한 메시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라는 헬라어에서 나왔습니다. 왜 기쁜 소식인가요? 복음의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복음은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소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한 복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을 얻게 됩니다.

 

사람들의 운명은 비극과 어두움의 미래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주심으로 영생을 얻어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미래인 천국을 맞이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생명이 바로 영생인 것입니다.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자연적인 생명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해야 합니다.

 

2. 영원한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 20)

 

하나님은 사람에게 출생과 더불어 자연스러운 생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자에게 참된 생명인 영생을 주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5: 47-48). 주님께서는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그 영생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주님은 비유적으로 자신의 살과 피로서 자신이 생명의 근원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6: 53-54). 주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보혈과 십자가에서 주신 자신의 몸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살과 피를 주셨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것은 주님의 살과 피를 마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는 생명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영원한 생명이 없음을 의미하고 있고, 누구든지 주님을 영접하는 자는 영생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참된 생명인 영생을 가지고 있습니까? 참된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5: 24).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기에,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통과한 후에 새로운 몸을 입고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은 누구인가요? 생명의 근원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을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느 누구도 행위로는 생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2: 9-10). 우리가 영생을 얻는 유일한 길은 오직 믿음으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노력이나 행위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려고 하는 신앙은 율법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삶을 살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누더기와 같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를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새생명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무엇이 새생명이 주는 우리의 삶의 독특성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3: 5).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1: 23).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씨앗이 되고,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영원히 천국에서 살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2. 우리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은혜를 누립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1: 21).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주님이 생명이 되셔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 분이 우리의 생명이 되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것은, 그 분의 생명이 우리를 통하여 표현되어질 때입니다. 우리의 자아가 깨어지고, 그리스도의 말씀과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때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육신의 생각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분이 우리의 삶의 주인과 생명되심을 인정할 때에, 그분은 우리를 통하여 살아계시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 삶의 진정한 능력은 그 분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신앙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광의 소망임을 믿습니다.

 

3. 우리는 자신을 위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14: 8). 죄의 뿌리는 자아 (I)'입니다. 자신의 자아가 목표가 되면, 교만이 찾아오고 죄가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는, 삶의 동력이 예수님에게서 나오게 됩니다. 그러한 삶은 예수님이 이끄시는 삶에 기쁨으로 순종하게 되고,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인생이 됩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높으신 보좌에 앉아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소중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변화는 나의 노력이 아닙니다.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나를 통하여 나타나는 만큼, 나는 자아가 깨어지며 성숙되어지는 것입니다. 인생의 초점을 자신에게 맞추지 말고, 그리스도에게 맞추어 하나님의 영광이 삶의 목표와 비전이 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4. 주님이 주신 생명은 영원합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21: 23-24).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도, 더 좋은 천국의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강을 누리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21: 27).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영생을 얻게 되고, 우리의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원히 천국에서 안식하게 될 것입니다.

 

좋은 나무의 첫 걸음은 생명의 근원되신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여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이 되실 때에, 우리를 변화시키시며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여 생명을 소유하고, 예수님을 소유하며, 천국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이신지요? 아니면, 오늘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를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22: 17).